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의 성품 2016년 3월 31일 목요일
요한복음 21:1~21:9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 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성경 길라잡이
그 후에(1절): 막연한 시간을 가리킨다. 이는 어떤 부가적인 설명을 할 때에 사용하는 전형적인 연결사이다. 배에 올랐으나(3절): 여기서 ‘배’라는 단어의 원어를 보면,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다. 따라서 이 배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고기잡이하던 배와 같은 배이거나, 예수님께서 같이 타고 다니시던 배로 추정된다.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7절): 여기서 ‘주님’이라고 이야기 한 사람은 요한으로 보인다. 베드로는 이 말을 듣고는 바로 겉옷을 두르고 배에서 뛰어내렸다. 이런 점에서 두 사람의 대조적인 성향을 잘 볼 수 있다. 베드로는 배를 타고 온 다른 제자들과 달리 주님을 만나기 위해 급히 헤엄쳐서 왔다. 이를 통해 우리는 베드로는 마음이 어떤지 추측할 수 있다. 오십 칸쯤(8절): 문자적으로는 이백 규빗으로, 약 90 내지 100미터 정도 되는 거리이다. 숯불이 있는데(9절): 숯불이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사용된 곳은 2 곳인데, 여기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던 장면에서 이 단어가 등장한다. 두 장면은 숯불이라는 것으로 연결이 되어있다.
겉옷을 두른 후에(7절): 예수님을 뵙기 위해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행동이다.
1칸은 약 60cm정도이다. 따라서 50칸은 약 30m쯤 되는 거리이다. --------------------------???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의 성품 2016년 3월 31일 목요일
갈릴리로 돌아온 제자들은 다시 그들이 오랫동안 해왔던 고기 잡는 일을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고기를 잡다가 주님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제자들이 주님이심을 확인하였을 때 베드로는 즉시 반응합니다. 다른 제자들은 배를 타고 오지만, 베드로는 벗고 있던 몸에 급히 옷을 두르고 바로 물에 뛰어듭니다. 베드로의 기질이 발휘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주님에 대한 특별하고 간절한 감정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한편 사랑하시는 제자인 요한의 태도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부활의 날에 무덤에 맨 처음 도달하였지만 베드로를 기다렸고, 여기서도 베드로가 전면에 나설 수 있도록 비켜서고 있습니다. 요한이 베드로를 배려하는 모습에서, 왜 그가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권력욕이란 곧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린아이나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자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은 악한 모양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교묘하게 선한 모양으로 나 자신마저 속이며 드러날 때도 있습니다. 이 욕망은 채워지지 않을 때, 분노나 시기, 좌절과 낙망 등의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리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셔야 하고, 우리 세상의 중심은 그분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여야 합니다. 그분과 그 나라를 위하여 섬길 때 권력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낮은 자가 높아지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그 나라의 원리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 중에서도 권력욕은 특히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삶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육체의 몸을 입고 계실 때와는 달리 동선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나타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음에도, 곧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셨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제자들은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 채, 원래 그들이 하던 고기 잡는 일로 돌아갔습니다. 분명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기 잡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는데도 말입니다. 하여 예수님께서도 다시 과거의 모습 그대로 돌아가 제자들을 만나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대부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한 장소가 있습니다. 가령 어떤 친구에게는 그 자리가 수련회일 수 있고, 어떤 친구에게는 교회나 학교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장소에 다시 방문하게 될 때면, 알 수 없는 뜨거움이 밀려오곤 합니다. 특히 힘들거나 지쳤을 때면 그 장소를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 역시 그 옛날의 장소에서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명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언제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첫 사랑, 첫 믿음입니다. 날마다 그 기억을 되살릴 때,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을 보다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묵상질문
베드로가 주님을 보자 즉시 물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요한이 베드로에게 주님이시라는 것을 먼저 알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처음 만남에서처럼 다시 제자들에게 물고기를 잡게 하시는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볼 수 있나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한 나만의 장소는 어디인가요?
기도
내가 중심이 되고, 내가 먼저 되는 것이 아니라,
섬김의 모양과 자리에 상관없이 묵묵히 그리스도와 그분의 나라를 섬길 수 있게 해주십시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했던 그 기억을 되살리게 하시고,
그럼으로써 보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하나님 나라를 향한 삶을 살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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