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나라

[여행][정선선 비둘기호 여행] 석양 물든 철길…가을 내음 물씬 (박종인 기자, 조선일보)

colorprom 2007. 9. 21. 15:41

[정선선 비둘기호 여행] 석양 물든 철길가을 내음 물씬


입력 : 1999/10/07 20:16



아이들, 나전역에서 놀고 있다.

강원도 정선 군내를 오가는 정선선에 있는, 하루 두번 기차가 가고나면 텅 비는 역이다.

기우는 해에 하늘이 붉다. 들국화를 꺾은 아라(7)에게 희선(9)이는 꺾지말라고 다그친다.

아라가 꽃을 머리에 꽂자 오빠 남현(9)이도 덩달아 꽂겠다 한다.

아이들이 철길 위를 걷다가 어느새 가을속으로 들어간다.


사진설명 :
비둘기호 오가는 정선선 나전역에 아이들이 뛰논다.빈철길 가득한 가 을 햇 살


아이들이 돌아간 역사는 적막에 빠진다.

정선선, 증산에서 구절리까지 이 땅에 마지막 남은 비둘기호 운행구간이다.

다른 비둘기호들은 적자에 못견뎌 기적이 끊겼지만 67을 건 45.9km 정선선만은 용케 살아남았다.

왜? 지역민들 일상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요즘은 가을들판에서 향수에 젖으려는 외지인마저 붐빈다.

물론 89년 석탄산업합리화정책 이후 탄광지역 쇠락으로 언제 폐쇄될지 모르지만.

이른 아침, 기관차에 객차 1량 달랑 매단 비둘기호가 증산역을 떠난다.


하루 네번 운행하는 열차는 새벽과 저녁 두번은 종점인 구절리까지.
나머지는 중간인 정선역까지 움직이다.

하여 새벽과 저녁에 게으른 여행객들에겐 여정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객차 양편 창 너머 보이는 그 들판, 지금 누렇다. 산골에 바람이라도 불면 말 그대로 황금물결이다.


기차가 머무는 역은 별어곡, 선평, 정선, 나전, 여량, 그리고 구절리.

도시인에게 가슴 아린 향수와 낭만을 부르는 이름이다.


기차는 계곡을 지나고 터널을 빠져나가 아찔한 철교를 건너 정선으로 들어간다.

다리를 건너는 한량짜리 열차는 애처롭기까지 하다.

들판 속 논두렁을 걷는 아이들 걸음은 느릿느릿하다.

날이 맞으면 정선 5일장터에서 뗏목꾼들 한이 담긴 아리랑을 들을 수도 있다.

증산에 오전에 도착했다면 증산, 정선 주변을 거닐다 구절리까지 비둘기호를 즐길 수 있다.

나전역에 내리면 황량한 시골역과 낭만적인 들판이 기다린다.

여량역은 정선아리랑이 시작된 아우라지 강변에 있다.

철길이 끝나는 구절리. 가을 단풍이 시작된 노추산, 실처럼 흘러내리는 100m 오장폭포가 기다린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인심이 기다린다.

증산에서 저물기 시작한 해는 정선을 넘으면 뵈지 않는다.

하여 석양에 잠기는 시골역을 보려거든 일찌감치 정선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나전역으로 간다.

요즘 해넘이는 오후 5시정도. 잠은, 내린 그 역에서 잘일이다.
나전역, 여량역, 그리고 구절리역 주변에 민박과 모텔이 꽤 있다.


들판에는 산새가 날고, 외딴 집에서 밥짓는 연기가 곱게 오른다.

뼈대 앙상하게 남은 옥수수밭, 추수가 막 시작된 들판, 가을 내음….

당일로 돌아오건, 종점에 머물러 밤을 보내건, 정선선 완행열차는 나그네를 향수로 채색된 가을로 이끈다.


기차(서울기준) : 서울 청량리역 10:00, 14:00, 22:00 출발,
13:50, 17:55, 02:03 증산도착. 증산에서 06:51, 09:43, 11:37(새마을호),
13:33, 17:03, 18:50에 서울행 무궁화호. 증산에서 02:15, 06:15, 14:15,
18:00 정선행, 나전, 여량, 구절리행은 06:15, 18:00 2회. 구절리에서는
07:45, 19:20 증산행.

5일장 관광열차 : 정선장이 있는 끝자리 2,7일 서울역(07:50),
청량리(08:22) 출발. 무궁화호로 정선역까지. 정선역 17:30 귀경.
화암약수-가리왕산행 셔틀버스(5000원). 1만9200부터.


철도안내센터: (02)392-7788

승용차 : 영동고속 진부IC→정선. 405번 도로 나전까지 32km는
근사한 드라이브길. 오대천, 들판, 100m 넘는 인공폭포. 42번 국도
연결점 좌회전은 나전, 아우라지, 구절리, 우회전은 정선. 정선에서
429번 도로 타면 선평, 벌어곡, 증산역과 만난다.


볼거리 : 민둥산(증산, 별어곡), 5일장(정선), 오장폭포-노추산(구절리),
들판(나전), `메주와 첼리스트' `된장마을(임계·0398-62-2710), 가리왕산
휴양림(63-1566) 등.


먹을거리 : 메밀콧등치기국수(죽 들이키면 면발이 콧등을 친다고),
옥숫 올챙이묵 등.

(* 글·사진/박종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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