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중앙교회 47

[묵상칼럼] 고통의 길에서 은혜를 만나다 _ 데이비드 폴리슨

고난은 시금석이면서 촉매제 역할을 한다. 즉, 고난은 믿음을 드러내고 형성한다. 또한 가짜 믿음을 폭로하고 파괴한다. 고통은 상상 속 신들에게 거는 덧없는 희망을 들춰낸다. 이러한 환멸감은 선한 것이며 혹독한 자비라고 할 수 있다. 가짜인 것을 무너뜨리는 것은 회개와 진정한 하나님의 모습 그대로를 신뢰하는 믿음을 불러일으킨다. 고난은 세상의 유일할 구세주,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선물, 생명을 주시는 분인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좋은 것을 잃어버리는 상실을 맛보게 한다. 고난은 불신을 원망, 절망, 중독, 극심한 환각, 심지어 더 치명적인 자기만족, 혹은 끊임없는 생각의 굴레 속으로 몰아간다. 특히 그 보물이 허영이라면 인생의 목표를 상실하는 것은 분수령적인 회개를 가져온다. 우..

+강남중앙교회 2023.08.18

[묵상칼럼] 조건없는 압도적인 사랑_A. W. 토저

하나님의 독생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길이다. 다른 길은 없다. 내가 노력하고 수고한다고 그분의 사랑을 얻을 수 없다. 내가 매력적인 존재가 된다고 그분의 사랑을 얻을 수는 없다. 내가 그분의 사랑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저 놀라운 문,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것뿐이다. 나는 그분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달을 때마다 정말 놀란다. 나는 때때로 하던 일을 멈추고 내 삶에 임한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을 깊이 생각한다. 그 사랑을 받을 자격이 내게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하지만 내 자격이 줄어들수록, 그 사랑이 그만큼 더 많이 내 삶 속으로 흘러들어온다는 것도 안다. 많은 종교적인 일들이 호기심에서 일어난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사라미아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녀의 ..

+강남중앙교회 2023.08.18

[묵상 칼럼] <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묵상 칼럼] , 이어령 세례를 받기로 결심한 뒤 스스로 물었습니다. '나의 일생이 하나님의 뜻대로 가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칠십이 훨씬 넘어 이제야 여기에 온 것일까? 하나님은 사람을 잘 쓰시는 분이니 나의 쓸모도 반드시 있는 거겠지?' 저는 생각합니다. 평생을 탕자로 돌아다니다가 뒤늦게 깨달은 것을 얘기하면 믿지 않는 사람의 마음이 달라질지 모른다고요. 그게 어쩌면 쓰임일 것이라고요. 2007년 7월, 보통 때 같았으면 부끄러워서 몰래 숨겼을 눈물을 세례를 받으면서는 왈칵 쏟고 말았습니다. 왜 울었을까요. 슬픔인가, 감동인가, 회개인가, 그것도 아니면 감사였을까요. 제게 영성의 세계는 이해하거나 설명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절망을 계기로 던져 넣어지는 것입니다. 셰례는 물로 씻는 의식이..

+강남중앙교회 2023.06.25

[묵상 칼럼] <복음은 반드시 길을 찾는다>, 류호준

[묵상 칼럼] , 류호준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진리인지 어떻게 압니까?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각자 소견에 맞는 게 곧 진리라고 말합니다. 포스트모던주의는 세상에 '절대적 진리'는 없고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라고 강조합니다. 소위 '진리의 상대성'이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 진리를 알 수 있다고 확신합니까? 자신이 고심해서 내린 결정에도 혼란스러워하는 게 우리인데, 그런 우리보고 자기 마음을 믿으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오래가겠습니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우리 마음은 언제나 서로 경쟁적인 애정들로 갈라지고 찢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과 저것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이 서로 경쟁합니다. 그러니 나도 내 마음을 믿을 수 없습니다. 만물보다 더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

+강남중앙교회 2023.06.25

[묵상 칼럼] <구원이란 무엇인가>, 김세윤

[묵상 칼럼] , 김세윤 빈곤한 자기 자원에 갇히게 된 모든 인간은 그 길이 "삶"의 길인 양 서로에게 자기를 주장하며, 상대를 자기에게 굴종시키고, 상대의 자원을 착취하려 합니다. 그래서 인간 사회가 치열한 생존경쟁과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정글, 곧 금수의 세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든 갈등과 그로 인한 고난이 여기서 나오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바로 이러한 제한된 자원 속에서 죽어 가는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오셔서 구원을 이루셨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바로 그 약속을 성취하도록 소명된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여 하나님께 진정으로 의지하고 순종할 하나님의 백성, 곧 자기를 따라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며 하나..

+강남중앙교회 2023.06.25

[묵상 칼럼] <말씀이 육아가 되어>, 김정태

[묵상 칼럼] , 김정태 청년 시절, 요한복음 한 구절이 마음 깊이 들어와 한참을 울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1)라는 구절이었다. 이 말씀 앞에서 '하나님, 주님 보시기에 모자라고 항상 실수만 저지르는 저를 왜 이토록 사랑하시나요?'라고 물었었다. 그때 깨닫지 못했단 답을 아이를 키우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다. '내가 내 아이를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도 나를 포기할 수 없으시구나.'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라신다. 우리 가운데 있는 약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살아있는 메시지와도 같다. 그날 생각지도 못한 결이의 손길에 큰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 우리가 지켜주는 존재들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

+강남중앙교회 2023.06.24

[묵상 칼럼] <복음과 양육으로 세워지는 어린이 사역>, 재레드 케네디

[묵상 칼럼] , 재레드 케네디 아이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접근법은 주로 소비자 같은 태도를 기반으로 한다. 신혼부부는 재정적인 부담 때문에 아이를 원치 않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들은 아이를 가지며 ㄴ삶의 공백이 채워질 것으로 막연히 생각한다.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부모들은 조급해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정말 많은 것을 쏟아부었어. 녀석들이 어서 빨리 보답해줬으면 좋겠어.' 그런데 사역에서도 아이들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모습이 자주 나타난다. '부모를 전도하려면 아이들을 공략해야 해. 아이들이 교회를 좋아하지 않으면 부모도 교회에 오려고 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이런 말은 아이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그들의 가치를 가늠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시각은 다르다. 예수님께는 어린아이들이 더없이 ..

+강남중앙교회 2023.06.24

[묵상 칼럼] <부활을 입다> (3), 팀 켈러

[묵상 칼럼] (3), 팀 켈러 물론 극기나 응어리진 분노로도 당분간은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용기는 기쁨에 겨워 자신을 망각할 때 찾아온다. 진정한 용기는 다음과 같은 깊은 확신에서 찾아온다. 이 땅에서 우리는 작은 구석의 어둠에 잠시 갇혀 있으나, 하나님의 우주는 빛과 높다란 아름다움을 품은 광활한 곳이며 바로 거기가 우리의 확실한 최종 숙명이다. 예수님 덕분에 그렇다. 그분은 우리를 그 빛과 아름다움으로 인도하시려는 일념에 모든 영광과 즐거움을 버리고 깊은 어둠으로 뛰어드셨다. 덕분에 우리는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시 30:5)라는 말씀을 실제로 누릴 수 있다.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것을 우리에게 확보해주셨다. 이 확신이 우리 안에 거..

+강남중앙교회 2023.05.01

[묵상 칼럼] <부활을 입다> (3), 팀 켈러

[묵상 칼럼] (3), 팀 켈러 물론 극기나 응어리진 분노로도 당분간은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용기는 기쁨에 겨워 자신을 망각할 때 찾아온다. 진정한 용기는 다음과 같은 깊은 확신에서 찾아온다. 이 땅에서 우리는 작은 구석의 어둠에 잠시 갇혀 있으나, 하나님의 우주는 빛과 높다란 아름다움을 품은 광활한 곳이며 바로 거기가 우리의 확실한 최종 숙명이다. 예수님 덕분에 그렇다. 그분은 우리를 그 빛과 아름다움으로 인도하시려는 일념에 모든 영광과 즐거움을 버리고 깊은 어둠으로 뛰어드셨다. 덕분에 우리는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시 30:5)라는 말씀을 실제로 누릴 수 있다.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것을 우리에게 확보해주셨다. 이 확신이 우리 안에 거..

+강남중앙교회 2023.05.01

[묵상 칼럼] <부활을 입다>, 팀 켈러

[묵상 칼럼] , 팀 켈러 우리는 부활을 세상의 자연 질서가 잠시 중단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본래 의도하신 상태로 회복되기 시작한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인류가 하나님을 떠난 뒤로 죄와 악과 무질서의 질병과 고난과 죽음이 인간계와 자연계를 지배해 왔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장차 권능으로 임할 하나님 나라의 첫 단계를 세상에 출범시키셨다. 만물을 회복하고 치유하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의 부활 덕분에 그리스도인에게는 미래를 위한 희망만이 아니라 미래로부터 오는 희망까지도 주어졌다. 성경의 놀라운 메시지는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미래의 하나님 나라를 현재 속에 들여놓으셨다는 것이다. 그 나라는 아직 이 땅에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엄연히 실재한다. 이미 와 있는 그것을 몰..

+강남중앙교회 2023.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