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권위 2014년 8월 11일 월요일
누가복음 20:1~20:8
1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2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4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5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7 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하루는 예수께서(1절): 고난주간의 셋째 날로서 금요일에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면,
이 날은 화요일 정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1절): 가르침과 복음을 전하는 것이 별개의 것은 아니다.
가르치는 것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가르침이 복음을 담아내는 전파의 역할을 한다.
구약을 가르치셔서 예수님께서 예언된 메시아시라는 복음을 알려주셨다.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2절):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시는 것이 종교 당국자들에게 거슬렸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온 자이고 메시아라고 하시는 근거를 묻고 있다.
물론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하게 한 사건 때문이기도 하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4절):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하러 온 세례요한과 연결해서 문제를 해결하신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기원한 것이라면, 그가 증언한 예수님도 그러하다고 말씀하신다.
종교당국은 난처한 입장에 더 시비하지 못하고 피한다.
예수님의 권위 2014년 8월 11일 월요일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복음의 근거를 종교당국이 질문합니다.
무슨 권위로 그런 내용을 가르치느냐고 질문합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세례요한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요한을 하나님께서 부르신 선지자라고 본다면,
그가 증언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나라와 복음의 분명한 소유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복음을 가르치셨습니다.
들의 백합화를 통해서도, 풍랑이 이는 바다를 통해서도 믿음과 하나님나라의 의와 믿음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일도 복음 전파로 귀착됩니다.
병자를 치료하시는 것을 통해서도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적도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위해서 필요했던 것입니다.
구약을 통한 가르침도 복음 전파로 귀착됩니다.
가르침을 통해 이해를 넓이고 이로써 복음의 이해에 도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이 복음과 분리된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는 복음 전파라는 소중한 소명을 받은 신적 기관입니다.
병 고치는 일을 통해서, 그리고 구제와 섬김을 통해서 드러나야 하는 것은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설교가 복음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많은 강의들이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복음의 능력을 증언하는 사명을 포기해버린 것은 아닙니까?
우리의 삶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중심으로 삼고 있습니까?
혹 교회가 우리의 경험이나 지식을 나누는 곳, 또는 교제의 장으로 전락한 건 아닌가요?
진퇴양난 2014년 8월 11일 월요일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진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최고 의결 기관이었던 산헤드린에서 파견된 대표들은
공적으로 임명되지 않은 자에게는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며
예수님께 가르침을 중지할 것을 경고합니다.
다시 말해, 하찮은 시골뜨기 목수의 아들이
왜 함부로 허락도 없이 남의 구역에서 자리를 펴느냐는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시지 않고 오히려 지혜로운 질문으로 역공을 가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질문에 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욕심으로 인해 종종 무리수를 두거나,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고 이런저런 계산에서 대답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을 뿐입니다.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선택한 순간의 거짓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지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하기에 어떤 일이나 사건에서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관용’과 ‘정직함’의 자세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설령 당장에 위기나 곤란이 생길지 몰라도 결국에는 그것이 참된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입니다.
1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신 복음의 내용이 무엇일까요?
5 예수님에게 권위를 요청했을때 왜 세례 요한을 언급하셨습니까?
1 종교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5 나의 관용과 정직함은 어느 정도인가요? 믿음에 합당한 관용과 정직함을 갖도록 합시다.
하늘의 권위를 교회에 주시고 복음을 전하도록 하신 주님을 찬송합니다.
우리의 삶이 총체적으로 복음을 드러내고 전하는 삶이 되게 해주십시오.
눈앞의 어려움이나 곤란을 피하기 위해 거짓을 말하거나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믿음으로 관용과 정직함을 실천할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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