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미래탐험대 100] [12] 日서 본 고령화 한국의 해법
치매 가족 아픔 겪는 27세 박상현씨
이 대리점의 세차 요원 7명은 모두 치매 환자다.
할머니가 치매 환자인 나는 요즘 가족, 친구들과 치매에 대한 이야기를 부쩍 많이 나눈다.
치매 후의 삶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한국처럼 사회에서 단절돼 어느 어두운 방에서 여생을 보내야 할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치매 어르신들이 도시 곳곳에서 '활약'을 한다는 마치다시를 방문했다.
이 동네에 사는 치매 어르신들은 비영리단체나 시청을 통해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도시 풍경의 한 조각을 이루고 있었다.
5년 후면 한국 치매 인구는 100만명을 넘는다.
의학 기술의 발달로 수명은 늘어나고 있지만 인류는 아직 뇌의 늙음을 막을 묘책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날까지 우리는 치매와 함께 살아야 하는, 예비 치매 환자들이다.
한국보다 앞서 고령화를 겪은 일본은 치매 환자와 공존하는 법을 알아내기 위한 다양한 실험에 착수했다.
20명 중 한 명이 치매를 앓는 일본 마치다시에선
치매 어르신을 사회와 잘 어우러지게 하려는 노력을 목격할 수 있었다.
동네에 치매 노인이 보이지 않는 한국과는 달랐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나름의 일상을 이어가는, 마치다시에서 만난 치매 환자·가족·시민의 목소리를 재구성했다.
전단 돌리고 배달, 일당 받는 치매환자 “사는 것 같네요”
치매 어르신 다나카씨
“일주일에 서너번 사무실 나오면 주인장이 하고 싶은 일 물어봐
오늘도 어제처럼 세차 지원했죠…몸 많이 쓰다보면 정신도 밝아져”
◇마치다시의 한 골목
"한국에서 오셨수? 일주일에 서너 번, 별일 없으면 여기로 온다우. 여기가 어디냐…. 그 자세한 건 저기 저 '마스터(주인장)'에게 물어보시고. 여기 열 명쯤 모인 우리 노인네들은 전부 치매 환자라오. 어제 만나고 오늘 만나도… 뭐, 그렇고 그렇단 얘기요. 아침에 나와서 저 치매 친구와 잡담을 하고 있으면 마스터가 돌아다니면서 우리에게 친절하게 묻는다오. '오늘 무슨 일을 하고 싶으십니까' 하고. 난 오늘도 어제처럼 세차를 하겠다고 자원했다오. 몸을 많이 쓰다 보면 정신도 밝아지는 느낌이랄까, 살아 있다는 확실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 할머니들한텐 야채 손질이 인기가 많은데, 신기하게 몸이 머리보다 기억력이 좋은지 쓱싹쓱싹 손질을 살뜰하게 잘한다오. 치매 노인이 어떻게 세차를 하냐고? 따라와 보시오. (이날 이 어르신을 만난 곳은 도쿄도 마치다시에 있는, 치매 노인을 위한 비영리단체 '데이즈 BLG!'였다. 어르신들은 아침마다 여기 모이고, 이후엔 미리 계약된 일터로 향한다고 했다. 이날 10명 중 7명이 세차를 지원했고, 큰 차가 와서 이들을 마치다 시내의 한 혼다자동차 대리점으로 모셨다. 15분 정도 걸렸다.) 자, 청년…. 어여 우리가 세차하는 걸 이리 와서 함 보소. 우리는 대부분 걸레를 안 쓰고 이렇게 큰 장갑을 끼고 물에 담갔다가 이렇게…. 어때, 어때, 잘하지? 2인 1조인데 말이오. 우리가 깜박깜박하다 보니 닦은 데 또 닦기도 하고 해서, 하하, 한 시간 동안 다섯 대 정도 간신히 '완성'이라오. 힘들지는 않소! 밖에 나와 몸을 움직이니 나도 평범한 사회인인 것 같아 좋기만 하다네. 큰돈은 아니지만 일당을 받는 날엔 맥주도 사다 탁 털어 마시는 재미가 쏠쏠하다니까. 그런데… 중국에서 오셨수?"
“50세에 치매 진단 받은 남편, 다시 일하게 된 후 옛모습 되찾아”
치매 어르신의 아내 A씨
◇마치다시 혼다 대리점
"제 남편은 50세가 되던 해에 치매 진단을 받았어요. 당연히 회사에서 해고당했죠. 이웃 사람들의 눈 때문에 바깥출입을 끊었는데 식욕부터 잃더군요. 누워만 있으니 당연할 수밖에요. 지인의 추천으로 데이즈 BLG! 통해 세차라도 해보라고, 조심스럽게 권했습니다. 4시간 일하고 온 날, 집에 돌아온 그이의 말에 펑펑 울었습니다. '당신이 해준 미소시루(된장국)가 먹고 싶어'라고…. 사실 한창 돈을 벌 나이에 치매 진단을 받고 나자 주택 자금 대출금, 딸아이 학비 부담으로 앞길이 막막했어요.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자상했던 남편이 평생 보인 적 없는 난폭한 모습이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폭언과 폭력에 저희 모녀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루에 꾸준히 4~5시간씩 일하게 된 후로 많은 것이 변했어요. 요즘은 아침 일찍 일어나 몇 시간 전부터 일할 채비부터 합니다. 세차 말고도 전단 나눠주는 일도 맡았다네요. 사회로 다시 나가다 보니 친절하고 부드러웠던 옛날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어수룩한 제 남편이 멋쩍게 건네는 전단을 웃으며 받아주신 분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세상에 신세를 졌습니다. 고개 숙여 인사드립니다."
“어르신들 의견 존중해 일감 나눠… 몸 움직일 수 있으면 채용”
치매 활동가 마에다 다카유키
◇비영리단체 데이즈 BLG! 대표
"'우리(치매 노인)를 빼놓고 우리 일을 정하지 말아 달라.' 치매 어르신의 사진들이 걸린 사무실 벽 위에 붙여 놓은 말입니다. 치매 어르신을 일자리와 연결해주고 있지만, 그들도 원하는 바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다짐으로요. 치매 어르신의 뜻을 존중하기 위해 우리는 '일감'을 나눌 때 그분들의 의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심지어 무엇을 먹을지도 회의를 통해 결정한답니다.
저는 20년 전 한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치매 환자를 많이 만났습니다. 여러 분이 제한된 공간에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생각했습니다. '이들이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일본에 미래는 없다.' 저와 뜻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치매 어르신과 일자리를 연결하는 지금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2012년 만든 우리 단체를 통해 현재 25명이 열심히 일하는 중입니다. 세차 외에도 야채 깎기, 전단 배포 등 다양한 일이 있습니다.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면 된다' 정도의 요건만 갖춰지면 거의 채용을 합니다.
치매 어르신을 고용하길 불안해하지 않느냐고요? 당연히 그렇지요. 지금 하는 야채 배달 일도 제가 100군데 넘는 가게를 돌아다닌 끝에 따내온 겁니다. 저는 가게 주인을 설득할 때 '누구나 치매에 걸릴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치매가 곧 주저앉음은 아니라고요. 제가 만난 치매 어르신 중 도전 정신으로 충만한 분들도 많았습니다. 치매에 걸려도 일단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빛나고 활기차게! 그런 공동체가 진정 안전한 사회 아닐까요."
[미탐100 다녀왔습니다]
제 할머니는 요양원 계시는데… 일하며 어울려 사는 日치매 노인들 부럽기만
"내가 너를 기억하지 못하거든, 나도 요양원에 넣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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