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루었다 2016년 3월 26일 토요일
요한복음 19:28~19:42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31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5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37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42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성경 길라잡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29절):
신 포도주는 낮은 등급의 포도주이다.
쓴 풀을 섞어서 시게 만들어 사형수에게 먹이는 것으로 일종의 마취제처럼 고통을 덜게 해준다.
예수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것은 시편 29:21의 예언의 성취이다.
신 포도주를 스폰지 역할을 하는 해면에 적셔, 길이 1m가량의 갈대과 식물인 우슬초에 메여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입에 닿게 한 것이다.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31절): 이날은 안식일 전날이며 무교절 전날이기도 하다.
이날에 나무에 걸린 시체를 걸어두는 것은 불경한 일이기에
집행관들은 십자가에 달린 죄인들이 빨리 죽기를 바랐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다리로 버티지 못하도록 다리뼈를 부러뜨리려 하였다.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36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에 양을 먹을 때 다리의 뼈를 꺾지 않고 먹었다(출 12장 46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지켰던 유월절의 의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이로써 분명해졌다.
이는 구약성경 출 12:46와 민 9:12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이었다.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39절):
몰약은 시체를 보존하는 방부제이며, 침향은 냄새를 없애고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백 리트라는 약 33킬로그램 정도 되는 양으로, 적지 않은 양이라고 할 수 있다.
다 이루었다 2016년 3월 26일 토요일
“다 이루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다 성취하셨음을 이 한마디로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만이 이스라엘 유월절의 진정한 주인이심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애굽을 떠나던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비로소 완전하게 성취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구약의 수많은 예언과 예표들은 다 응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역사적 사건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사람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러한 십자가의 사건을 부인하거나,
사실과 다른 주장들로(가령 예수님께서 잠시 기절하신 것이라는) 십자가의 사건을 왜곡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요한이 증언하는 것처럼 이 모든 기록들은 진실로 ‘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이 옳을 수 있다고 여기는 상대적 진리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만이 참된 구원의 길이라 주장하는 기독교는 배타적 종교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따르거나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드러내는 일을 머뭇거립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참된 능력이 있음을 고백한다면,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그랬던 것처럼,
참된 진리를 사모하는 자들은 결국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야 합니다.
고난주간을 지키는 것은 바로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나와 상관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나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삶으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시체를 빨리 치우려고 서둘렀습니다. 왜냐하면 그 다음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은 거룩한 날이므로 부정한 시체를 계속 나무 위에 달아 놓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에도 나무 위에 달린 시체는 밤새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죄수들을 빨리 죽이기 위해 다리를 꺾었는데,
예수님의 경우는 이미 죽은 것을 확인하고 창으로 옆구리만 찔렀습니다.
이 후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시체를 가지고 가서 장례를 치렀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 하나하나는 모두 구약의 약속을 성취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눈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이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아래에서 결정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십자가는
눈에 보이는 세상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전혀 새로운 하나님의 질서를 세우는 강력한 사건입니다.
더불어 그것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삶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세상의 질서에 무작정 편승하려 하지 말고,
설령 패배처럼 보이는 삶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질서가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거룩한 고통 (2018년 3월 30일 금요일) (요한 19:28~30)
금요일이었습니다. 이날 예수님은 빌라도 법정에서 십자가형을 언도받으셨습니다.
곧바로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지고 올라가신 그 십자가에 매달려 양손과 발에 못이 박히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옆구리는 창에 찔리셨습니다.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이 씌워졌습니다.
그렇게 고통을 받으시다가 결국 운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날을 우리는 거룩한 금요일이라고 부릅니다.
무엇이, 어느 대목이 거룩합니까?
예수님께서 그토록 험하고 흉악한 고통을 당하셨는데, 도대체 뭐가 거룩하다는 것일까요?
여기서 '거룩'은 믿음의 눈에만 보이고 믿음의 마음에만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참혹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죄와 허물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죄에 대한 벌이 아니었습니다. 인류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정신적 영적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은 심지어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버려졌다고 느끼셨습니다.(마27:46)
예수님의 극단적 외로움은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그 큰 고통 중에 "내가 목마르다" 말씀하셨습니다.(요19:28)
누군가 신 포도주를 적셔서 주었을 때 그것을 받으셨습니다.(시69:21)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성경말씀을 이루셨습니다.(요19:28)
그분의 언행 전체가 '거룩'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 나를 위하여 육체적, 정신적, 영혼의 고통을 당하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게 하소서! 아멘.
하나님나라의 비밀요원들 (2020년 4월 11일 토요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성금요일과 부활하신 주일 사이에 놓인 날이 바로 오늘 토요일입니다. 성토요일(Holy Saturday)은 그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실존이 살아 숨 쉬는 일상과 가장 비슷한 날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땅에서 십자가(고난)와 부활(소망) 사이를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토요일 같은 일상을 통해 우리에게 어떠한 삶을 원하실까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군인들은 안식일 전에 시체를 치워달라는 요청을 받고 예수님께 와서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피와 물이 나옴을 보고 죽음을 확인합니다.(요19:32-33)
이제 십자가형으로 죽은 죄인의 시체는 공동묘지에 버려져 독수리와 들짐승의 먹이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누구 하나 나서서 주님의 시체를 거두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때, 지금까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었던 제자가 용기 있게 정체를 드러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후견인을 자처하고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당돌하게 요구하고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법대로 세마포로 싸고 향품을 발라 정성껏 장사를 치뤄드립니다.
자신의 가족을 위해 사두었던 새 무덤에 예수님을 모셨습니다.
또 한 사람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60근(약 2리터)이나 가지고 옵니다.
예수님의 죽음 앞에 절망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제자들의 모습과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오히려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행동했던 숨겨진 제자들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룹니다.
죽음의 자리,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 진정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
결정적 순간 희생과 헌신을 마다하지 않는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주님,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절망 속에서도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부활을 소망하게 하소서.
하나님나라의 숨겨진 제자로 살게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참이라는 사실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내 안에 세상의 질서에 편승하려는 욕망은 무엇이며, 십자가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기도
주님의 고난이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기억하며,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며 살게 해주십시오.
세상의 질서에 편승하고 싶은 욕망을 꺾고,
하나님의 질서가 드러나게 하는 십자가의 삶을 고민하며 추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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