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명기]

[21]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한 모세 (신명 9:13~29) (CBS)

colorprom 2017. 4. 26. 15:27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한 모세 2014년 10월 7일 화요일


신명기 9:13~9:29          


13 여호와께서 또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았노라 보라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14 나를 막지 말라 내가 그들을 멸하여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애고

너를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시기로

15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산에는 불이 붙었고 언약의 두 돌판은 내 두 손에 있었느니라


16 내가 본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어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도를 빨리 떠났기로

17 내가 그 두 돌판을 내 두 손으로 들어 던져 너희의 목전에서 깨뜨렸노라


18 그리고 내가 전과 같이 사십 주 사십 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려서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하게 하여 크게 죄를 지었음이라


19 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두려워하였노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

20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 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

21 너희의 죄 곧 너희가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찧고 티끌 같이 가늘게 갈아

그 가루를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에 뿌렸느니라


22 너희가 다베라와 맛사와 기브롯 핫다아와에서도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느니라

23 여호와께서 너희를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게 하실 때에 이르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서 내가 너희에게 준 땅을 차지하라 하시되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믿 지 아니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나니

24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여 왔느니라


25 그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멸하겠다 하셨으므로 내가 여전히 사십 주 사십 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리고

26 여호와께 간구하여 이르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위엄으로 속량하시고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을 멸하지 마옵소서

27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사 이 백성의 완악함과 악과 죄를 보지 마옵소서

28 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내신 그 땅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일 만한 능력도 없고 그들을 미워하기도 하사

광야에서 죽이려고 인도하여 내셨다 할까 두려워하나이다

29 그들은 주의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이로소이다 하였노라



내가 이 백성을 보았노라(13절): 신명기의 다른 곳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27:9), 또는 ‘주의 백성’(32:43)으로 언급한다.

그런데 12절에서 ‘네(모세의) 백성’이라고 언급한데 이어 여기서도 ‘이 백성’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정한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의 거룩함으로부터 분리’시켜서 언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베라, 맛사, 기브롯 핫다아와(22): 이 세 곳은 모두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원망했던 곳으로,

다베라에서는 악한 말로, 맛사에서는 물이 없어, 기브롯 핫다아와에서는 고기가 없어 원망했다.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여 왔느니라(24절): 이는 모세의 고백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마지막 설교를 하고 있다.

설교 막바지에 이르러 백성들이 본질적으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삶은 일시적인 충동이나 유혹 때문이 아니라 습관으로 굳어져 있었다.

거역하는 삶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본성이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가 그들을 인도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반항해 왔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순간도 그들의 손을 놓지 않으셨음은 물론, 오히려 그들과 늘 동행하시며 보호해 주셨다.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한 모세 2014년 10월 7일 화요일


기도하는 모세가 있었기에, 반역하여 하나님을 진노시키는 이 목이 곧은 백성이

하나님의 인도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시행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언약이 깨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 백성들의 하나님이시고 이 백성이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도록 기도하는 모세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우리가 때때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하며 살아가는데도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은,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지금도 중보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죄를 생각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져 우리가 이 땅에서 멸망당한다 할지라도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오래 참으시며 기다리십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거룩해지기를 기대하시며,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리라는 소망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 언약이 이루어질 날을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악이 드러나는 순간마다, 우리는 우리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일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이 마음을 지배하려 들 때,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전히 불순종하며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악한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봐서 우리를 받아주십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를 붙잡읍시다.

오늘도 우리의 악한 모습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지만, 눈을 들어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긍휼이 무궁하신 우리의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불순종과 반항의 아이콘 2014년 10월 7일 화요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격노케 하던 일들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광야에서 그들이 행했던 여러 가지 불순종들을 의미하는데,

곧 갈증과 굶주림으로 인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던 일,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하나님이라 부르고 섬김으로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했던 일(출 32장),

악한 말로 하나님을 원망했던 일(민 11:1), 고기를 탐하다가 심판을 받은 일(민 11: 31-35),

그리고 가나안을 정탐한 후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며 여호수아갈렙을 돌로 치려고 했던 일 등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무려 40년을 광야에서 방랑해야 했고,

그 와중에 출애굽 1세대들은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것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과거였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굳이 모세는 이런 일들을 기억하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지난날의 실패를 잊지 않는 자만이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번 실패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패 후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늘 순종할 수만은 없습니다. 간혹 불순종할 때도 있게 됩니다.

하지만 그때 중요한 것은 그 불순종을 기억하고 돌이켜 다음에는 순종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거역이 아닌 순종의 삶 살기 (2019년 3월 1일 금요일) (22~24)


'오랜 시간 되풀이하고 반복하여 몸에 배어 굳어진 개인적 행동'을 습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습관을 들이느냐가 중요합니다.
습관은 그 사람의 삶과 인생의 지향성에 영향을 주기 쉬운 까닭입니다.
그 같은 습관은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표출되곤 합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후 줄곧 하나님께 불평하고 불순종하며 거역하기를 반복하여

하나님을 격노케 하곤 했습니다.
모세는 이 같은 그들의 반역행위가 가는 곳마다 부딪치는 환경과 사건 가운데

습관적으로 표출되었던 것을 강조하며 그것을 깨닫기를 바랐습니다.


"다베라와 맛사와 기브롯 핫다아와에서도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느니라."(신9:22) 또한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게 하실 때에 이르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서 내가 너희에게 준 땅을 차지하라 하시되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라고 덧붙입니다.(신9:23)


거역반역'믿지 않음과 듣지 않음'에서 나오는 깊은 불신, 깨닫지 못한 몽매함에서 나오는

심리적 반동현상입니다.
즉 믿는 습관과 듣는 훈련이 되지 않은 미성숙한 상태의 표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이 연거푸 행한 거역의 행동이 무엇이었는지를 반추해야 했듯

오늘 우리도 반복하여 행하는 반역행동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습관적, 반복적 행위가 하나님에 대한 감사찬송기도라면 그것은 복된 것입니다.

반면 불순종과 거역이라면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이 시간 모세의 다음과 같은 말을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듣기 바랍니다.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여왔느니라."(신9:24)


+ 주님, 매일 매순간 주님의 말씀에 귀기울이며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사랑의 중보자 (2019년 3월 2일 토요일) (25~29)

분쟁이나 문제에 얽힌 당사자들 사이에 조정과 화해를 도모하는 것을 중재역할 또는 중보역할이라 합니다.
그런데 중재 또는 중보하는 사람은 단순히 쌍방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쌍방의 인격, 품위, 이익, 기회 모두를 숙고하여 서로의 존엄을 지켜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거역행위와 악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어 그들을 멸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들의 구원자, 무한한 은혜, 복된 삶과 은총의 기회 모두를 잃을 뿐 아니라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모세중보기도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진노와 이스라엘의 멸망 사이에서

하나님께 세 가지의 이유를 이야기하며 용서를 위한 중보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기업이기에 용서를,

하나님께 신실했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여 용서를,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용서를 구했던 것입니다.


모세의 마음에 하나님과 이스라엘에 대한 전적인 사랑이 없었다면

하나님께 이 같은 진정어린 용서의 기도를 드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중보는 단순한 동정이나 의무감에서 나오는 행위가 아닙니다.
중보기도는 서로를 살리는 매우 가치있는 생명의 사역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도 모세처럼

존엄과 명예와 생명을 서로 살리는 사랑의 중보기도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주님, 세상 속에서 사랑의 중보자, 화해의 일꾼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부활하신 예수님이 디베랴 바닷가에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잡았던 물고기의 수는 153마리였습니다 (요21:1-11).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인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풍성한 153의 열매를 얻게될 것입니다.

1 거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분노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이었습니까?(14절)

5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을 때 모세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18절)

부활하신 예수님이 디베랴 바닷가에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잡았던 물고기의 수는 153마리였습니다 (요21:1-11).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인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풍성한 153의 열매를 얻게될 것입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왜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걸까요?

5 나는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경험이 있나요? 그것이 지금 내게 어떻게 작용하고 있나요?

우리의 죄가 드러나는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거룩함에 이르게 해주십시오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경험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이후 다시는 똑같은 불순종을 행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