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나라

'남성'을 떨게한 머리 200년

colorprom 2007. 10. 4. 18:08


[Why] '남성'을 떨게한 머리 200


입력 : 2010.05.15 03:05 | 수정 : 2010.05.15 14:01

뉴질랜드 마오리 戰士들 머리프랑스도 논란끝에 반환키로

프랑스의 한 박물관에 있는 마오리 머리.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남반구 뉴질랜드에서는 굉장히 엽기적인 물건들이 유럽으로 실려갔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Maori)족 전사(戰士)들의 머리다. 전통적인 마오리족 문신이 얼굴에 새겨진 남자들 머리다.

지난 5일 프랑스 하원의회는 569대8의 압도적인 표차로 프랑스 내 박물관에 소장 중인 마오리족 머리 15개를 뉴질랜드로 반환하라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국립박물관뿐 아니라 전국 박물관에 있는 마오리 머리가 대상이다.

하고많은 물건 가운데 사람 머리가 유럽 박물관에 있어야만 한 이유가 있다. 아름다운 문신(文身)이 얼굴 전면을 장식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극이 시작됐다. 유럽인이 정착하기 전 뉴질랜드 주인은 마오리족이었다.

마오리들은 뉴질랜드를 아오테아로아(Aotearoa), 즉 '길고 긴 흰 구름'이라고 불렀다. 평화로운 민족은 아니었다. 전투를 즐기고 전쟁에서 승리하면 상대 부족을 모두 노예로 삼거나 죽여버렸다. 또 부족의 일체감을 높이기 위해 얼굴 전체에 다양한 문신을 새겨넣었다. 21세기가 됐지만 많은 마오리들은 여전히 얼굴에 문신을 새기고 젊은 백인들은 그 마오리문화를 흉내내 문신을 즐기기도 한다.

200년 전에는 달랐다. 부족장이 죽으면 마오리들은 그 머리를 미라로 만들어 집안에 모셨다가 장례를 지냈다. 뉴질랜드에 상륙한 유럽인들은 앞에서는 그걸 야만적이라 비난하고 뒤에서는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진 머리를 탐냈다.

기록상 첫 마오리 머리 구매자는 탐험가 쿡 선장의 인데버호에 동승했던 조셉 뱅크스라는 사람이었다. 1770년 1월 20일 뱅크스는 원주민들에게 총과 화약을 주고 15세짜리 남자의 머리를 샀다.

활과 창으로 옆 부족과 전쟁을 벌이던 마오리들에게 첨단 무기는 유혹이었다. 마오리들은 부족 간 전쟁에서 상대 부족 사망자의 머리를 백인들에게 팔았다. 백인들은 머리를 훔쳐가거나 무덤을 뒤져 시체 목을 잘라 가기도 했다.

1811년에는 마오리들이 이런 백인 절도범을 추적해 무역선에 오른 뒤 선원들 목을 반쯤 잘라버리기도 했다. 1829년 뉴질랜드 옆 호주 세관에서 '마오리 머리'라는 품목이 구분됐고 길거리에는 마오리 머리를 파는 노점상이 있었다.

문명의 이기와 전통을 맞바꿨던 초기 마오리들의 짧은 생각은 비극으로 이어졌다. 노예로 판매된 마오리들은 강제로 문신을 새겼다. 상처가 아물면 누군가가 뒤에서 도끼로 목을 쳐 머리를 말린 뒤 무역상에게 넘겼다.

잘 생긴 노예는 목이 잘린 뒤 '부족장의 머리'로 둔갑해 팔렸다. J.S. 우드라는 목사는 "지위 높은 추장이 아니라면 문신을 잘 새긴 마오리는 언제 뒤에서 도끼가 날아와 머리를 잘라갈까 몰라 두려움에 떨었다"고 기록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백인 정부는 노예 문신을 금지했다. 마오리 공동체도 "각 부족은 자기네 내부의 머리를 거래하지 않는다"고 결의했지만, 말 그대로 너무 늦은 후회였다. 마오리 머리 무역은 1831년에야 공식적으로 금지됐다.

1992년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에 있는 테파파통가웨라 국립 마오리역사 박물관이 조사한 결과 500여개의 마오리 머리가 전 세계 박물관에 보관돼 있거나 전시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뉴질랜드 정부는 이들 박물관에 머리 반환을 공식 요청했고 30여개 박물관이 호응해 300여개가 뉴질랜드로 돌아가 땅에 묻혔다. 2007년 프랑스도 이 같은 요청을 받아들여 루엥시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의 머리 반환을 확정했다.

마오리 추장 한 명이 머리를 받으러 프랑스로 날아갔다. 반환식 직전에 당시 문화부장관이던 크리스틴 알바넬이 "박물관의 소장품인 마오리 머리는 국가 유산"이라며 반환을 금지시켰다. 마오리 머리 4개를 소장하고 있던 파리 케브랑리박물관 스테파니 마르탱 관장도 "고대 예술품을 땅에 묻어 파괴하는 것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지워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지식인사회는 뒤집혔고 논쟁이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3년 뒤인 지난 5일 의회가 아예 법을 제정해 반환을 합법화한 것이다. 트린 모랭-드사이 루엥시 문화 부시장은 "이 머리는 다른 종족은 우리보다 열등하다는 잘못된 믿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2002년 남아공 인종차별 역사의 상징인 '호텐토트 비너스'를 200년 만에 반환했다. 유럽에 납치돼 인간 전시물로 살다 죽은 뒤 장기는 뽑히고 몸은 박제된 아프리카 여자였다. 루브르박물관 이집트관에는 지금도 고대 이집트 미라들이 관 속에 누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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