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예수님의 부활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요한복음 11:24-26>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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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봅.시.다>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예수님의 부활이 중요한지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습니다.
부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독교인들은 갈수록 줄어드는 형편입니다.
대부분 처음 교회에 나오면 부활을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으레 그런 것처럼 부활에 대해 별 의미없이 무감각하게 받아들입니다.
부활에 대한 벅찬 감동도 없고 예수님의 부활이 가지는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부활절 예배를 하나의 연례행사로 치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에도 보면 유대인들 가운데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두개파라고 불리는 이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닙니다.
부활은 상식을 벗어난 일이고, 일반적이고 자연적인 사건도 아니며,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긴 역사 동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지켜왔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의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이 ‘부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어떤 종교에도 기독교와 같은 부활신앙을 가진 종교는 없습니다.
‘부활’은 기독교만이 가진 신앙이며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 신앙의 모든 것이 무의미해집니다.
기독교는 바로 이 ‘부활’을 믿는 종교입니다.
바울은 부활을 믿지 못하면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고전15:19)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역사를 초월하는 종말론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죽음에 대한 의미뿐만 아니라, 전 역사의 의미가 새로워졌습니다.
죽음은 항상 인류에게 모든 것의 마지막이고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죽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향해 절규하게 할 만큼 절망적인 것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막15:34)
그래서 인간은 죽음 앞에 섰을 때, 가장 약하고, 허무한 모습을 보입니다.
죽음 앞에 선 인간은 그 어떤 희망도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이 역사는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의 마지막이라고 여겼던 죽음이 마지막이 아닙니다.
죽음이라는 허무의 힘 앞에 무기력하게 무릎 꿇었던 인간과 우주는
이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새로운 희망, 산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역사는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부활이 가지는 첫 번째 중요한 의미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신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라는 일과된 연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이 인간과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모습이
성경 전체를 꿰뚫고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보는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해 줍니다.
예수님의 부활 역시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이 약속대로 성취되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다른 약속에 대한 신실성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이토록 중요한 이유는
우리 인류에 대한 약속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에 근거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성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와 미래에 대한 다른 약속들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있었기에 우리도 부활하리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부활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에 의존해 있습니다.
셋째, 부활은 단순히 먼 미래의 소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을 이 세상을 떠난 피안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언젠가 죽어서 가는 현실을 떠난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소망은 우리를 현재의 삶으로 돌아오게 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의 선생이 십자가앞에서 무기력하게 굴복하는 모습을 보고
모두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이것은 모든 꿈과 희망을 상실한 한 인간의 나약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놀랍게 변화된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으로 도망갔던 제자들이
오히려 십자가를 향해 걸어갑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을 경험한 자에게 나타나는 변화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힘을 ‘현재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부활은 현재적으로 선취되어 우리 삶의 한가운데서 체험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놓인 좌절과 고통을 이길 수 있는 힘,
미래를 바라보며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힘이 부활에 대한 소망에서 옵니다.
그러기에 제자들도 부활에 대한 소망으로 십자가를 향해 담대히 걸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죽음의 십자가에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는 승리의 십자가를 보게 하는 것이 부활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의 진리는 하나의 윤리적 교훈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부활의 소망은 우리에게 허무의 힘을 이기게 합니다.
동시에 현재 주어진 삶을 더욱 감사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부활신앙에 따라 우리의 가치관이 달라지고 인생관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현재의 삶은 다가올 부활의 소망으로 인해 더욱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모진 시련과 어려움을 이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부활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부활은 한 개인뿐만 아니라, 온 우주를 희망으로 채웁니다.
하나님은 부활을 통해 인간과 역사와 세계에 새로운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시대가 아무리 암울하고 허무의 힘이 득세하는 것 같아도
부활의 산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부활의 소식이 바로 선포되면 그 순간 어둠의 힘은 사라집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우리모두에게 놀라운 희망이 다가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의 산 소망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길을 힘있게 걸어가야 합니다.
<대.화.합.시.다>
질문: 부활의 기쁨을 현재적으로 누릴 수 있나요?
답변 : 많은 교인들이 부활을 마지막 날 일어날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이 바로 부활의 실체라는 것을 가르칩니다.(요11:25)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현재’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부활은 미래적일 뿐만 아니라 현재적인 것입니다.
부활한 예수님은 지금 이 역사속에서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묵.상.해.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현재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나요?
있다면 언제 어떻게 경험하게 되었는지 정리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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