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나라 299

[박현모의 실록 속으로]피의 보복 1721년, 새 인재 등용 1781년… 올해는 어떤 신축년 될까

[박현모의 실록 속으로] 피의 보복 1721년, 새 인재 등용 1781년… 올해는 어떤 신축년 될까 경종 1년 정권 잡은 소론, 대대적인 정치보복 ‘피바람’ 정조 5년 싱크탱크 규장각 세우고 유능한 인재 발탁 지도자 비전과 국가경영 능력에 따라 파국·도약 갈라져 박현모 여주대 교수 입력 2021.01.07 03:00 올해는 신축년(辛丑年)이다. 조선 역사에서 신축년은 아홉 번 있었다. 1421년(세종 3년), 1481년(성종 12년), 1541년(중종 36년), 1601년(선조 34년), 1661년(현종 2년), 1721년(경종 1년), 1781년(정조 5년), 1841년(헌종 7년), 1901년(고종 38년)이다. 이 중에서 1721년과 1781년을 살펴본다.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두 신축년이기 때문이..

옛날 우리나라 2021.01.07

高宗의 허세, 양무호

[양상훈 칼럼] 高宗 허세 생각나는 文의 6조 경항모 쇼 쇼통령, 쇼정권이라지만 6조~10조원 들여 필요도 없고 군 전력 해치는 경항모 쇼까지 할 줄은 몰랐다 양상훈 주필 입력 2021.01.07 03:20 고종이 1903년 3400t급 군함을 해외서 구입했다는 의외의 사실을 조선일보 박종인 기자 글에서 읽었다. 함선은 80mm포 4문으로 무장했다. 지금 한국의 해군 차기 호위함이 2800t급에 길이가 122m에 달하니 3400t급이면 상당한 규모의 군함이다. 당시 조선은 세계 최빈국이었다. 말이 나라지 이미 붕괴한 상태였다. 해군은 물론이고 육군조차 유명무실했다. 그런 처지에 왜, 무슨 돈으로 운용하려고 3400t급 군함을 구입했을까. 답은 당시 국방장관의 상소에 있다. 국방장관은 고종에게 “대한제국은..

옛날 우리나라 2021.01.07

[박종인의 땅의 歷史]243. 포수 의병장 김백선의 허무한 죽음

[박종인의 땅의 歷史] “적은 토벌하지 않고 장수를 죽여 성을 무너뜨렸구나” 243. 포수 의병장 김백선의 허무한 죽음 의병장 김백선의 애마 묘, '천비마의 묘'.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1.06 03:00 사람이 세상을 만들고 세상은 사람을 만든다. 사람이 만들었으되 세상은 사람 마음대로 굴러가지 않으니, 100년 전에도 지금도 그러하다. 절충장군 김백선의 변신 김백선은 경기도 지평(砥平·현 양평 소속)에 사는 사내였다. 1894년 동학혁명이 터졌을 때, 김백선은 지평 유림 맹영재를 도와 동학을 소탕한 공으로 정3품 절충장군 봉작을 받았다.(1894년 음력 11월 7일 ‘승정원일기’) 이듬해 8월 왕비 민씨가 일본인에게 살해되고 11월 갑오정부 김홍집 내각이 단발령을 내리자 김백선은 의병장으로..

옛날 우리나라 2021.01.06

이방원과 정도전의 ‘역사 속 라이벌 열전’ [1~3편]

♠[1]이방원과 정도전의 숨막히는 드라마... ‘역사 속 라이벌 열전’이 펼쳐집니다 조선일보 입력 2020.12.31 06:00 태종 이방원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사극 ‘용의 눈물’을 통해 우리는 강하고 당당한 체구의 무인(武人)인 태종 이방원의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건장한 체구로 카리스마 넘치게 이방원을 연기한 배우 유동근의 영향이 컸죠.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이방원은 여리여리한 몸집에 건강도 신통치 않아 아버지인 태조 이성계의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동시에 실록은 ‘승자의 기록’이라는 한계도 갖고 있었습니다. 실록에 따르면 이방원의 필생의 라이벌 정도전은 최후의 습격을 받고 숨어 있다가 엉금엉금 기어 나와 이방원에게 목숨을 구걸한 것처럼 묘사됩니다. 조선 왕조의 기틀을 ..

옛날 우리나라 2021.01.01

[박종인의 땅의 歷史][242] 2020년 세밑에 가본화성 남양만

[박종인의 땅의 歷史] 남양만 격랑 위로 여전히 태양은 빛나고… [242] 2020년 세밑에 가본화성 남양만 남양만의 빛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12.30 03:00 경기도 화성 궁평리와 매향리 사이에 있는 바다를 남양만이라고 부른다. 원래는 굉장히 넓었는데 세월에 걸친 간척사업 끝에 상당 부분 땅으로 변했다. 그래서 남양만에 있던 가장 큰 포구 마산포는 뭍이 되었다. 마산포 앞 어섬[어도·魚島] 또한 언덕으로 변했고, 어도마을 앞에는 어도 버스 종점 이정표가 서 있다. 땅이 채 되지 못한 물은 화성호와 시화호라고 한다. 땅으로 변한 바다, 남양만 위로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 이야기. 물 위에 떠 있는 버스 종점, 섬이었던 어도. /박종인 [242] 2020년 세밑에 가본 화성 남양만 흥선대원군 납..

옛날 우리나라 2020.12.30

[박종인의 땅의 歷史][241] 실용주의 관리 서유구가 난세에 대처한 자세 ②/끝

[박종인의 땅의 歷史] “세상 보탬 되지 않는 자 가운데 글 쓰는 선비가 으뜸이다” [241] 실용주의 관리 서유구가 난세에 대처한 자세 ②/끝 전북 고창 청보리밭. 농민의 지혜가 담긴 땅이다. /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12.23 03:00 정도전과 서유구, 그리고 선비 고려 말기인 1375년 성리학으로 무장한 신진사대부 정도전이 전라도 나주 소재동으로 유배됐다. 유학자가 왔다는 소식에 노인 하나가 정도전을 찾았다. 마중 나온 종에게 유학자가 하는 일이 뭔가 묻자 종이 답했다. “음양과 오행, 초목의 크고 시듦, 삶과 죽음의 이치까지 통달해 아는 사람이외다.” 그러자 노인이 이리 답하곤 돌아가 버렸다. “실상이 없으면서 이름만 있으면 귀신도 미워한다고 했고, 스스로 어질다 하고 남을 대하면..

옛날 우리나라 2020.12.23

[박종인의 땅의 歷史][240] 실용주의 관리 서유구가 난세에 대처한 자세 ①

[박종인의 땅의 歷史] “흙으로 만든 국과 종이로 만든 떡을 누가 먹으랴!” [240] 실용주의 관리 서유구가 난세에 대처한 자세 ① 전주성 풍남문 /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12.16 03:00 “내 인생은 낭비” 관찰사 서유구 올해 복원된 전라감영 동헌 앞에는 낯선 돌이 두 개 서 있다. 하나는 가석(嘉石)이고 하나는 폐석(肺石)이다. 가석은 경범죄를 저지른 자를 그 위에 앉혀서 죄를 뉘우치게 하는 돌이다. 폐석은 억울한 백성이 그 옆에 서 있으면 관리들이 자초지종을 물어 사연을 풀어주는 돌이다. 행정과 사법을 동시에 담당했던 조선시대 지방관 통치 율법을 상징한다. 19세기 초 이 전라감영에서 만 19개월 근무했던 행정가가 있다. 1833년 4월 부임했을 때 나이는 만 69세, 고희(古稀..

옛날 우리나라 2020.12.16

[박종인의 땅의 歷史][239] 전주 이씨 시조 묘 조경단

[박종인의 땅의 歷史] 여기가 조선왕조의 시작이며 끝이었다 [239] 전주 이씨 시조 묘 조경단 조선 왕조의 시작, 전주 조경단.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12.09 03:00 전북 전주 덕진동 전북대학교와 덕진체련공원 사이에 제사 때를 빼고는 늘 닫혀 있는 문이 있다. 문 너머 공간 이름은 조경단(肇慶壇)이다. ‘경사가 시작된 제단’이라는 뜻이다. 또 있다. 옛 전주부성 남문 이름은 풍남문(豐南門)이고 서문 이름은 패서문(沛西門)이다. 풍(豐)과 패(沛)는 한나라 유방이 군사를 일으킨 강소성 패군 풍현을 가리킨다. 즉 제왕의 땅이라는 말이다. 이쯤이면 조경단이 무엇이고 풍남문과 패서문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리라. 조선 왕실에 전주는 풍패지향(豊沛之鄕), 새 왕조를 일으킨 제왕의 고향이라는 말이다. ..

옛날 우리나라 2020.12.09

한양도성 성벽에 담긴 역사

[카페 2040] 한양도성 성벽에 담긴 역사 백악산~인왕산 아우른 한양도성, 조선 시대 역사 관통하며 보수 허윤희 기자 입력 2020.11.27 03:00 이달 초 북악산(옛 이름 백악산) 북측 탐방로가 새로 개방됐다. 1968년 김신조 등 북한 특수부대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한 ‘1·21 사태’ 이후 민간의 출입이 통제됐던 곳이다. 한양도성 성곽길로만 탐방할 수 있던 북악산을 이제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 토끼굴과 북악스카이웨이 등 추가로 열린 출입구 4곳을 통해서도 오를 수 있다. 개방 전과 비교해 탐방객이 5배 늘었을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고 한다. 지난 6일 문화재청 출입기자단 10여 명이 시민 품으로 돌아온 탐방로를 함께 걸었다. 늦단풍 붉게 물든 산길을 따라 당시 김신조 일당과 우리 측이 벌인 교전 ..

옛날 우리나라 2020.11.27

[박종인의 땅의 歷史][238] 경복궁에 숨은 역사 ③끝 효자로 플라타너스 숲의 정체

[박종인의 땅의 歷史] 경복궁 돌담길 가로수마다 사연이 숨었다 [238] 경복궁에 숨은 역사 ③끝 효자로 플라타너스 숲의 정체 좋든싫든 역사를 품은, 경복궁 서쪽 담장 너머 플라타너스 숲. /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11.25 03:00 경복궁 약전(略傳) ‘1865년 3월 의정부에서 평석이 발견됐는데, 경복궁을 재건하지 않으면 자손이 끊기니 다시 지어서 보좌를 옮기면 대를 이어 국운이 연장되고 인민이 부유하고 번성하리라고 적혀 있었다. 이를 대원위 합하에게 바치자 궁을 중건하라는 명이 내려왔다.’ (‘경복궁영건일기’ 서, 한성부 주부 원세철, 1868년) 그리하여 시작된 경복궁 중건 역사는 1868년 7월 4일 고종이 경복궁 근정전에서 문무백관 하례를 받으며 공식 완료됐다. 비가 내리던 그..

옛날 우리나라 2020.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