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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예수님의 나라는 섬김으로 다스리는 곳입니다 (누가 22:24~38) (CBS)

colorprom 2017. 4. 16. 17:12

예수님의 나라는 섬김으로 다스리는 곳입니다 2014년 8월 20일 수요일


누가복음 22:24~22:38           


2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35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36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38 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은인(25절): 이집트, 시리아, 로마 등에서 통치자들이 자신의 명예를 드러내기 위해

스스로 취하거나 투표로 결정된 명칭이다.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27절):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세상을 다스리시는 방식은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이다.

제자들이 그분의 나라에 앉아 다스리는 방식은 섬기는 것임을 강조하신다.

또한 섬기는 자로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믿음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신다(32절).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36절):

예수님께서는 ‘고난 받는 종’으로서 죄가 없으시지만,

예언대로 불법을 행하는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다(사 53:12).

또한 제자들이 마주할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마주할 급박한 상황을 경고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앞선 9:3절과 10:4절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철저히 준비하여 자기물품과 자원을 준비하라고 하신다.

특히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서라도 준비하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실제로 검을 가지고 누군가를 공격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의 용도로 쓰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는 지금 이후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닥칠 고난의 크기가 얼마나 클 것인지를

미리 알리시고 그에 맞게 잘 준비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예수님의 나라는 섬김으로 다스리는 곳입니다 2014년 8월 20일 수요일


제자들 사이에 ‘권위’를 두고 다툼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로 크다 주장하는 제자들에게

그분의 나라에서 진짜 ‘권위’는 섬기는 자에게 있음을 밝히십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식탁에서 섬길 뿐만 아니라, 그들의 믿음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를 꿈꾸고 소망하는 우리들의 관심과 지향은,

지위나 순위가 아니라 ‘섬김’에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께서 시작하신 걸음이며, 그분께서 이 땅에서 이루실 하나님나라의 모습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크고 위대한 것을 기대하고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누가 더 성공했느냐 다투는 것도 우습지만,

교회 안에서 누가 더 믿음이 큰지를 경쟁하는 아이러니한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동시에 자신의 이름과 업적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주의 나라에서 그분의 능력을 힘입어 기동하면서도, 자신이 가진 것을 신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자신의 위치를 섬기는 자리로 규정하셨습니다.

충분히 자신의 권위와 영광을 나타낼 수 있으셨지만, 마지막까지 섬김과 중보의 자리를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밝히시는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서빙’을 하시고,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순간에도 제자들의 안위에 주목하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믿음으로 서있는 자리는 어디이고,

또 우리가 그의 나라를 소망함으로 주목하는 대상들은 누구인지 묵상해봅시다.


돌이킨 후에 형제를 굳게 하라 2014년 8월 20일 수요일


예수님이 온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시려는 순간에도

제자들은 누가 크냐의 문제를 두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제자들 사이에 그릇된 경쟁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릇된 경쟁의식은 시기를 낳고 그것은 결국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더군다나 지금 사탄베드로까지 넘어뜨리려고 합니다(31절). 제자 공동체에 위기가 찾아 온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연약한 제자들에게도 노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며  그들에게 이 땅을 맡기십니다.

비록 실수하더라도 돌이킨 후 네 형제를 굳게 하라하십니다.


우리 또한 제자들 이상으로 연약한 실수투성이의 사람들입니다.

특히 경쟁의식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들입니다. 경쟁상대들은 무조건 밟고 올라서야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은 이런 우리들을 부르시어 그분의 일을 맡기시고자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시며 도우십니다.

우리가 더 이상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에 주저앉아 있지 않도록,

그리고 그릇된 경쟁의식에 사로잡혀 시기의 사람이 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러니 혹시라도 여전히 나 자신만의 승리를 위해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공부하고 있다면 속히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속한 학교와 학원, 가정에 시기와 다툼이 아닌 신뢰와 사랑이 넘쳐나도록 수고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예수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참으로 신실했던 배반자 2015년 6월 27일 토요일 (누가 22:31~38)


베드로가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해 실망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그를 찾아와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 말씀하셨고, 그 말씀을 따른 결과 배가 잠길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베드로는 '깊은 곳' 즉 고기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을 알게 됨으로 큰 부자가 될 수 있었지만

"사람을 낚는 어부" 가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기로 결단하였습니다.


이후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 16)" 이라고 고백하여

예수님의 칭찬과 기대를 한몸에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께서 닭울기 전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오히려 이렇게 호언장담하기까지 했지요.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33절)."


그래서였을까요, 예수님이 잡히신 후 제자들이 다 도망갔지만

그래도 베드로는 끝까지 예수님 주변을 배회하였습니다.

물론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지만,

그 순간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통곡" 하였습니다(눅22: 62).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겠다 말하고,

예수님과 함께 옥에도 가고 죽을수도 있다고 호언장담한 베드로의 배반이 크게 보입니까?

베드로처럼 배반한 적 없는 나는 좀 괜찮다는 느낌이 듭니까?

그러면, 우리는,

베드로처럼 모든 것을 버리기로 결단하고 또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예수께말한 적은 과연 있습니까?


참된 지도자입니까? (2018년 4월 14일 토요일)


사람들은 모두 지도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다스리고 명령하는 위치에 있고 싶지, 다스림받고 명령받는 위치에 놓이고 싶어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현상은 교회 안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이나 모두 '위'에만 있고 싶어하고 '큰 사람'만 되고 싶어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예수님은 이에 대하여 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새겨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크냐'는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천국에서 '큰 자'의 기준은 이 세상과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눅22:26)


"너희는 그렇지 않다.

너희 가운데서 가장 큰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과 같이 되어야하고,

또 다스리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한다." (눅22:26, 새번역)


겸손한 자가 천국에서 가장 큰 자입니다.

주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며 겸손히 행하는 사람입니다.(빌2:3)

오늘도 주님의 마음을 품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시다.


+ 주님! 제 안에 있는 교만, 우월감을 물리쳐주시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소서. 아멘.


가장 큰 자는 섬기는 자 (2018년 10월 20일 토요일)


세상은 "남보다 잘난 사람이 되라"고 우리를 부추깁니다.

한국 사회가 교육열이 높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남보다 잘난 사람이 되어서, 남에게 업신여김을 받지 말고,

오히려 남 위에 서서 남을 누르며 사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고 가르치는 것이지요.


이것은 현대 우리 사회만의 일이 아닙니다.

인류역사에 늘 있어왔던 '패턴'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도 "누가 더 크냐?"고 다투었습니다.


그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누가 더 힘이 센 지 말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은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로 오셨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 앉아서 먹는 자가 크지만, 예수님께서는 앉아서 먹기보다는 섬기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들도 큰 자처럼 앉아서 먹지 말고 예수님처럼 섬기는 자가 되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예수님에게 맡겨 다스리게 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 나라를 맡기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그 백성을 섬기신 것처럼 제자 된 우리들도 하나님나라 백성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섬기는 자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정치가들도 주님의 뜻을 따라 국민들을 잘 섬기는 일꾼의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

가득합니다.


+ 주님께서 우리를 섬겨주심같이 나도 나와 함께하는 자들을 섬기게 하소서. 아멘.



1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에 찾아온 위기는 무엇인가요?

5 나는 그릇된 경쟁의식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지는 않나요?


주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소망함으로 섬김의 삶을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그릇된 경쟁의식에서 나오는 시기와 질투,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던 삶을 돌이키게 하시고

예수님처럼 낮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잘 섬길 수 있게 해주세요.


하나님, 우리의 믿음없음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나마 연약한 믿음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더욱 굳게 세워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