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바깥 세상 193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40] 투기광풍 원조는 17세기 튤립

투기광풍 원조는 17세기 튤립… 그때도 서민들이 ‘영끌’ 매수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40] 비트코인도 울고갈 튤립 광기의 전말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사학 입력 2021.05.04 03:00 | 수정 2021.05.04 03:00 튤립은 오늘날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꽃이 되었다. 4월이 되면 수백만 송이의 튤립이 피어나는 쾨켄호프(Keukenhof) 공원은 천국의 정원 같은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한때 이 순수한 꽃들마저 비트코인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투기 대상이 된 적도 있다. 네덜란드 정물화가 한스 불롱히에르의 그림 '꽃이 있는 정물'(1639).흰 꽃잎에 붉은 무늬가 있는 튤립이 '셈페르 아우구스투스'로 5500길더였다는 기록도 있다. 미 시카고대에 따르면 5500길더는 현재 가치로 환산할때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39] 귀족 교양수업이 해외투어 시초… 여행은 병 고치는 약이었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39] 귀족 교양수업이 해외투어 시초… 여행은 병 고치는 약이었다 여행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코로나 주경철 교수 입력 2021.04.20 03:00 | 수정 2021.04.20 03:00 코로나19의 발병으로 세상이 얼어붙었다. 전 세계를 휘젓고 다니던 관광객 인파가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러고 보면 현대 세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여행의 보편화일 터인데, 인류는 돌연 먼 옛날로 돌아간 셈이다. 영국 화가 에이브러햄 솔로몬의 1862년 작품‘비아리츠에서의 출발’. 요양차 프랑스 비아리츠에 머물던 솔로몬이 공공 합승 마차에 타려던 승객들의 모습을 그렸다. 떠날 준비를 하는 수녀부터 승객들에게 물건을 파는 행상까지 이 그림에는 여행을 준비하는 프랑스인들의 다양한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35]신성한 소, 풍요의 소, 재앙의 소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35] ‘제우스 화신’ 숭배받던 소… 이젠 10억마리, 메탄 뿜는 가축 전락 신성한 소, 풍요의 소, 재앙의 소 주경철 교수 입력 2021.02.23 03:12 | 수정 2021.02.23 03:12 인류 역사 초기부터 소는 신성한 동물이었다. 기원전 7000년 경부터 번성했던 신석기 시대의 중요한 유적지 차탈휘익(Çatalhöyük)에서는 소를 숭배한 흔적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거대한 황소 신을 나타낸 벽화라든지(그림), 건물 내부 깊숙한 곳에 모셔둔 소뿔 같은 것들이 그런 사례들이다. 연구자들은 이 황소 신이 후일 지중해 여러 지역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 예컨대 고대 이집트의 아피스(Apis)나 그리스의 제우스 같은 황소 형상의 신으로 발전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34] 함무라비 법전과4000년전의 公正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34] 함무라비 ‘눈에는 눈’ 형벌… 古代 보복 살해를 멈춘 公正이었다 함무라비 법전과4000년전의 公正 주경철 교수 입력 2021.02.09 03:00 “백성들의 목자이며 유능한 왕으로서 평화를 지키고 악과 부정을 없애겠노라.” 메소포타미아 전 지역을 포괄하는 바빌로니아 제국을 건설한 함무라비 왕은 수도 바빌론 중앙광장에 검은 현무암으로 된 ‘함무라비 법전 석비'를 세우며 서문에서 이렇게 선포했다. 이 석비는 고대 국가의 공정과 균형에 대한 감각을 들여다보며 약 4000년이 흐른 지금 인간 사회는 얼마나 더 성숙해졌는지 돌아보게 하는 세계사의 거울이다. 함무라비 왕의 재판 모습을 묘사한 그림/AFP 바빌론 왕조의 6대 국왕 함무라비(재위 기원전 1792~1750년 추정)는..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33]포퓰리스트 네로 황제초강대국 로마의 위기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33] 황후·귀족 때려잡고 식량 푼 네로… 민중은 한때 환호했다 포퓰리스트 네로 황제초강대국 로마의 위기 주경철 교수 입력 2021.01.26 03:00 미국을 흔히 로마제국에 비교한다. 간혹 자질이 형편없는 지도자가 등장하여 국가를 위기에 빠뜨리는 현상도 비슷하다. 로마 황제 중에 용렬한 인간들은 수도 없이 많으나 네로(Nero 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재위 서기 54~68년)만큼 세상을 어지럽힌 인물도 드물다. 네로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와 연결된 유력 왕실 가문 출신이지만, 궁중 암투가 난무하는 시대 상황에서 그의 가족들은 극심한 고난을 겪었다. 그가 네 살 때 죽은 아버지는 독살 가능성이 크다. 어머니 아그리피나 역시 생사를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32]‘투키디데스 함정’ 통해 본 1인자와 2인자의 충돌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32]美·中 패권전쟁 끝은… 2500년전 아테네·스파르타가 보여줬다 ‘투키디데스 함정’ 통해 본 1인자와 2인자의 충돌 주경철 교수 입력 2021.01.12 03:00 미국과 중국은 장차 필연적으로 전쟁에 돌입할까?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자신의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새로 부상하는 세력이 기존 지배 세력을 대체할 정도로 위협적일 경우 그에 따른 구조적 압박이 무력 충돌로 이어지는 현상은 예외가 아니라 거의 법칙’이라고 설명하면서 전쟁 가능성을 높게 예상한다. 경제·군사적으로 급성장하는 중국에 대해 기존 패권 국가인 미국이 경계심과 공포심을 느끼게 되고, 이런 갈등이 심화될 때 작은 불씨가 결국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아테네의 급부상이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31] 민주독재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31] 다수에 의한 민주독재, 19세기가 대한민국 정치를 경고했다 민주독재 주경철 교수 입력 2020.12.29 03:00 2020년은 병든 한 해였다. 코비드19가 우리 몸을 병들게 하듯, ‘다수의 압제’라는 열병이 대한민국을 괴롭혔다. 숫자 싸움에서 이긴 ‘다수’는 손안에 들어온 권력을 미친 듯 휘둘렀고, ‘소수’는 별다른 대처 방식을 찾지 못한 채 거칠지만 무능력한 저항을 일삼았다. 올 한 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를 고르라면 ‘이전투구(泥田鬪狗·진흙 밭에서 뒹굴며 싸우는 개)’를 택하고 싶다. 후대의 역사가는 현재 한국 정치 상황을 두고 민주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타락해 가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할 것 같다. 미국 화가 케일럽 빙엄의 그림‘카운티 선거’. 1840년대 미..

[박종호의 문화一流] 나치를 피해 유럽서 브라질까지… 고향 잃은 지식인의 절망

[박종호의 문화一流] 나치를 피해 유럽서 브라질까지… 고향 잃은 지식인의 절망 전기문학 새 지평 연 작가 츠바이크가 15년 산 잘츠부르크 집 유대인 탄압한 나치 광기 겪으며 재산·장서 다 두고 런던 피신 끝내 귀향 못 한 비극적 생애… 저택엔 그 인류애의 유산 남아 박종호 풍월당 대표 입력 2020.12.28 03:00 오스트리아 세기말 문화의 중심이던 빈에서 태어나 당대의 가장 각광받는 작가가 됐지만 나치의 광기를 피해 잘츠부르크의 집을 떠나 해외로 피신한 뒤,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에 시달리다 브라질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 /츠바이크센터 홈페이지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유럽에 가는 것이 힘들어졌지만, 유럽에서도 잘츠부르크는 오랫동안 ..

[송동훈의 세계 문명 기행]대서양 첫 단독비행한 찰스 린드버그, 그의 삶이 던지는 화두

[송동훈의 세계 문명 기행] 독재자를 추앙한 죄… 비행왕의 추락이 시작됐다 대서양 첫 단독비행한 찰스 린드버그, 그의 삶이 던지는 화두 뉴욕=송동훈 문명탐험가 입력 2020.12.22 03:00 1927년 5월 21일 린드버그가 몰고 간 ‘세인트루이스 정신’ 항공기가 파리 르부르제 비행장에 도착하자 수만 명 인파가 그를 환영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린드버그는 에펠탑 위를 선회한 후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린드버그는 뉴욕 귀국 환영 행사에서도 400만명 이상에게 환호를 받았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뉴욕은 마천루의 도시다. 규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동시에 퍼레이드의 도시다. 운이 좋으면 마천루 사이를 가로지르는 퍼레이드를 보게 되는데, 장관(壯觀)이다. 내가 본 가장 인상적인 퍼레이드는 3월마다 열리는 아..

[일본]일본 패망을 부른 가짜 깃발 작전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0] 일본 패망을 부른 가짜 깃발 작전 신상목 대표 입력 2020.12.18 03:00 1931년 9월 18일 심야 주봉천(奉天) 일본 총영사관에 중화민국 교섭서(署) 일본과에서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일본군이 봉천 일대를 포위한 채 중국군을 공격하고 있으며, 중국군은 교전 확대를 우려하여 무저항으로 대응하고 있으니 일본군의 공격을 중지해달라는 긴급 요청이었다. 하야시 규지로(林久治郎) 총영사가 즉각 이타가키 세이시로(板垣征四郎) 관동군 고급참모에게 연락을 취해 중국 측의 요청을 알리고 군사작전 중지를 요청했지만, 이타가키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금번 사태는 중국 측 공격으로 시작된 것이며 이를 철저히 응징하는 것이 군의 방침이니 더 이상 간여하지 말라는 협박이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