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1999/08/05 17:39
새도 쉬었다 간다 하여 조령, 새재라 했다.
산적과 맹수가 득실대 사람들은 꼭 무리를 지어 넘어 다녔다.
언제부터인지 맹수는 자취를 감췄고, 먹고 살만해지면서 산적떼도 사라졌다.
한적한 나들이길로 변한 문경 새재,
가끔 운무에 뒤덮여 숨막히는 경치를 연출하는 그 고개길을 걷는다.
대관령, 죽령, 한계령, 미시령….
굵직굵직한 고갯길은 대부분 차량들 차지가 됐지만 새재는 여전히 사람이 주인이다.
1925년 일제가 자기네들 경성 가기 편하라고 그 아래 이화령에 신작로를 뚫은 덕이다.
충북 괴산쪽 3관문 조령관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이 관문 뒤부터 '영남' 땅이다.
1관문까지 느긋한 내리막길 6.5㎞.
길은 입자가 고운 흙을 다져 포장했다.
산기와 지기를 받으려는 사람들은 아예 신발을 배낭속에 쑤셔넣고 길을 오른다.
그들을 위해 해마다 맨발걷기 대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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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아래 20분 거리에 숨은 수옥폭포를 구경한 뒤, 고사리마을에 핀 접시꽃을 스치며 길을 오른다.
양옆에는 단원 김홍도가 홀딱 반해 그림으로 남겼다는 능선이 이어진다.
매표소 오른편은 조령산 자연휴양림, 왼편은 새재 오르는 길이다.
새재 나그네는 이곳 입장료가 필요없다.
20분여 오르면 3관문, 본격적인 나들이가 시작된다.
동래∼한양을 잇는 천리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고개였다.
하여 조선 조정에서는 세군데 관문을 짓고, 노출을 막기 위해 화전과 벌채를 엄금했다.
1관문과 2관문 사이에 '산불됴심'이라는 표석까지 세웠을 정도.
군사 목적으로 시행된 조림정책이 이제는 기막힌 산책로를 만들어줬으니, 이 어인 세월의 조화인가.
눈앞에 우뚝 선 조령관 뒤로 먹구름 가득한 하늘과 능선이 보인다.
문을 넘으면 잘 꾸민 공원이다.
2관문 조곡관까지 유장하게 이어지는 길 주변에도 천연림이 무성하다.
조곡관을 지나 다리 왼편으로 맑은 새재계곡이 숨어 있다.
조곡관에서 1관문 주흘관까지 3㎞. 어린이도 까르륵대며 쉽게 걷는다.
주흘관 부근 광장에는 타임캡슐이 묻혀 있다.
경북도 탄생 500주년인 2396년 10월23일 개봉할 예정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느린걸음으로 3시간. 참으로 아름다운 시간이다.
그런데--.이 아름다운 고개,
임진왜란 때 동래에 상륙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가 한양으로 진격한 길이다.
당시 신립장군은 새재를 내주곤 충주 탄금대에 진지를 트는 대실수를 저질렀다가 궤멸됐다.
조선은 전쟁 와중인 1594년에 부랴부랴 2관문을 짓고,
이어 병자호란이 지나고도 한참 뒤에 나머지 관문을 지었다.
백성들 삶터는 이미 잿더미가 된 후였다.
바로 이걸 "소 잃고 외양간 고쳤다"고 하던가.
그 속담을 곱씹으며 3관문으로 돌아와 예쁜 수옥폭포에 발을 담가본다.
가끔 비가 폭포 위로 흩뿌릴 테지만 새재는 여전히 말이 없다.
(* 글·사진/박종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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