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로새서

그리스도의 넓은 품 안에서 (골 1:9~23) (CBS)

colorprom 2018. 7. 7. 16:03

그리스도의 넓은 품 안에서 (2018년 7월 7일 토요일)


골로새서 1장 9절 ~ 23절


9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시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0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11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12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3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게 섰느니라


18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오 죽은 자들 가운에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그리스도의 넓은 품 안에서 (2018년 7월 7일 토요일)


본문 16-17절에는 독특한 우주론이 펼쳐져있습니다.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되었으며,(골1:16)

그리스도는 만물보다 먼저 계시며,

만물은 그리스도 안에서 존속한다는 것입니다.(골1:17)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이것을 이해하는 일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한 번에 창조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새롭게 지어가신다는 말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새롭게 지어가신다는 것, 또 우리가 새로 지음받고 있다는 것은

우리를 얽어매는 과거의 죄로부터 구원을 받아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자기중심적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으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존재란 '자기중심적'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으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러한 전환은,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실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새로운 존재로 전환되고 창조되기 위해서

우리보다, 아니 만물보다 그리스도가 먼저 계셔야만 합니다.(골1: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되어야 합니다.

이는 곧 구원받음을 의미합니다.


모쪼록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어져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하나님, 날마다 창조되게 하소서. 날마다 구원받게 하소서. 아멘.


주님을 본받아 (2018년 7월 19일 목요일) (15~23)


초대교회 당시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 철학으로부터 인생의 해답을 얻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철학과 종교가 혼동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인간적 이론으로 해석, 분석하려는 여러 시도들도 나타났습니다.


골로새 교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단순히 '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해주는 여러 영적 존재들 가운데 하나'라고 이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과 우리를 위한 중보자적 사역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바울은 본문 15절에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권세와 능력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하여 인류를 포함한 온 피조세계가 하나님과 화목케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제 하나님과 화목케 된 인간들을 그분의 거룩한 일꾼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하나님과 화목케 된 것에서 끝나지 말고 더 나아가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서야만 합니다.(골1:22)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의 길에 들어섰다면,

우리는 구원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 주님을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악하고 더러운 이 세상에서 화목을 도모하여야 합니다.

평화를 가꾸어야 합니다. 참된 경건을 실천하여야 합니다.

빛이되고 소금이 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주님, 제가 살아가는 날 동안 주님을 본받아 구원의 완성을 이루게 하소서. 아멘.


우월하신 그리스도 (2018년 12월 24일 월요일) (골 1:15~20)


그리스도인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의 중간기를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기다림'을 그 삶의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오실 그분'을 누구로 알고 기다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분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으면 엉뚱한 분을 기다리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옛날 정치적 메시야를 기다렸던 몇몇 유대인들처럼 말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오실 그분' 곧 그리스도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골1:15)

"만물보다 먼저" 계신 이로 설명합니다.(골1:17)


한편 당시 골로새 교회에 침투한 이단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는 천사들" 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참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위와 신분을 피조물의 위치로 격하시켰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하고,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셨다"고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의 우월하심'에 대한 강조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피조물 중 가장 귀한 존재라고 자부하는 인간

그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하나님의 형상' 그 자체이십니다.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셨습니다.

그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다시 오십니다.

오늘 우리가 기다리는 분은 바로 그분입니다.


+ 우리 가운데 오실 그분이 누구이신지 분명하게 알고 기다리게 하소서. 아멘.


대속의 은혜 (2020년 3월 18일 수요일) (9~14)


본문은 사도 바울복음의 열매를 맺고 모든 성도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고 있는

골로새 교인들의 소식을 듣고 '그들을 위해 계속 기도를 쉬지 않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골1:9)

골로새 교인들은 모든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용서 받고 대속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의 나라로 옮김을 받고

빛 되신 하나님의 나라에서 모든 성도들과 함께 유업을 받을 자격을 갖춘 자들이었습니다.(골1:12)


성도모든 일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사람들입니다.

그 삶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선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늘 자라야 합니다.(골1:10)


지식은 헬라어로 에피그노시스(epignosis)인데 이것은 '정확한 지식'을 의미합니다.

성도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아는 지식을 늘 사모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풍성한 지혜를 부어주십니다.


대속하신 예수님성도된 우리를 강하게 세우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그 주님을 붙들고 기쁨으로 인내하며 견디고 헤쳐나아갈 수 있습니다.

복음이 우리를 살렸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에게 복음을 붙들고 살아가는 은혜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항상 승리의 주님을 따라가며 세상을 이기는 복된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 주님, 대속의 은혜를 힘입어 늘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