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미(유니스) 목사님 묵상입니다.
2022. 10. 7. 금요일
임 은미 (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너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요한복음 21장
지금까지 살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나는 만났다고 생각한다.
내 스마트 폰에 연락처에 보면 아마 4,000명 넘는 연락처가 있는 것 같다.
내 묵상을 읽는 분들도, 묵상을 녹음한 것과 함께 "미니 메시지"를 듣는 분들도
이전보다 많아졌다.
내 묵상을 읽는 분들이 이전보다 많아졌기 때문에
한편 내 묵상의 내용은 이렇게 저렇게 필터를 해야 하는 경우도 없잖아 생기게 되었다.
이전에는 정말 자유(?) 하게 올렸던 여러 가지 일들을
요즘은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하고..
이 글 읽으면 누군가 시험(?)들 수 있겠지? 이런 생각까지 하곤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28년의 세월 동안 내 묵상을 읽어 주신 분들이 그럴때 마다 새삼 더 고맙다.
그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고, 믿어주고, 함께 해 주신 분들이
바로 그런 분들이니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나름 내가 하지 않고자 노력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남을 부러워" 하는 것이다.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어떤 사람은 나 보다
학력이 더 높은 사람, 외모가 더 뛰어난 사람, 재물이 많은 사람들 등 등
비교로 한다면
그야말로 더 더 더 내가 부러워할 만한 것들이 많이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데
나는 그들을 부러워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가 있다.
세상에 많은 일들이 "공평하지 않은 일"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사는 케냐만 해도 가난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나는 미국이나 한국에서 음식 남겨서 버리는 것을 정말 죄스럽게 생각한다.
내가 아마 케냐 선교사가 아니었으면 그러지 않을 것도 같다.
케냐에서 우리 부부는 지난 25년간 거의 매주 토요일 아이들에게
"토요 천국 잔치"라는 이름으로 성경 가르쳐 주고 점심을 주는 사역을 돕는 데
어느 날 어느 아이가 땅에 떨어진 음식을 줍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렇게 땅에 먼지가 묻은 음식을 왜 줍냐고 했더니
오늘 자기 동생이 아파서 토요 예배에 못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주운 음식은 집에 있는 동생 갖다 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얼마나 짠했던지..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얼마 전에는 한 달에 2만 명씩 주민들에게 식량을 배급하는 일을 담당하는
책임자 위클리프한테 연락이 왔다.
정부에서 식량 도움을 요청해 왔다고 한다.
아마 리무르 우리가 사는 동네 주민들의 식량 배급을
우리가 꾸준히 한 소문이 나서인 것 같다.
코로나때 보다 지금이 더 식량난이라고 한다.
물가가 다 올라갔으니 당연하다.
나로서는 한국에서 헌금을 케냐로 보내니
달러 환율이 많이 올라가서 재정이 이전 같지 않다.
기술학교 운영비 올라가!
식량 나눠주는 재정 올라가!
많은 것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왜 어떤 사람은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나고 왜 어떤 사람은 선진국에서 태어날까?
그런데 우리는 같은 예수님을 믿는다!
나 이런 생각 이전에 없잖아 해 보았다.
그리고 나는 왜 나의 가정이 그런(?) 가정에서 태어난 것일까?
나는 왜 그렇게 자라야 했지?
그런 것들도 많이 생각했다.
나는 "자기연민" 이라는 죄를 가장 싫어한다는 말을 가끔 하는데
나에게 가장 뿌리 깊게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 바로 "서글픔의 영"인 것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서글픈 일들이 있다.
그냥 서럽기만 하다.
그래서 "청승의 영" 떠나갈지어다!, 대적 기도 나 많이 한다.
서럽고 서글프고.. 등 등 등
그러나?
남들을 부러워 하지 않고자 작정한 이유는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공평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돈이 없어도, 남들처럼 건강 없어도, 남들처럼 명예 없어도
남들처럼...남들처럼..그렇게 비교한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누구에게나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을
공평하게 주셨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많이 가진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 가운데 "부자"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많이 가진것 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조금 먼 발치에서 본 적은 있는 것 같다.
난 그런 사람들의 "누림"을 감사 한다.
주님이 그들에게 주신 것이니 말이다
나도 주님께 받은 것은 엄청 많다!
내가 가진 것은 일단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ㅎㅎ
마음의 평강!
마음에 자책할 것 없음!
정직이 주는 편안함!
베푸는 것 급히 하는 마음! 등 등
그러니 나에게 무슨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주님이시기 때문에
주님은 무엇을 어떻게 하셨다 해도
나에게는 "공평하신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이다.
어제는 마음에 이런 저런 심란한 일들도 많았지만
역시
"쥐어짜듯 짜 낸 감사"로 짜증도 이겼고 내 성질도 이겼다.
아!
그리고 특별히 감사한 일이 있다.
호텔 바로 앞에 IOPE 라고 미국 팬케이크 집이 있는 것이다 ㅎㅎ
울 딸이 좋아하는 것이 팬케이크이다.
오우!
집에 갈 때 저거 사갖고 가야겠구나 그 생각이 그 간판 보자 마자 생각이 나서 감사!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은 주님 주신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이렇게 능력이 풍성하니 내 어찌 감사하지 않으리오!
그 누구를 부러워해야 하리오!!
요 한 복 음 21 장
22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Jesus answered,
"If I want him to remain alive until I return, what is that to you?
You must follow me."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제자 요한에 대하여 물었을 때 주님이 하신 대답이셨다.
본문의 맥락을 성경에서 그대로 옮겨온다.
***
요한복음 21장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
베드로, 요한, 모두 예수님의 수제자들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쫓게 되었는지 그 시간은 비슷했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다가 죽은 시간은 동일하지 않다.
그들의 죽은 방법 역시 동일하지 않다.
예수님을 부인하던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죽는 순교의 길을 걸었지만
요한은 그렇지 않다.
가장 오래된 나이까지 살았으며
그는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고 자연사를 한 제자였다고 한다.
오늘 주님은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나에게도 하시는 듯 하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세상에 많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
꼭 말씀 사역을 하는 주의 종들뿐 아니라
사업가도
교육가도
가정주부도
편의점에 알바생도
각자 주님의 부르심으로 "주의 말씀을 순종하며 따라가는 종"들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이렇게 주님은 나에게도 말씀 하신다.
비교하고자 하면 비교할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오늘 저는 어디에 있어야 하며 무엇을 하고 있어야
그것이 주님 보시기에 "나를 따르라"에 순종하는 저의 모습일까요?
어느 날은 열심히 주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리가 주님을 따르는 자리이지만
어느 날은 그렇지 않고 다른 것을 하는 것이 곧 주님을 따르는 일이라는 것을
나이가 이만큼 들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끔 왜 헨리 나우웬 같은 석학이 그의 마지막 시간을
장애인인 "아담"이라는 청년 한 사람을 섬기면서 살다가
아담이 죽은 이후 그도 하늘나라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지..
그의 "예수님 따르는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 "주님을 따르다가"
주님 부르시는 그날 주님을 얼굴과 얼굴로 대하게 될까요?
많이 보고 싶은 우리 주님인데, 주님 만나는 그날이 마냥 기쁘려면
이 땅에 살면서도 주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제가 주님 따라가고 있어야만 하겠지요?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
'+ 임은미목사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도행전 2장]"나는 얼마만큼 이웃의 필요를 만나주려고 노력하는가?" (0) | 2022.10.10 |
---|---|
"왜 정직하게 사는 것이 중요할까?" (0) | 2022.10.10 |
요한복음 19장]"나는 언제 대답하지 않아야 할까?" (0) | 2022.10.05 |
요한복음 18장]"당할 일을 아시고도 나를 사랑하신 주님!" (0) | 2022.10.04 |
요한복음 17장]"영생은 과연 무엇인가?" (0) | 2022.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