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자경목사님

[그림][신우회]여호와 이레, 아브라함과 이삭

colorprom 2022. 7. 19. 19:04

[신우회] 2011년 9월 24일 오후 5:03

 
제목 / 운명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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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창세기 2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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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이에 번제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일제시대에 주기철 목사라는 분이 계셨다.
일본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결국 감옥에 갇혀 돌아가신 분이다.
그에게는 오정모라는 사모가 있었다.
감옥에는 모진 고문에 마음이 흔들리는 주기철 목사가 있었고,
감옥의 밖에는 고문을 이겨내라며 기도하고 격려하는 사모가 있었다.
그들에게 감옥의 안과 밖이 따로였을까?
순교하라 격려하는 사모는 감옥 밖이라 편안했겠는가!!!

1936년 스페인은 공화파와 민족파로 내전상태였다.
민족파인 모스카르도 대령은 성 밖에서, 공화파는 성 안에서 대치상태였다.
공화파는 마침 모스카르도 대령의 아들 루이스가 성 안에 있슴을 알고는
그를 인질로 대령의 항복을 요구했다.
이에 대령은 큰 소리로 아들에게 말을 했다.
아들아, 스페인을 위해 당당하게 죽어라!

늦게야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쳐야함을 알게 된 아브라함,
그는 그때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뚜벅뚜벅 아들과 함께 산으로 올라가는 아브라함에게
이미 이삭은 내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제물, 하나님께 속한 제물이었다.
아들을 번제물로 바칠 아버지 아브라함, 그 또한 하나님께 속한 제물이긴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삭이나 아브라함이나 원래 모두 하나님께 속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번제물이 되어 연기로 올라갈 이삭은 사실 아브라함과 다름이 아니었다.
...내가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그것이 “믿음”이다!!!

12살 쯤 되었을까...이삭은 뭔가 평소와 다른 아버지를 느꼈다.
내 아버지여...
늦게늦게 얻은 아들, 그토록이나 귀한 아들,

그가 아버지, 아빠! 라고 부르지 못하고, “내 아버지여...”하고 아버지를 부른다.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미 그에게 이삭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더 이상 내 귀여운 품안의 자식이 아니다.
아...네가 무사히 네 본분을 잘 마치고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이삭을 하나님의 번제물로 바치기위해 불(부싯돌)과 칼을 들고
“아들을 잃을 상실의 슬픔과 고통”을 안고 가는 아브라함의 발길에
믿음의 복이 부어져 “믿음의 사람, 믿음의 어버이” 아브라함이 태어난다!!!

상실의 슬픔과 고통을 통해 믿음의 복이 부어짐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아무것도 잃는 것이 없이, 포기하는 것이 없이

‘그대로’ 위에 복이 내리기를 바라는 것은 ‘기복신앙’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복에 합당한 ‘비움’이 있어야 하나님의 복에 합당한 ‘그릇’이 된다.

하나님을 알고 모시기 위해 나는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버렸는가...
무엇이 나의 ‘이삭’이었는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 나는 어떻게 죽었는가...

빈 들 광야에, 삭막한 폐허 위에 믿음의 복이 부어짐을 잊지말 일이다...!!!


♠ 2011. 9. 20 화요일 정릉감리교회 구자경목사님 설교를
9월 24일 다시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