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자경목사님

(신우회)[아브라함] 여호와 이레 /창 22: 13,14

colorprom 2022. 7. 19. 19:14

설교 / 여호와 이레 /창 22: 13,14 /정릉감리교회 구자경목사님

2012년 1월 20일 오후 8:20

 
창세기 22:13, 14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플에 걸려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러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1)  창세기 22장 12절에서 이미 아브라함의 시험은 끝이 났다.
이미 아브라함의 행위로 얼마나 순전하게 하나님께 순종하는가를 확인하셨다. 
그러니 이미 아브라함의 시험은 끝이 난 셈이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궂이 수풀에 뿔이 걸려있는 숫양을 잡아 제물로 바친다.

장작을 등에 지고 산을 오르는 이삭을 보며 아브라함은 얼마나 암담한 마음이었을까.
그 고통이 기쁨이 되었으니 안심하고 '아,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하며 주저앉아버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얼마나 천재적인 합리화의 귀재인가!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양을 보며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 어린양'임을 확신하고(!)
기쁨과 감사의 제사를 올린다.
마음에 속지않고 구체적인 행위, 제사로 마감을 한 것이다!!


2)  산을 올라가며 아브라함은 혼돈스러웠을 것이다.
얼마나 귀한 아들인가, 왜 그렇게 귀한 아들을 주시고 이제와서 바치라 하시나, 도대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순진하게 양은 어디에 있는가고 물어보는 이삭에게 
아브라함은 복잡한 마음을 누르고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답한다.
그러나 그 답이 무엇이란 말인가...도저히 알 수 없는 막연함이 아닌가.

인생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그저 '하나님 뜻대로, 하늘에 맡기고...'라고 막연한 말을 하게되는가.
인생의 '막연함'과  '확실함' 사이에서 '여호와 이레'를 고백하며 사는 삶, 그것이 '믿음'이다!

더구나 아브라함의 '여호와 이레'는 미래형이다.
이미 지난 과거시제가 아니라 미래형이다.  ---준비되리라!
개인적 경험의 간증이 아닌 일반화된 말, 공표이다.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일, '준비되리라'이다!!!

사실 이제까지  늘 막연히 '설마...혹시...'하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어찌어찌 살아갈 것이며
그 어찌어찌가 결국 늘 살펴보아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말이 아닐까.

이제까지 온 것과 같이 앞으로도 늘 살펴보아주시는 하나님...'여호와 이레'를 믿고 나아가는 삶,
그것이  믿음의 조상, 우리의 본이된 아브라함의 믿음이다!




미래의 확실함에 '믿음'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막연함과 확실함 사이에 '여호와 이레'를 의지하고 고백하며 사는 삶, 그것이 '믿음'인 것이다!!

'여호와 이레'...이제까지와 같이 앞으로도 함께하시며 살펴 보아주실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