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가르침을 따르는 삶 2016년 3월 22일 화요일
요한복음 18:12~18:27
12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13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19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던 아랫사람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24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성경 길라잡이
안나스(13절):
요세푸스에 따르면 주후 6년부터 15년까지 대제사장이었고,
사위뿐만 아니라 그의 다섯 아들들도 대제사장이 됨으로써 막강한 종교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비록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때에 안나스는 대제사장직에 있지 않았지만,
전관예우의 차원에서 대제사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대제장직을 떠나도 대제사장은 여전히 자신의 의무와 신성함을 유지하였다.
또 다른 제자(15절):
여기서 또 다른 제자는 대체로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 곧 요한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요한이 아니라 니고데모였다는 주장도 있다.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15절): 베드로는 앞서 예수님과 함께 죽는 데까지 가겠다고 다짐을 했으나(요 13장 37절), 예수님께서는 즉시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할 것을 말씀하셨다. 일단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잡혀가시는 것을 따라갔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같이 갈 수는 없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여(요 13: 38, 18:17, 25, 27) 예수님의 제자임을 철저히 부인한다. 그 사이에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심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베드로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밝히 드러내시는 것과 대조된다.
나는 아니라 하고(17절):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19절):
예수님의 가르침이 말하는 중심 사상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받아들인 백성들이 민란을 일으키고 로마에 항거할 경우,
로마로부터 자신들이 얻은 기득권마저 빼앗기지 않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에 대한 질문은 어떤 세력을 결집했는가를 묻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고 하시지만, 그러나 그 들은 자들,
곧 제자인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다.
결국 예수님께서 홀로 가시는 구원의 길이다.
드러내 놓고 … 은밀하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20절):
예수님께서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솔직하고 명백하게 가르치셨다.
이는 예수님에게 어떤 비밀스러운 조직이나 의식 같은 것이 전혀 없음을 나타낸다.
주님을 가르침을 따르는 삶 2016년 3월 22일 화요일
안나스가 가르침과 제자들에 관하여 예수님을 심문할 때,
예수님께서는 은밀히 가르친 것이 없으니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에게 물어보라고 당당히 변호하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제자들을 변호하고 계시던 때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가르침을 들었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또 부인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심문을 당하시는 장면과 베드로가 부인하는 장면을 대조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제자인 베드로의 이러한 행동은
사실 손으로 예수님을 때렸던 하인의 행동보다 더욱 치욕스러운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당하셨던 가장 큰 치욕은
로마병사나 대제사장과 그 아랫사람들로부터 당했던 모멸과 멸시가 아니라,
가장 가깝게 지냈던 제자들로부터 거부당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특히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힘겨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크게 낙심될 때는 믿었던 사람에게로부터 배신당하거나 거부당했을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룻밤 사이에 제자들인 유다와 베드로부터 배신당하고 거부당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변호하셨으며, 그들을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쩌면 유다와 베드로는 우리 모두의 대표입니다.
주님을 거부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모른 체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베드로의 삶이요, 유다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부인해야 할 만한 절박한 상황이 처해있지 않지만,
주님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따르지 않는 삶은 주님을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베드로처럼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주님을 따르는 참 제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시다.
삶으로
당시 안나스는 비록 로마인들에 의해 제사장직을 박탈당하긴 했으나, 자기의 사위인 가야바를 대제사장으로 세움으로써 그 이름을 등에 업고 온갖 불의와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먼저 안나스에게 끌고 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안나스는 예수님에게서 고소할만한 특별한 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가야바에게 보내었습니다. 한편 예수님을 절대 버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예언대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하는 연약하고 비열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거나 힘을 가진 자들이 불의와 비리, 불법을 행사하게 되면, 정상적인 판단이나 표현이 불가능해집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지위와 기득권을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두려움을 조장하는 등 악한 일에 그들의 힘을 남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두려움을 이기고 믿음에 따라 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닙니다. 그 용감했던 베드로조차 실패했으니까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분위기에 굴복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담대하게 그분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이 길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만이 홀로 가시는 복음의 길 2014년 4월 15일 화요일
예수님께서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13:1). 그리고 하나라도 잃어버리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17:2, 18:9). 이런 십자가의 길은 누가 대신 가거나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죄를 속하기 위한 대속제물이 되시는 길이기에 그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 죄를 대속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한 길을 가십니다. 베드로조차 무력하게 예수님을 부인함으로써, 이 길이 홀로 가시는 길임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인간됨에 대한 탐구이고, 또한 역사 속 우리 인생의 한 모델로서 자신을 비우신 예수님을 탐구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이런 연구가 예수님의 삶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가장 가까운 제자였던 베드로조차 따라가지 못했던 길을 홀로 가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홀로 가신 길을 통해서 하나님나라가 세상에 완전히 이르게 되었습니다. 속죄와 화목의 길을 여셨습니다. 철저한 버림 속에서 의의 길을 열어가십니다. 배반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먼저 주님만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죄가 얼마나 큰 짐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 십자가의 길이 주는 위로를 붙잡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면서 사는 자들이 되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가신 그 길만이 내 삶의 유일한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줄 수 없는 위로입니다.
최근에 복음서 연구의 한 중요한 방향이 역사적 예수 탐구입니다.
우리는 먼저 버림받은 예수님을 깊이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는 아니라 (2020년 4월 10일 금요일)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따르는 우리의 정체성은 '제자,' 즉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제자의 제자됨, 신앙인의 신분과 정체성은 십자가 앞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으뜸 제자였던 베드로는 십자가를 앞두고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우발적인 실수나 순간적인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적어도 몇 시간에 걸쳐서 각각 다른 세 명의 사람에게 직접 질문을 받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14장 68절에서처럼 나는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다고 얼버무림으로써 예수님의 제자됨을 부인하고 자기의 목숨을 지켰던 것입니다. 안나스의 집 문을 지키던 여종이 묻습니다.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나는 아니라!"(요18:17) 대제사장과 예수님의 문답이 이어지고 예수님은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끌려갑니다. 시간이 흘러 날씨가 차갑습니다. 불을 쬐는 사람들 틈에 있던 베드로에게 사람들이 묻습니다.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또 부인합니다. "나는 아니라!"(요18:25) 이번에는 대제사장의 종 하나가 베드로가 자신의 친척의 귀를 자른 것을 목격한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묻습니다.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요18:26,27) 십자가 앞에서, 닭이 울 때에, "너도 그의 제자이냐?" 묻는다면,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했을까요? 나는 베드로와 달랐을까요? 다시 베드로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나는 아니라!' + 주님, 십자가 지실 때 이 죄인은 베드로처럼 부인하고 또 부인하였습니다. 무지하고 비겁하고 오만한 이 죄인을 긍휼히 여기소서. 아멘.
묵상질문
베드로가 부인하는 내용을 들으신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나 변명을 들자면 무엇일까요?
오늘날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삶의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하십니까?
기도
주님의 가르침과 뜻을 거부하고 배반하는 삶이 아니라, 항상 기억하며 쫓아가는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상황에 따라 믿음이 변하고 예수님의 길도 걸었다 말았다 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늘 한결같은 믿음으로 예수님의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주세요.
- 홀로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 주님만이 가신 십자가의 그 길을 우리가 받고, 그 주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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