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게 하시고 듣게 하셨으니 (2018년 1월 9일 화요일)
사도행전 22장 1절 ~ 16절
1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2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3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히 있는 자라
4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6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7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8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1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12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13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14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5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16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보게 하시고 듣게 하셨으니 (2018년 1월 9일 화요일)
사도 바울은 처음부터 예수님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행9:1-2)
디모데전서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훼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로 소개합니다.(딤전1:13, 새번역)
그때 바울은 살기등등(殺氣騰騰)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는 그랬던 자기모습을 자세히 고백합니다.
과거에 '훼방자, 박해자, 폭행자'였던 바울이, 지금 '사도' 바울이 된 계기는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신 사건이 그를 변화시켰습니다.(고전15:8-9)
오늘 본문은 그 생생한 체험의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체험을 "주님의 은혜"라고 요약합니다.(고전15:10, 딤전1:13-16)
14절에 주목합시다. 바울은 다메섹의 아나니아의 입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표현합니다.(행9:10-18)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행22:14)
믿음은 인간적 성품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그의 음성을 들을 때 믿음이 생깁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은 바울이 주님을 믿었습니다.(요5:25, 계3:8)
주님을 본 바울이 주님을 믿었습니다.(고전15:8)
우리도 그래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주님을 봅시다.
+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아멘.
주님의 시각으로 공감하며 살라 (2019년 7월 11일 목요일) (6~21)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자들을 잡으려고 의기양양하게 다마스커스로 가던 사울은
정오 대낮에 난데없는 빛의 광채로 인하여 거꾸러집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님은 사울을 새로운 존재로 바꾸시어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말씀은, 우리 주님께서 생전에 사울을 만난 적도 없고, 그에게 박해를 받은 적도 없는데도,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울로 인한 제자들의 고난을 당신의 고통으로 여기시며 그들과 깊이 공감하고 계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중심사역은 고생하며 기진해있는 가난하고 약하고 병든 이들의 고통을 자기 것으로 여기시어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고 가르치시고 치유하신 세 가지입니다.
이 '3중사역'의 바탕인 공감은
고통을 나눈다는 의미를 넘어 이웃의 고통에 자신을 '밀어넣는' 것을 뜻합니다.
다마스커스로 향하는 그 길에서 예수님은 사울의 눈을 멀게 하시더니,
아나니아를 통해 시력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보지 못한 사울의 눈을 닫으시고,
그에게 새로운 시각을 주시어 하나님의 역사를 제대로 보게 하시고는
이방인들에게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는 사도로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구원받아 존귀한 존재로 세워졌으니 그 같은 존재답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를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처럼 이웃의 아픔을 긍휼히 여기고 공감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복된 삶을 누리기 바랍니다.
+ 하나님, 주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응시하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공감의 능력을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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