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

[78]실패한 자를 위한 은혜 (요한 21:10~19) (CBS)

colorprom 2016. 4. 1. 16:10

실패한 자를 위한 은혜 2016년 4월 1일 금요일

 

요한복음 21:10~21:19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153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3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성경 길라잡이

 

물고기가 153 마리라(11절): 요한은 숫자를 셀 때 ‘약’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약 150마리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153이라는 숫자에 어떤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다양한 주장을 펼쳐왔다.

그러나 어거스틴이 설명하는 대로 이 숫자를 ‘하나의 큰 신비’로 생각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15절):

예수님께서 친히 지어 주신 ‘반석’이라는 뜻의 ‘베드로’라는 이름을 부르시지 않고, ‘시몬’이라고 부른 것은

그가 반석 같은 믿음을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해 간접적으로 꾸짖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실수한 베드로를 배려하고 격려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17절):

15, 16절에서는 ‘지식적으로 알다’라는 뜻의 ‘앎(오이다)’이 사용된 반면,

17절에서는 ‘체험적으로 알다’라는 뜻의 ‘앎(기노스코)’이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이는 예수님에 대한 확실한 사랑을 스스로 깨달았으며,

이를 예수님께 전달하려는 강한 열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19절): 베드로의 순교를 암시하는데, 대체로 십자가의 죽음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요한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어떠한 죽음’이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12: 33, 18: 32)

 

실패한 자를 위한 은혜 2016년 4월 1일 금요일

 

주님과 다시 만난 제자들은 주님께서 차려주신 조반을 함께 먹습니다.

그러나 조반을 함께 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베드로였을 것입니다.

주님을 부인한 후에 처음으로 주님을 뵌 것이었고,

둘러앉은 자리의 숯불은

분명 얼마 전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장소를 떠올리게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러한 베드로를 향해,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묻고 계십니다.

3 번의 물음은 베드로가 3 번 부인 한 것을 용서하시고 그를 회복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누구나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겸손히 주님을 향한 마음을 고백한다면, 그 실수와 실패를 용서하시고 용납하십니다.

그 증거로 주님께서는 더 큰 사명과 임무를 베드로에게 주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신앙적으로 실패한 인생들입니다.

앞으로도 성공보다는 실패할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 실패에 머물러있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분명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좀 더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실수와 실패 속에서 다시금 일어서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언제든지 우리의 실수와 실패를 다 용서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용서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옛 사람의 습성대로 죄와 악한 것에 사로잡혀 살아가지 말고,

실수와 실패를 통해 배우고 깨달아 예수님을 닮도록 변화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삶으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이미 예수님을 모른다고 3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 3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처음 갈릴리 호수에서 그들을 부르셨던 것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특히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왜 나를 모른다고 부인했어?”라는 책망이 아니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더군다나 3 번에 걸쳐서 이렇게 물으신 것은 베드로가 3 번 부인했던 것을 상기시키는 한편,

예수님에 대한 그의 사랑을 회복시키고 나아가 새로운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간혹 자신의 모습이 하나님의 자녀답지 못하고, 믿음도 형편없는 것 같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실망스러워 하실까 한탄하며 절망의 수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또 한편으론 이런 모습에서 벗어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힘만으로는 도무지 안 되고,

그래서 무기력감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예수님께서는 결코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확인하시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느냐는 것뿐입니다.

내 모습이 어떻더라도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여전히 남아있다면,

예수님께서는 언제든 나를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와서 조반 먹으라 (2020년 4월 29일 수요일) (1~14)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 마지막 밤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간곡히 부탁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32) 하지만, 베드로는 그 밤에도 세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했고,

심지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뵈옵고도 제자들을 선동해서 갈릴리호수로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3년 전,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절망했던 새벽, 주님의 소명을 받았던 그 갈릴리로 말입니다. 하룻밤에 세 번씩 부인한 것도 부족해서,

주님의 마지막 부탁이었던 '네 형제를 굳게 하라'신 말씀조차 불순종하면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배신의 아침에도 텅 빈 그물로 절망하는 베드로에게

다시 한 번 더 풍성한 고기를 선물로 주셨을 뿐 아니라,

따뜻한 아침을 준비하시고는 식탁으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요21:12)

여기에는 그 어떤 섭섭한 마음도, 그를 향한 꾸중도 담겨있지 않습니다.

오직 사랑하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부드러운 사랑의 초청만이 있었습니다.


우리를 죽도록 사랑하신 예수님, 지금도 같은 사랑으로 사랑하고 계시는 예수님,

오늘도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말씀의 식탁으로 달려나가야 하겠습니다.

밤새도록 추위에 떤 지친 몸과 고픈 배를 채울 수 있는 주님의 따뜻한 식탁과,

지난 허물과 죄를 다 쏟아놓고 그 사랑 안에서 안식할 수 있는 주님의 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실패의 처절한 새벽에도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눈과 세미한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소서. 아멘.

묵상질문

 

베드로가 주님께 세 번째 질문을 받고 근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시면서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

 

실수와 실패로부터 일어나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해주십시오.

 

나의 모습이 어떻더라도 예수님을 향한 사람이 내 안에 여전히 남아 있게 하시고,

그럼으로써 거기서부터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은혜와 용기를 얻을 수 있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