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바깥 세상 193

[대영제국에서 온 편지] [20] “죽을 때까지 처녀였노라” 여왕은 이 묘비명을 원했다

[대영제국에서 온 편지] [20] “죽을 때까지 처녀였노라” 여왕은 이 묘비명을 원했다 장일현 기자 입력 2021.12.14 00:00 여왕은 회색 말을 타고 나타났습니다. 하얀색 벨벳 드레스 위로 철제 갑옷을 입었고, 머리엔 깃털장식 투구를 썼습니다. 손에는 지휘봉이 들었습니다. 수행원은 단 6명. 오르몬드 백작이 군 통수권을 상징하는 ‘국가의 검(Sword of State)’을 쳐들고 앞장섰고, 말고삐를 잡은 시동과 여왕의 투구를 올려놓는 쿠션을 든 수행원, 여왕을 태운 말이 뒤를 이었습니다. 말 옆구리쪽으로 비스듬히 앉은 여왕의 오른쪽엔 레스터 백작이, 왼쪽엔 에식스 백작이 걸었고, 맨 뒤엔 여왕의 모든 전쟁에 참전하고 있는 존 노리스 경이 따랐습니다. ◇ 틸버리 연설 1588년 8월 9일 잉글랜드..

[송동훈의 세계 문명 기행] [66]하딩, ‘오하이오 갱’의 꼭두각시가 된 최악의 대통령

[송동훈의 세계 문명 기행] [66] ‘오하이오 갱’의 꼭두각시가 된 최악의 대통령… 초상화는 말이 없다 송동훈 문명 탐험가 입력 2020.12.08 03:00 시인 월트 휘트먼의 극찬대로 그리스 고전주의 양식을 본뜬 국립 초상화박물관의 외관은 웅장하고 우아하다./게티이미지뱅크 박물관 내부의 중정은 독특한 천장으로 인해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대영박물관 천장을 설계·시공한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 회사 작품인 탓에 대영박물관과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한다./위키피디아 APK 워싱턴의 국립초상화박물관은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이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을 닮은 외관부터가 웅장하고 아름답다. 특허청사로 썼던 이 건물은 백악관, 국회의사당(The Capitol)에 이은 워싱턴의 세 번째 공공 건물..

혹한에도 왕들은 전쟁에 몰두… 병사들 코와 귀까지 사라졌다

혹한에도 왕들은 전쟁에 몰두… 병사들 코와 귀까지 사라졌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1.12.07 03:00 얼어붙은 런던 템스강 위에 열린 장터… 축구·볼링·썰매 경기도 벌여 - 1600년부터 1814년까지, 겨울이면 영국 런던 템스강이 자주 얼어붙었다. 런던 사람들은 두꺼운 얼음 위에 온갖 상점이며 주점 등을 세워 ‘템스강 얼음 장(Thames Frost Fairs)’을 열고, 축구와 볼링, 썰매와 스케이트 경기도 벌였다. ‘소빙하기’ 중에서도 가장 기온이 낮았던 이 시기, 사람들은 얼어붙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걸어서 건넜고, 스웨덴군은 발트해의 얼음 위를 건너 덴마크 코펜하겐을 공격했으며, 이탈리아인들은 베네치아의 꽁꽁 언 호수 위에서 스케이트를 탔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잉글랜드에서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46] [17세기 영국 명예혁명] [하] 재정 주도권 쥐고권력 견제한 의회

왕이 돈 함부로 쓰자… 의회는 1파운드까지 꼼꼼히 검증했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46] [17세기 영국 명예혁명] [하] 재정 주도권 쥐고권력 견제한 의회 주경철 교수 입력 2021.07.27 03:00 명예혁명으로 영국 왕이 된 윌리엄은 곧 유럽 각국이 합종연횡해 싸웠던 ‘9년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의회가 국가 재정을 장악한 영국 정부는 막대한 전비를 조달하기 위해 혁신적인 해결책을 도입했다. 조세 저항을 피하기 위해 상품과 서비스에 부과하는 간접세를 늘리면서, 동시에 매년 확정 이자를 지급하는 영구채(永久債·consol)를 발행한 것이다. 국민은 무거운 세금을 내기만 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던 시대, 영원히 나라에서 이자를 받을 수 있는 국채는 매력적이었다. 영란은행에 투자 배당금을 받으러 ..

[영국]명예혁명은 재정혁명

[차현진의 돈과 세상] [26] 명예혁명은 재정혁명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입력 2021.07.01 03:00 영국의 마지막 가톨릭 왕 제임스 2세를 몰아낸 명예혁명 주동자 7인을 '불멸의 7인(the immortal seven)'이라 부른다. 슈루즈베리 백작 찰스 탤벗, 데번셔 백작 윌리엄 캐번디시, 댄비 백작 토머스 오즈번, 스카브러 백작 리처드 럼리, 런던 주교 헨리 콤프턴, 오퍼드 백작 에드워드 러셀, 롬니 백작 헨리 시드니 등 일곱 사람. 그림은 훗날 잉글랜드왕 윌리엄 3세가 되는 네덜란드 오라녜공 빌렘에게 보내는 초대장을 쓴 롬니 백작. 그림은 플랑드르와 스페인 출신의 잉글랜드 화가 존 뱁티스트 머디나 경이 그린 '롬니 제1공작 헨리 시드니 초상화'(네덜란드 헤이그 영국 대사관 소장). 존..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44][나폴레옹 다시 보기] [下] 제국의 종말

자신만이 정의라 믿은 독재자 나폴레옹… 러시아 눈밭서 신화는 끝났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44] [나폴레옹 다시 보기] [下] 제국의 종말 주경철 교수 입력 2021.06.29 03:00 1811년경, 나폴레옹은 권력의 정점에 섰다. 유럽 대부분 지역이 같은 법률과 행정 체제를 따랐고, 모두 프랑스에 군 병력을 제공해야 했다. 2~3년 후 이 체제가 종말을 맞으리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제국 체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외국의 침략과 지배를 받는 나라에서 민족 감정이 분출하는 것은 정해진 이치다. 한번 제국 체제에 균열이 생기면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등 피압박 국가들이 곧장 저항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프랑스 내부적으로도 왕당파, 공화파, 가톨릭 세력 등..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43] [나폴레옹 다시 보기] [중] 제국의 끝없는 전쟁

교황을 들러리로 만든 나폴레옹, 유럽을 가족기업처럼 주물렀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43] [나폴레옹 다시 보기] [중] 제국의 끝없는 전쟁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1.06.15 03:00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나폴레옹은 무력 팽창을 시도했다. 우선 프랑스혁명 중 상실한 식민 제국을 재건하겠다며 1801년 말에 처남 르클레르 장군이 지휘하는 2만명의 원정군을 카리브해의 생도맹그섬에 파견했다. 이 원정은 재앙으로 끝났다. 프랑스혁명 당시 해방되어 이미 자유의 맛을 알게 된 흑인들은 다시 노예제로 돌아가느니 필사적으로 저항하였다. 여기에 가공할 만한 감염병인 황열병이 퍼져 엄청난 수의 프랑스군이 희생됐다. 결국 프랑스군은 항복하고 생도맹그는 1804년 1월 1일 세계 최초의 해방 노..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42] [나폴레옹 다시 보기] [상] 권력 잡은 섬소년

나폴레옹으로 이름 바꾸고 30살에 쿠데타… 코르시카 ‘촌놈’, 대권을 잡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42] [나폴레옹 다시 보기] [상] 권력 잡은 섬소년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1.06.01 03:00 “천재적인 인물들은 자신을 불태워 세기(世紀)를 밝히는 유성(流星)이다.” 초급 장교 시절이던 1791년, 나폴레옹이 리옹 아카데미 콩쿠르에 참가하여 쓴 글이다. 마치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는 듯하다. 이 악마적인 영웅은 조만간 자신을 불태우고 유럽 대륙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다. 나폴레옹 신화의 시작, 이탈리아 1차 원정 -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공화국 정부가 탄생하자, 오스트리아·프로이센·영국·러시아 등 제정 국가들은 혁명의 기운에 긴장했고, 1792년‘프랑스 대혁명 전쟁’이..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41] 나폴레옹 서거 200주기 어떻게 신화가 됐나

히틀러처럼 수백만명 죽였지만… 나폴레옹은 영웅으로 부활했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41] 나폴레옹 서거 200주기 어떻게 신화가 됐나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1.05.18 03:00 | 수정 2021.05.18 03:00 지금부터 200년 전인 1821년 5월 5일, 남대서양 한복판에 위치한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폐되어 있던 나폴레옹이 사망했다. 그 소식은 두 달이 걸려서야 유럽에 전해졌다. 마지막 시기 나폴레옹은 한때 스페인에서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유럽 대륙을 지배했던 황제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40일 넘게 시름시름 앓으며 자리를 보전하다가, 죽으면 배를 갈라 혹시 자신이 아버지처럼 위암에 걸린 게 아닌지 확인해 보라고 요청했다. 검시 결과 실제로 위암이었다. 독살설은 뜬소문..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 [10] 유대인의 영국 이주와 美연준 탄생 역사 [上]

영국이 해상권력 거머쥐자… 유대인의 돈도 도버해협을 건넜다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 [10] 유대인의 영국 이주와 美연준 탄생 역사 [上]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 입력 2021.05.11 03:00 | 수정 2021.05.11 03:00 ‘수출 규제’로 뒤바뀐 제국의 운명 달러 발행은 왜 국채와 연동되었을까? 그 연원을 살펴보려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조금은 긴 여행이다. 1913년에 설립된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영국의 영란은행 시스템을 그대로 모방했다. 그렇다면 영란은행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17세기에 네덜란드 유대인들이 통째로 영국으로 옮겨온 과정과 영란은행 설립 배경을 알아야 한다. 네덜란드 유대인들이 도버 해협을 건넌 가장 큰 이유는 1588년 칼레 해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