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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부유하신 하나님 (요한 20:11~18) (CBS)

colorprom 2016. 3. 28. 13:27

부유하신 하나님 2016년 3월 28일 월요일

 

요한복음 20:11~20:18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성경 길라잡이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12절):

이 천사들은 예수님의 시종을 드는 하나님의 사자들로 보인다.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와 메시지를 전하는 사명을 가지고 마리아 앞에 나타난 것이다.


나를 붙들지 말라(17절):

직역하면 나를 만지지 말라는 의미이다. 조금 더 정확한 의미는 ‘나에게 메어 달리지 말라’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다시는 잃지 않으려고 힘껏 붙들고 놓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17절):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써

예수님과 인간의 관계는 더 이상 육체적이 아니라, 성령을 통한 영적인 관계로 변화된다.

그래서 더 이상 스승과 제자가 아닌 형제로 제자들을 칭하시는 것이다.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17절):

부활 이후에 아직 육체적 승천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다.

 

부유하신 하나님 2016년 3월 28일 월요일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돌아가신 줄만 알았던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이전처럼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다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의 이러한 간절한 마음을 예수님께서는 조용히 거절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붙잡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로 올라가야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승귀’, 곧 높아지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올라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님께서 오시게 됩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올라가시지만,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누구에게나 살아가면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경험들이 있습니다.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느끼는 허탈감과 박탈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것을 되찾았을 때 느끼는 환희와 기쁨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바닥 모를 허탈함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망함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절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서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지만,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도록 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시며, 위로하시며 함께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오직 성령 하나님만이 진정으로 우리를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성령님의 부요함은 절대 모자람이 없습니다.

오늘 하루의 삶도 성령님께서 채워주시는 삶이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삶으로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임에도 불구하고 빈 무덤을 보고는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계속 무덤가에서 슬퍼하며 그곳을 떠날 줄 모르던 마리아

예수님에 대한 그녀의 깊은 사랑으로 인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맨 처음 만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경력이나 능력, 지위나 신분을 보고 그를 만나주시지 않고,

오직 예수님에 대한 그 사람의 진실하고 깊은 사랑만을 보시고 그를 만나주심을 보여줍니다.

또한 예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가진 사람만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의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거나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냄은 물론,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청소년의 때에는 예배보다 공부를, 신앙보다 실력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예배나 신앙의 문제는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도 하지 않게 됩니다.

복음은 우리의 실력이나 능력, 지위나 신분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예수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그로 인한 순종의 삶으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부활 체험 2017년 4월 22일 토요일 (요한 20:11~20)


부활을 체험하지 못하면 새로운 길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새로운 희망이 있어도 보지 못합니다.

혹은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새로운 길, 새로운 희망을 믿지 못하면 부활 또한 제대로 체험할 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은 자신들의 두 눈으로 빈 무덤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증언합니다.

"아직도 그들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반드시 살아나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

(요20:9, 새번역)

빈 무덤을 눈앞에 두고서도 그들은 어째서 깨닫지 못하였을까요?

추측컨대 그들이 너무나 큰 절망에 빠져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큰 절망에 빠져있으면 희망적 장면이 아무리 눈앞에 펼쳐져도 제대로 접수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이성적·합리적인 것 같지만, 중요한 순간엔 감정에 휘둘리기 쉽습니다.

절망감, 우울 같은 감정에 휘둘리면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판단하지도 못합니다.


빈 무덤을 목격한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앞에서 혼자 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무덤에 안 계시는 건데도 그녀는 예수님의 시신이 ‘분실’되었다고 여기면서

무덤 앞에서 웁니다.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십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다른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주십니다.

그제서야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고 기뻐합니다.(요20:20)


이렇듯 예수님은 여러 번 부활을 증거해주십니다.

단번에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해 부활을 체험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한심하다 꾸중하지 않으시고,

여러번 나타나주십니다. 부활을 체험하게 해주십니다.


묵상질문

 

오늘 우리를 진정으로 도우시며 위로하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자신의 승천을 제자들에게 알리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복음을 전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요?

 

기도

 

성령님의 부유함과 풍성함을 누리며 사는 삶이 되게 해주십시오.

 

내 안에 예수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부활의 기쁨이 넘치게 하시고,

그로 인해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복음과 생명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자비로우신 하나님! 주님의 부활이 우리의 기쁨이요 능력임을 고백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