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우리가 섬기는 왕은 누구입니까? 2016년 3월 24일 목요일
요한복음 19:1~19:16
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2 군병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3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8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10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있더라
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 6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성경 길라잡이
채찍질하더라(1절): 예수님께서는 사형 선고 전후에 모두 채찍질을 당하셨다.
로마인은 채찍질의 세 가지 형태로 하였는데,
여기서는 사형선고 이전이므로 가벼운 형태의 채찍질(푸스티가티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형선고 이후의 채찍질(막 15장 15절)은 심한 채찍질(베르베타티오)로,
주로 십자가형과 같은 극형을 선고받았을 때 당하는 끔찍하고도 고통스러운 형벌이었다.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1-2절): 여기서 ‘채찍’은 끝에 나비 모양의 작은 쇠붙이나 뼛조각이 붙어 있는 가죽끈으로,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위력을 지닌 살인적인 도구였다.
한편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신 것은 이사야의 예언의 성취이기도 했다.
또한 군인들은 왕이 쓰는 왕관과 옷을 흉내 내어 예수님께 가시나무 관과 자색 옷을 입혀 조롱했다.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6절): 십자가는 로마의 형벌이었다.
유대인의 형벌을 적용하면 신성모독죄는 돌로 쳐 죽여야 한다.
그러나 십자가형을 요구한 것은 그것이 나무에 달아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신명기(21장 23절)에서는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가이사(12절): 카이사르는 로마의 황제를 일컫는 말이다.
당시에는 아우구스투스에 이어 2대 황제로 티베리우스가 제위하고 있었다.
이 날은 유월절 준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14절):
여기서 ‘유월절 준비일’은 안식일의 예비일인 금요일을 말한다. 또한 ‘제 육시’는 오전 6시를 말한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시간을 ‘제 삼시’(막 15:25; 오전 9시)라고 기록하는데,
이 차이는 요한은 로마시간 계산법으로, 마가는 유대시간 계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재판받으신 시간은 오전 6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간은 오전 9시이다.
묵상과 삶
불과 닷새 전만 하더라도 예루살렘에 모여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이스라엘의 왕이여’하고 소리쳐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을 향하여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세 번이나 예수님의 무죄를 선언함으로 예수님이 죄 없음을 확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유대인들과 제사장들은 오랫동안 그토록 갈망하며 기다렸던 그들의 진정한 왕이자 구원자이신 메시야를 버리고, 로마의 황제를 자신의 왕으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백성이기를 포기하고
세상 왕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으로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음을 고백합니다.
그는 결국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이익을 위하여 불의와 타협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는 예수님의 무죄를 확신하여 석방하려고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의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모든 죄로부터 우리를 영원히 해방하신 메시야의 구원사역이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마지막 심판의 날은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마침내 오고야 말 것입니다.
고난주간을 우리가 기억하며 그분의 십자가를 묵상하는 것은, 그날이 우리에게 올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날을 고대하며, 또 그 마지막 날을 두려워하며 오늘 하루의 삶도 주님의 뜻대로 살아갑시다.
삶으로
빌라도는 군중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예수님을 희생시키기로 결정합니다.
비록 그가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는 성난 군중들과 정치적 입장 때문에 자신이 옳다는 주장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빌라도는 후에 총독의 자리에서 실각하여 고울(GAUL)지방으로 추방되었고,
그곳에서 자살하는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고 합니다.
이는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정의를 지키며 억울한 자의 편에 서기보다,
자신의 자리와 권력을 지키는 데 급급해 양심을 저버린 자가 맞게 되는 비참한 최후를 보여줍니다.
분위기나 다수의 압력에 자신의 소신이나 정의를 굽히고 그릇된 길로 가는 것은,
일시적으로 안위를 도모하는 것일지 모르나 결국에는 자신의 인생을 파멸로 이끄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길을 간다고 하면서
이 땅에서 잘 되거나 좋은 성적을 받거나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불의와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것,
잘못이 없는 친구를 험담하거나 약한 친구를 놀리는 것 등은
일시적으로 성공하고 즐거울지 모르나, 결국에는 예수님에게서 멀어지고 나를 파멸케 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살려면 어쩔 수 없어요.”라는 변명은 빌라도의 변명일 뿐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기준은 세상이 아니라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묵상질문
오늘 우리는 누구의 백성입니까? 우리가 섬기는 왕은 누구입니까?
빌라도가 예수님을 무리들에게 넘겨 준 이유는 무엇입니까?
빌라도와 예수님은 각각 그 권세의 근거를 어디에 두고 있었나요?
세상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기준이라면 내게서 바뀌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기도
주님의 마지막 심판 날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그날을 준비하는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다는 빌라도식의 변명을 대지 않고,
기꺼이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주세요.
'+ [요한]' 카테고리의 다른 글
[72]다 이루었다 (요한 19:28~42) (CBS) (0) | 2016.03.26 |
---|---|
[71][부활절]그리스도의 십자가 (요한 19:17~27) (CBS) (0) | 2016.03.25 |
[69][부활절]예수 나라 백성 (요한 18:28~40) (CBS) (0) | 2016.03.23 |
[68][부활절]주님을 가르침을 따르는 삶 (요한 18:12~27) (CBS) (0) | 2016.03.23 |
[67][부활절]자발적 순종 (요한 18:1~11) (CBS) (0) | 2016.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