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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평화가 어디에서 오는가? (누가 19:28~48) (CBS)

colorprom 2017. 4. 14. 14:20

평화가 어디에서 오는가? 2014년 8월 9일 토요일


누가복음 19:28~19:48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29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32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33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34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36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으로 인함이라 하시니라


45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46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48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28절): 므나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예루살렘으로 가신다.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이유는 고난 받고 죽음을 당하고 부활하기 위해서다.

예수님께서 앞서서 가신다는 것은 목적의식이 분명하시다는 것을 보여준다.

므나의 비유도 예루살렘 가까이 오셨을 때 시작하셨다(11절).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소명을 유효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31절):

주님께서 예루살렘 입성하실 때 나귀를 타신 일은 스가랴 9장 9, 10절을 성취하신 것이다.

정복자가 아니라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신다. 이를 위해서 나귀를 준비하셨다.

백성들이 노래하는(38절) 이 평화는 바로 예수님의 죽음으로 보장된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46절):

예루살렘 성은 백성들의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고 황폐하게 될 운명이었다.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된 것은 예루살렘 성의 평화가 약탈당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약 시대의 기록이 이를 증언한다.


평화가 어디에서 오는가? 2014년 8월 9일 토요일


예수님께서 평화의 주가 되시는데, 왜 성을 보면서 우셨을까요?

견고한 성은 평화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오히려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성전이 기도의 집이 아니라 강도의 소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참된 성전으로서 서기 위해서 고난의 길로 가셔서,

참된 평화의 성 예루살렘을 세우고 계십니다.

로마의 개선장군은 백마를 타고 성으로 들어오지만, 우리 예수님께서는 나귀를 타고 들어오십니다.

개선장군이나 예수님 모두 성에 평화를 전하러 들어가지만,

개선장군의 평화는 누군가를 짓밟고 패배시키고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버리고 고난을 당하고 죽음으로써 평화를 전하시는 것입니다.

승리한 자만을 위한 평화와, 자신을 버려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평화입니다.


예수님과 세상의 평화는 곧 성전과 예루살렘 성의 관계를 드러냅니다.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된 이상 성은 백성들의 평화를 보호하지 못합니다.


교회가 복음에 충실하지 못하면 세상은 교회를 통해서 위로를 받지 못합니다.

세상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교회는 세상의 위로가 되지 못하고, 평화의 전달자가 되지 못합니다.

왜 교회가 이렇게 조롱거리가 되었을까요?

백마 탄 개선장군의 모습을 취하려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교회가 자신을 버리시려 나귀를 타신 예수님의 복음을 추구하고 있나요?


복음을 잃어버린 교회는 세상을 살리지 못하고 함께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돈과 명예와 음란과 권력에 물든 교회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오직 나귀 타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집시다.



1 왜 예수님께서 성을 보시고 우셨을까요?

5 성이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성전과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나귀를 타고 오신 평화의 주님을 찬송합니다.
교회가 백마가 아닌 나귀를 타고 오신 주님을 따라서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