+ 방선배님~ 1027

평화는 질서를 서로 용납하는 데서 비롯된다

복음의 본질은 같아야 하지만, 비본질적인 것에서는 의견의 차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것인데,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형제를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일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행하며 서로 관용하고 사랑하기에 힘쓸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삶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야 합니다. 삶의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본질이 아닌 비본질에 크게 마음 쓰지 않습니다. 각기 다른 의견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존중하며 수용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을 함께 누릴 형제자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신 형제를 비판하거나 업신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

+ 방선배님~ 2022.10.25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저주가 아닌 축복입니다.

복의 부산물에 마음을 두지 말고, 복을 주시는 여호와께 집중해야 합니다. 복을 받을수록 자기만족과 유익만 구하며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청지기 사명을 잘 감당하고자 힘쓰며 하나님께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분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총체적 부패에 빠져 결국 하나님의 진노 대상이 되고 모든 복을 상실해 수치를 당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도움과 복의 근원은 세상 권력자도, 우상도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은 마치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자신들의 삶이 항상 평탄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더는 지체하지 말고 하나님께 돌아와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묵은 마음을 말씀의 쟁기로 갈아엎어 새 마음을 품는다면 얼마든지 죄악의 상황에..

+ 방선배님~ 2022.10.19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호6:1)

미국 코넬 대학의 앨런 블룸 교수는 그의 책 에서 미국이 현재 타락의 온상지가 된 이유는 기독교적 삶의 가치를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고, 프랑스 언론인 에릭 제무르도 이라는 책에서 "지금 프랑스가 자살의 길을 걷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이슬람을 허용하고, 동성애를 용납한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영국 기독교 법률 센터 대표인 안드레아 윌리암스 변호사가 한국을 방문해서 "5년 내에 한국의 기독교가 문을 닫기 시작할 것이다."라는 매우 충격적인 말을 하고 갔는데, 그 이유를 하나님의 말씀이 무너지는 데서 찾았습니다. 영국 교회가 낙태법 폐지와 동성애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무너졌다면,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가 무너지는 무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살 길은..

+ 방선배님~ 2022.10.19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죄로 인해 우리 삶에서 하나님이 떠나시는 순간, 그동안 우리가 누렸던 영광 역시 사라져 버립니다. 비록 아무리 오래된 믿음의 전통과 부흥의 역사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촛대를 옮기시면 그곳은 황폐해집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첫사랑과 감사를 잃어버리고 세속화된 성도의 삶에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열매가 맺힐 리 없기에 결국 심판을 받습니다. 말씀에 대한 불순종은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불행을 가져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뿌리가 마른 나무 처럼 열매 맺지 못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어야, 말씀의 토양에 뿌리를 내려야 죄악에 물들지 않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제의 신앙이 내일의 신앙을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오늘 신실한 것이 중요합니다. 삶의 어느..

+ 방선배님~ 2022.10.19

"비판하지 말라"

한 사람은, 그가 맺어 온 관계와 환경의 합이고 결과입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반드시 있습니다. 인디언 속담에 그 사람을 알려면 그의 신발을 신고 오 리를 걸어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사람과 같은 환경에서 지내 보지 않으면 그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대할 때 그에 대해 섣불리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어떤지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비판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비판하는 동안에는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비판은 인간의 한계와 죄에서 자란 독초입니다. 사랑은 공격 금지요 무장 해제입니다. 주님이 그러셨듯이,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 비판하기에 앞서 사랑하는 방식을 택해야 할..

+ 방선배님~ 2022.10.19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견고한 믿음 위에 세운 인생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욥은 자신을 흔드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믿었지만, 욥을 흔든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던 첫 믿음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인간은 참으로 연약하고 허무한 존재입니다. 우리 인생은 시드는 꽃과 사라지는 그림자와도 같지만, 연약하고 허무한 인생은 하나님을 바라볼 때 강하고 보배로은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건으로 우리의 불의를 의로 바꿔 주시며, 유한한 인생을 영원한 생명으로 바꿔 주십니다. 우리 인생은 물론이고 우리가 당하는 고난에도 반드시 끝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끝에는 고난에 비할 수 없는 영광과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 인생은 진정한 존재의 의..

+ 방선배님~ 2022.10.07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수용해야

'고난은 위장된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 말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고통 자체가 하나님의 목적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통당할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반응하면 선이 될 수도 있지만, 인간이란 연약해서 종종 남을 탓합니다. '남 탓'이 '내 탓'으로 바뀌기도 하는데, '내 탓'은 자기혐오와 수치심을 유발하고 절망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탓'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탓'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하나님만이 내게 닥친 사태를 진정시키실 수 있는 분임을 잊은 처사입니다. 얼마든지 고난을 허용하실 수도 있고 감해 주실 수도 있는,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수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최선이요,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

+ 방선배님~ 2022.10.05

츠빙글리와 두 마리 염소

어느 날 스위스의 종교 개혁자 츠빙글리는 스위스의 산 위를 걷다 좁은 산길에서 두 마리 염소를 보았습니다. 한 마리는 위로 올라가려 하고, 또 한 마리는 아래로 내려가려했는데, 워낙 좁은 길이라 두 마리가 동시에 오르내릴 수는 없었습니다. 염소들이 서로 팽팽히 맞서는 것 같은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올라가려던 염소가 길가에 엎드리자, 위에서 내려오던 염소가 엎드린 염소를 밟고 먼저 내려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엎드렸던 염소가 일어나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모습을 보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넙죽 엎드리는 사람이 은총으로 올라간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엎드림은 하나님 은총의 계단을 오르는 힘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무릎을 꿇는 것이 참된 겸손입니다. 자신의 한계와..

+ 방선배님~ 2022.10.04

'마음의 상함'

인간은 어려움을 겪을 때 마음이 상합니다. '마음의 상함'이란 히브리어로 '코체르 루아흐'라고 하는데,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영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영이 부족하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어려움을 당해 마음이 상하면 기도가 나오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마음이 열리지 않습니다. 이는 마귀가 원하는 대로 된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 뜻을 깨닫기 원하는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걸 알고 모든 걸 다 볼 수 있다면 순종이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체적인 계획과 그림을 미리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삶 속에서 힘들 때, 어려울 때, 의심이 올라올 때 일단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분명 선하신 뜻이 있을 것이기에,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나아가겠다고 고백..

+ 방선배님~ 2022.10.04

믿음의 공식

욥은 고난이 오기 전에 이미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큼 홀륭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극심한 고난 속에서 그의 믿음의 공식이 무너집니다. 그 공식은 욥의 세 친구가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있었던, "하나님을 잘 섬겼더니 이렇게 평안하게 잘 지내는구나!"라는 인과율에 묶인 축복과 저주의 공식이었습니다. 결국 모진 고난의 경험을 통해서 욥은 자신이 갖고 있던 공식이 정답이 아님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신비 안으로 데리고 가십니다. 우리 인생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이 몇 가지 공식 아래에서 행복을 누리는 수준으로 살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그 공식을 깨뜨리고 성장하기를 바라십니다. 또한 그 공식을 버릴..

+ 방선배님~ 2022.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