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은미목사님

요한복음 19장]"나는 언제 대답하지 않아야 할까?"

colorprom 2022. 10. 5. 14:42

임은미 (유니스) 목사님 묵상입니다.

2022. 10. 5. 수요일

임 은미 (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나는 언제 대답하지 않아야 할까?" 요한복음 19장

 

나는 어제 묵상을 하면서 이전에 내가 자주 사용하던 어떤 성경 구절의 느낌이 다른 방향에서 다가온 구절이 있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쫓나니" 나는 이 구절을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용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제 예수님이 당신이 당할 일을 아시고도 십자가를 지셨다는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도 그 당할 일을 두려워 하셨다는 것을 이전과 달리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기에
그 "온전한 사랑"으로 인하여 당신이 당해야 할 십자가의 두려움을 쫓아내신거였구나 라는 깨달음이 들은 것이었다.

그 성경 구절이 그러니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온전한 사랑에 대한 말씀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울컥해 지는거이...

그래!!
예수님도 두려우셨던 거였어... 예수님도..

그 극한 극형을 바로 하루 앞둔 그 분의 마음에 얼마나 큰 두려움이 있으셨을까!

나는 왜 그 두려움에 대한 알아챔(?)이 없었을까?
그 두려움을 쫓아낸 것은 오직 하나
바로 "온전한 나를 향한 사랑"이었구나!!

나도 장차 예수님 때문에 당할 지금은 알지 못할 고난의 두려움이 있을지라도
그 때 그 두려움을 쫓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가지
예수님에 대한 온전한 사랑이 있으면 내가 받을 그 어느 고통이라도 두렵지 않을 수 있으리라..라는 생각으로 접목을 해 본다.

느을 익숙히 알아오던
"십자가의 사랑"이었지만 오늘따라 더 더욱 그 분의 그 큰 두려움을 이겨낸 것이 바로 나를 향한 "온전한 사랑"이었다 생각하니
십자가의 사랑이 더 더욱 마음 깊숙이 와 닿아서
감사를 넘어나는 격한 감동이 마음에 일어난다고 하겠다.


요 한 복 음 19 장

9 -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and he went back inside the palace. "Where do you come from?" he asked Jesus, but Jesus gave him no answer.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이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을 일컬어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예수님의 모든 것을 우리는 본 받아야만 할 것이다.

예수님의 이 땅에 사셨을 때
그 분은 그 분이 받은 많은 질문에 대답을 하신 것도 사실이지만
그 분이 대답을 하지 않은 질문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아야 할까?
아니면 안 하고 싶을까?

생각나는 대로 좀 나열 해 보고 싶어진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가 아니라 나의 경우를 적용해 본다.)

1. 말이 말 같지 않을 때 나는 대답을 안 하고 싶어지는 것 같다.
대답할 가치가 없으니까..
바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니까..

2. 내가 대답을 하게 되면 나의 입장에서 옳은 답이 될 수 있으나 그 대답이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곤란하게 할 때 나는 답 하는 것을 주저할 것 같다.

3. 내가 대답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대답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4. 내가 대답을 하면 상대편이 상처를 입을 답을 말하게 되기 때문에 상대편이 상처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 나는 대답을 안 해야 할 것 같다.

5. 성경은 내가 말을 할 때 듣는 자에게 소용이 되는대로 즉슨 상대편을 세워 주는 말을 하라고 했는데 내가 하는 말이 상대편을 세워 주는 대답이 아니라고 생각될 때 나는 대답을 아껴야 할 것 같다.

6. 대답을 해 준들 그 사람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내가 대답을 해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기에..

그 외에도 다른 이유들이 있을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어떤 일을 생각하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주욱 하고 싶은 그러한 충동을 느끼는 상황이 있다.

그 상황은 마치 내가 청문회(?)를 받는 그런 상황이었고
나에게 밀어(?) 붙여 이야기를 한 사람은 3대 1 이었다.
한편 참 비겁한(?) 세팅이기도 했다.
세 사람이 한꺼번에 나를 반박(?) 한 일이었는데
끝까지 참았다.

나에게는 수욕이요 모욕이었고 마음 같아서는
"명예 훼손죄"로 민사 소송을 걸어 볼까?
그런 생각이 치솟을 정도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 시간을 잘 삭혔다.
이런 저런 말 해 본들 변명에 지나칠 것이고 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내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납득이 갈 상황이 아니라서 끝까지 내가 "생각이 짧았노라..." 사과(?) 하고 일은 아주 잘 수습되었다.
상대편이 원하는대로 다 해 주었으니 뒤 끝이 있을 리는 없었고 말이다.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지만
그러나.. 그러한 시간이 나에게 허락 되었기 때문에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그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하겠다.

예수님의 상황을 요한복음 19장을 보면서 찬찬히 생각해 본다.

요한복음 19장

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2.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3.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8.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주님이 대답을 안 하셨습니다.
주님은 왜 대답을 안 하셨을까요?

저는 주님처럼 그렇게 엄청난 억울한 일을 당해 본 적은 없습니다.
주님처럼 그런 모욕을 당해 본적도 없습니다.

저는 말로는 모욕을 당했을지언정
그 누구도 저를 채찍질 한 적도 없고
손으로 나를 때리면서
대 놓고 야유한 적도 없습니다.

다만 내가 듣기에 너무나 부당한 취급(?)을 제가 받은 기억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한 시간을 통하여
주님 저를 위해 묵묵히 받아 주신 모든 핍박과 모욕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저의 잘못이 "1" 도 없이 받은 치욕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단 "1" 의 잘못도 없이 저를 위하여 그 모든 것을 참아 주셨습니다.

주님을 본받으면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을 묵상하면서 생각해 봅니다.

나는 무슨 말을 하며 살아야 하고
무슨 말을 하지 말아야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어떤 질문에 답을 해야 하고
어떤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아도 되는지
말씀 가운데 깨달음이 있게 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죽으나 살으나
주님을 위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말을 하나
말을 아끼나
모두 다 주님을 위함이어야 함을 명심하도록 도와 주옵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