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세상]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 (손직석 특파원)

colorprom 2019. 4. 8. 14:16



[글로컬 라이프] '노란 조끼'는 왜 그 식당을 습격했을까


조선일보
                             
             
입력 2019.04.08 03:11

손진석 파리특파원
손진석 파리특파원


지난 4일 오후 고급 상점이 줄지어 있는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걷다보니 건물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1층 전체를 사람 키 두 배 가까운 높은 철판으로 둘러 꽁꽁 싸매 놨다.
초행길이라면 어떤 곳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파리지앵은 어떤 장소인지 다들 알고 있다.
철판 뒤로 모습을 숨긴 이곳은 1899년 개업해 올해 120년을 맞은 고급 식당 '푸케(Le Fouquet's)'다.
작가 에리히 레마르크가 전쟁의 절망을 담아 2차 대전 직후 펴낸 소설 '개선문'에서
주인공 라비크가 사람을 만나는 곳으로 등장하는 식당이다.

오랜 세월 프랑스 정·재계 인사들의 사교 장소였다.
알랭 들롱, 장폴 벨몽도 같은 전설의 스타들이 드나들었다.
관광객들은 푸케 음식을 맛보며 파리의 숨결을 느꼈다.

잠잠해지던 '노란 조끼' 시위가 다시 격렬하게 불붙은 지난 3월 16일.
복면의 과격 시위대는 푸케를 집중 타격했다.
창문을 전부 박살내고 내부에 불을 질렀다. 형체조차 알 수 없게 망가뜨렸다.
샹젤리제를 향해 뻗어 있던 기다란 빨간 차양과 그 아래 야외 테이블은 모두 사라졌다.
샹젤리제의 다른 상점·식당은 손님으로 북적이지만,
유독 푸케만 철판 너머에서 보수 공사를 하느라 적어도 석 달은 문을 닫아야 하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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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16일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고급 식당 푸케노란 조끼시위대 공격을 받아 불타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보수 공사를 위해 푸케를 철판으로 완전히 뒤덮은 모습.
/AFP 연합뉴스·파리=손진석 특파원

푸케 바로 앞에서 잡지며 음료·담배를 파는 가판대 주인에게 '왜 푸케가 이렇게 됐는지' 물었다.

그는 올해 쉰일곱이고 이름은 사뮈 메를이라고 했다.

"시위대는 상징을 타격했어요. 대혁명 때 압제의 상징인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것처럼

부유한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대표적인 곳을 박살낸 거죠."

메를씨 말대로 노란 조끼 시위를 들여다보면

장소, 사람에 의미를 담으려는 프랑스인들의 습성을 엿볼 수 있다.

푸케'부자들의 식당'으로 좀 더 뚜렷하게 각인된 건 2007년이었다.

대선에서 승리한 니콜라 사르코지는 주변 인물 100여 명만 골라 푸케에서 성대한 당선 축하 파티를 열었다. 사회주의 전통이 강한 프랑스에서 우파 대통령의 화려한 자축연은 많은 이의 뇌리에 유쾌하지 않게 남았다.


푸케의 코스 메뉴는 1인당 86유로(약 11만원)다. 파리에는 그보다 더 비싼 식당도 많다.

하지만 긴 세월 샹젤리제의 돋보이는 위치에서 유명세를 치르다 보니 노란 조끼의 '목표물'이 됐다고

파리지앵들은 말한다.

노란 조끼라는 시위대 명칭도 상징을 좇다가 나왔다.

유류세 인상을 반대하는 이들이 야간 비상시에 입으려고 차량에 비치한 형광색 조끼를 걸치고

거리에서 규합했다. '자동차와 관련한 불만에서 촉발된 반()정부 시위'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뭉친 것이다.


이를 지켜본 프랑스 역사학자들은 '2 자크리의 난'이라며 상징성을 덧입혔다.

14세기 벌어진 자크리의 난은 농민들의 대규모 봉기였다.

당시 '자크(jacque)'라는 누비옷을 걸치고 집결한 데서 연유해 그런 이름이 붙었다.

가판대의 메를씨는 저녁 7시가 되자 주섬주섬 가게 문을 닫았다.

"원래 푸케를 찾아온 손님들 덕분에 저도 자정까지 장사했어요. 하지만 이젠 방법이 없네요.

푸케 직원 40명도 일자리가 순식간에 사라졌죠."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07/20190407020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