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파리지앵은 어떤 장소인지 다들 알고 있다.
잠잠해지던 '노란 조끼' 시위가 다시 격렬하게 불붙은 지난 3월 16일.
푸케 바로 앞에서 잡지며 음료·담배를 파는 가판대 주인에게 '왜 푸케가 이렇게 됐는지' 물었다.
그는 올해 쉰일곱이고 이름은 사뮈 메를이라고 했다.
"시위대는 상징을 타격했어요. 대혁명 때 압제의 상징인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것처럼
부유한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대표적인 곳을 박살낸 거죠."
메를씨 말대로 노란 조끼 시위를 들여다보면
장소, 사람에 의미를 담으려는 프랑스인들의 습성을 엿볼 수 있다.
푸케가 '부자들의 식당'으로 좀 더 뚜렷하게 각인된 건 2007년이었다.
대선에서 승리한 니콜라 사르코지는 주변 인물 100여 명만 골라 푸케에서 성대한 당선 축하 파티를 열었다. 사회주의 전통이 강한 프랑스에서 우파 대통령의 화려한 자축연은 많은 이의 뇌리에 유쾌하지 않게 남았다.
푸케의 코스 메뉴는 1인당 86유로(약 11만원)다. 파리에는 그보다 더 비싼 식당도 많다.
하지만 긴 세월 샹젤리제의 돋보이는 위치에서 유명세를 치르다 보니 노란 조끼의 '목표물'이 됐다고
파리지앵들은 말한다.
노란 조끼라는 시위대 명칭도 상징을 좇다가 나왔다.
유류세 인상을 반대하는 이들이 야간 비상시에 입으려고 차량에 비치한 형광색 조끼를 걸치고
거리에서 규합했다. '자동차와 관련한 불만에서 촉발된 반(反)정부 시위'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뭉친 것이다.
이를 지켜본 프랑스 역사학자들은 '제2 자크리의 난'이라며 상징성을 덧입혔다.
14세기 벌어진 자크리의 난은 농민들의 대규모 봉기였다.
당시 '자크(jacque)'라는 누비옷을 걸치고 집결한 데서 연유해 그런 이름이 붙었다.
가판대의 메를씨는 저녁 7시가 되자 주섬주섬 가게 문을 닫았다.
"원래 푸케를 찾아온 손님들 덕분에 저도 자정까지 장사했어요. 하지만 이젠 방법이 없네요.
푸케 직원 40명도 일자리가 순식간에 사라졌죠."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