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나라 299

[박종인의 땅의 歷史][227] 충남 내포 이야기① 남연군묘의 비밀

[박종인의 땅의 歷史] “저 험한 내포(內浦) 가야산에는 예부터 사연이 많았느니라” [227] 충남 내포 이야기① 남연군묘의 비밀 하늘에서 내려다 본 가야산과 남연군묘. '흥선대원군이 자기 후손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절을 불태우고 자기 선친 묘를 이장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가야산역사문화연구소장 이기웅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09.02 05:00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있는 남연군묘. 가야산 자락이 날개처럼 무덤자리(가운데)를 에워싸고 있다. 흥선대원군이 자기 선친 남연군을 연천에서 이장한 자리다. 목적은 '천자 2명을 낳을 명당을 찾아서.' 아들 고종과 손자 순종이 왕과 황제가 되면서 목적은 이뤘다. 대원군은 어떻게 이 '촌구석'에 명당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강화도 유배지를 땅굴을..

옛날 우리나라 2020.09.02

[박종인의 땅의 歷史][226] 다사다난했던 지운영-석영 형제의 일생

[박종인의 땅의 歷史] 민란에서 식민지까지… 거친 역사가 형제의 삶에 녹아 있다 조선일보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08.26 03:12 [226] 다사다난했던 지운영-석영 형제의 일생 이미지 크게보기경기도 안양 삼성산에 있는 삼막사는 677년 통일신라 때 원효가 만든 절이다. 삼성산은 관악산이다. 원효 이후 1234년이 지난 1911년 백련거사 지운영이 삼막사에 백련암이라는 암자를 짓고 은둔했다. 김옥균 암살 미수범 지운영은 식민시대에 화가가 되었다. 근대 조선 사진술의 선구자이기도 했던 그는 백련암 큰 바위에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 귀 자 세 개를 새겨놓고 세상을 초월해 살았다. 그의 동생 지석영은 종두법을 도입하고, 동학의 원인 제공자인 민영휘 처단을 주장하고, 동학을 토벌하고, 독립협회 활동을 ..

옛날 우리나라 2020.08.26

[박종인의 땅의 歷史][225] 조선형벌잔혹사 ③ 최후의 능지처사-김옥균

[박종인의 땅의 歷史] "역적 김옥균 시신을 즉시 능지처사하라" 조선일보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08.19 03:14 | 수정 2020.08.19 11:13 [225] 조선형벌잔혹사 ③/끝 최후의 능지처사 - 김옥균 영조의 경고와 김옥균 재위 35년째인 1759년 한가위 나흘 뒤, 온갖 잔혹 형벌을 총동원해 정적을 다 처리한 영조가 명을 내렸다. 일체의 잔혹 형벌과 고문을 금한다는 하명이다. 아주 근엄하다. 그 가운데 역률(逆律) 추시(追施) 금지령이 들어 있었다. '추시'는 법을 소급 적용하는 조치다. 은전(恩典)이든 형벌이든 죽은 사람에게 적용하는 법적 조치가 추시다. 이미지 크게보기충남 아산에 있는 김옥균 유허. 1894년 양력 4월 서울 양화진에서 부관참시와 능지처사 당한 뒤 김옥균 시신은..

옛날 우리나라 2020.08.19

[박종인의 땅의 歷史] [224] 조선형벌잔혹사 ②의인 박태보

[박종인의 땅의 歷史] 몸을 두루 인두로 지졌으나, 박태보는 의연하였다 조선일보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08.12 03:12 | 수정 2020.08.12 09:30 [224] 조선형벌잔혹사 ②온갖 고문 다 당하고도 의연했던 의인 박태보 이미지 크게보기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박태보 묘. 긴 장마 속에 무덤 앞에는 분홍색 무릇꽃 몇 줄기가 솟아올라 있다. 묘는 아버지 서계 박세당 고택 안에 있다. 박태보는 1689년 숙종이 희빈 장씨 아들을 적장자로 삼고 왕비 민씨를 폐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대표집필했다. 이에 숙종은 상소를 올린 서인들을 친국하며 박태보에게 심한 고문을 가했다. 압슬형과 낙형과 장형으로 만신창이가 됐지만 박태보는 오히려 "망국적인 일을 하지 마시라"며 질책했다. 사형을 면하고..

옛날 우리나라 2020.08.12

[박종인의 땅의 歷史]조선 형벌 잔혹사 ①무법천하 막장정치 영조-노론 연합정권

[박종인의 땅의 歷史] "판결 따위 필요 없다, 그냥 죽여라" 조선일보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08.05 03:14 조선 형벌 잔혹사 ①무법천하 막장정치 영조-노론 연합정권 이미지 크게보기19세기 말~20세기 초 한성에서 촬영된 태형 장면(왼쪽). 조선은 죄가 확정된 기결수에 대한 형 집행은 물론 조사 중인 미결수에게도 형을 가하는 고문이 적법했다. 그가운데 막대를 다리 사이에 끼워 부러뜨리는 주리 틀기는 죄수가 죽거나, 살아도 걷지 못하는 참혹한 고문이었다. 영조 때 포도청의 주리 틀기를 금했지만 주리 틀기는 다른 관청에서는 다른 형태로 조선 망국 때까지 시행됐다. 위 그림은 구한 말 화가 김준근이 그린 '주리 틀고'. /미국 라파예트 컬리지 컬렉션·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스웨덴 기자가 목격..

옛날 우리나라 2020.08.05

[박종인의 땅의 歷史] [222] 폭군에 대처한 네 가지 자세 ②/끝 - 임사홍과 김처선

[박종인의 땅의 歷史] "간신을 몽둥이로 죽이고 관을 깨뜨려 목을 또 베었다" 조선일보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07.29 03:13 | 수정 2020.07.29 11:29 [222] 폭군에 대처한 네 가지 자세 ②/끝 - 간신 임사홍과 의로운 내시 김처선 이미지 크게보기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능현리 산 25-5번지 일대는 풍천 임씨 선산이다. 고종 왕비 민씨 생가 부근이다. 성종~연산군 때 관료 임사홍도 여기에 묻혀 있다. 총명하고 정의로웠던 젊은 관료 임사홍은 길고 긴 재야 생활 끝에 폭군 연산군의 혀처럼 행동하는 간신으로 변신했다. 중종반정이 벌어진 1506년 9월 2일 임사홍은 몽둥이로 격살됐다. 그달 26일 반정 세력은 임사홍 관을 부수고 또 한번 그 목을 베어버렸다. 파괴를 면한 묘 앞에 ..

옛날 우리나라 2020.07.29

[박종인의 땅의 歷史][221] 폭정에 대처한 네 가지 자세 ①어무적과 류헌

[박종인의 땅의 歷史] "신하는 임금이 아니라 의를 따르는 것이다" 조선일보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07.22 03:13 | 수정 2020.07.22 10:22 [221] 폭정에 대처한 네 가지 자세 ①시인 어무적과 대사간 류헌 이미지 크게보기경복궁 근정전. 경복궁은 임진왜란에 불에 탈 때까지 조선 왕국의 법궁으로 사용되던 궁궐이다. 연산군은 이 궁궐에서 사치와 방탕과 여색을 누리며 살았다. 그 폭정으로 인해 백성 삶은 도탄에 빠졌다. 왕권을 감시해야 할 삼사(三司: 홍문관·사헌부·사간원)는 연산군에 의해 일찌감치 입이 닫힌 상태였다. 시인 어무적은 그 암울한 시대를 날카로운 언어로 고발했고, 곧은 사내 류헌은 끝까지 고개를 숙이지 않다가 허망하게 생을 마감했다. 사진은 코로나19 역병 창궐 전인..

옛날 우리나라 2020.07.22

[박종인의 땅의 歷史][220] 조선왕조 권력층의 부동산 폭력… 여가탈입(閭家奪入)

[박종인의 땅의 歷史] "나 양반이야, 상놈들은 집 내놓고 나가" 조선일보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07.15 03:14 | 수정 2020.07.15 06:27 [220] 조선왕조 권력층의 부동산 폭력… 여가탈입(閭家奪入)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작자 미상 '평생도(平生圖)'. 돌부터 죽음까지 사람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과거에 급제해 마을을 도는 그림 옆에 과거시험장 그림이 그려져 있다(오른쪽 사진). 영조 때 열린 과거에는 자그마치 11만 명이 넘는 응시생이 서울로 몰려들었다. 그때 서울 인구는 20만~30만 정도였다. 그럴 때면 정부는 민가를 철거해 과거시험장을 만들어야 했고, 과거에 급제해 벼슬아치가 된 선비들은 서울 여염집을 마음대로 빼앗는 '여가탈입' 작태를 수시로 벌였다. 흑백 사진은 ..

옛날 우리나라 2020.07.15

[박종인의 땅의 歷史] [219] 1589년 기축옥사와 선조가 압수한 적가문서(賊家文書)

[박종인의 땅의 歷史] 선비 1000명 학살범은 정철이 아니라 국왕 선조였다 조선일보 박종인 기자 입력 2020.07.07 03:14 | 수정 2020.07.07 03:31 [219] 1589년 기축옥사와 선조가 압수한 적가문서(賊家文書) 1589년 기축년 겨울에 벌어진 기축옥사(己丑獄事)는 그 전과 후 조선 정치 풍토를 갈라버린 참혹한 사건이었다. 논리로 싸우던 당쟁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쟁으로 변해버린 사건이다. 기축옥사는 서인이었던 정여립이 하룻밤 새에 여당인 동인으로 당적을 옮기고, 그가 반역을 꿈꾸다 발각돼 벌어진 사건이다. 역적 토벌을 빌미로 이후 3년 동안 1000명에 달하는 동인 선비가 학살당하고 유배당한(東人株連以千計·동인주련이천계: 이건창, '당의통략') 참극이다. 수사반장은 서인 당..

옛날 우리나라 2020.07.07

[박종인의 땅의 歷史] [218] 갑오년 조선 관비유학생 甲午年 朝鮮 官費留學生

나라가 유학 보낸 그들을, 나라가 버렸다 조선일보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06.30 03:11 [박종인의 땅의 歷史] [218] 갑오년 조선 관비유학생 甲午年 朝鮮 官費留學生 교복을 입은 청년들이 단체 사진을 찍었다. 맨 앞줄 가운데에 실크해트(silk hat)를 쓴 사람이 보인다. 의화군(훗날 의친왕) 이강으로 추정된다. 둘째 줄 왼쪽에는 흰 한복을 입은 여자가 한 사람 보인다. 이름은 김란사(金蘭史)다. 이 사진은 김란사 후손인 독립운동 연구가 김용택이 서울대 도서관에서 찾아낸 사진이다. 사진 위쪽에는 '대조선인 일본 유학생 친목회'라고 적혀 있다. 아래에는 '건양 원년 1월 6일 공사관 내 촬영'이라고 적혀 있다. 건양 원년은 1896년이다. 그해부터 조선은 양력(陽曆)을 썼다. 이 학생들은..

옛날 우리나라 2020.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