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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부활과 언약신앙 (누가 20:27~47) (CBS)

colorprom 2017. 4. 14. 15:06

부활과 언약신앙 2014년 8월 13일 수요일


누가복음 20:27~20:47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 이들이 와서

28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만일 어떤 사람의 형이 아내를 두고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9 그런데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죽고

30 그 둘째와 셋째가 그를 취하고

31 일곱이 다 그와 같이 자식이 없이 죽고

32 그 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33 일곱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그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36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37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38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39 서기관 중 어떤 이들이 말하되 선생님 말씀 잘 하셨나이다 하니

40 그들은 아무 것도 감히 더 물을 수 없음이더라


41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42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43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의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44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45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6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7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욱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1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3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사두개인(27): 기원전 2세기 경 하스모니안 왕조 때

사독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다수의 제사장들에 의해 형성된 유대교 당파 중 하나.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27절):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는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었다.

사두개인은 부활을 믿지 않고 현세에 관심이 많다. 대제사장직 등을 독점하며 실세의 역할을 했다.

바리새인은 내세와 부활을 믿었다.

바울 사도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변화된 사건 뒤에는 그가 바리새인이었던 배경이 있다(행 23장 8절 참고).


부활함을 … 여김을 받은 자들(35절):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의인과 악인의 부활 가운데서 이 구절은

‘의인의 부활’에 참예할 자들을 뜻한다.

이에 반해 악인의 부활은 단지 죄의 심판과 형벌을 받기 위한 것일 뿐이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37절): 예수님께서 부활을 증언하시기 위해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인용하신다(출 3장 6절). 대표적인 언약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 되신다.

그들에게 하신 약속은 이미 죽은 그들을 부활시키심으로써 성취하실 것이다. 언약의 신앙은 부활신앙이다.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44절): 사두개인들에게 질문을 돌려주신다.

종교지도자지만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는 사두개인을 책망하시는 것이다.


다윗의 자손 … 되겠느뇨(41-44절): 랍비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혈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편 110편에서 다윗이 메시아를 주라고 부른 것을 인용해

메시아의 참된 정체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즉 예수님은 비록 육신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다윗이 주라고 부르는 만왕의 왕이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부활과 언약신앙 2014년 8월 13일 수요일


구약의 언약 신앙이 신약시대에도 유효한 것은 부활에 대한 신앙이 있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는 신앙은 죄를 극복하려는 신앙이고,

죄의 공격인 사망을 이기는 부활을 필요로 합니다.

죄를 완전히 이기기 위해서는 부활의 신앙이 필수적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언약 신앙의 핵심입니다.

부활과 내세의 신앙이 없으면, 현세에서 고난을 인내하고 절제하며, 죄를 제어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두개인들은 그래서 세상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불쌍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북한의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자유를 맛보지 못하고 죽은 성도들,

핍박과 순교를 당한 그리스도인들이 믿은 신앙, 참된 언약 신앙들은 어떻게 위로가 됩니까?

바로 부활 때문에 위로가 됩니다.


먼저 죽은 자들은 영원한 죽음에 누워있지 않습니다.

저들이 받은 약속,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을 누릴 것입니다. 산 것입니다.

우리도 한 평생을 살다가 부르실 때, 산 자로서 영원한 생명으로 진입합니다.

죽음으로 들어간다고 하지 않습니다.

바울 사도는 사망이 생명에 사로잡혔다고 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판단과 아주 다릅니다.

영원한 생명,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들은 땅위에서 인정받는 일들에 소망을 걸지 않습니다.

언약 신앙은 지금 모든 것이 성취되기를 바라면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내게 주신 부활의 소망이 만들어내는 힘과 위로를 함께 겸손하게 나누면서 사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이 만들어내는 참된 복음적 삶을 살고 있습니까?


상식이 가진 한계 2014년 8월 13일 수요일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부활신앙은 다른 종교에서는 볼 수 없는 기독교만의 독특한 신앙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만큼이나 예수님의 부활 역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 의해 수용되지만,

부활은 전혀 상식 밖의 사건이기 때문에 사람들로서도 잘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해되는 것만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습성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두개인들도 부활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고는 예수님께 부활 후에 있을 결혼관계에 대해 질문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는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겠지만,

부활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거나 시집가는 일이 없고 또 다시 죽을 수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부활 후의 삶은 이 세상에서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식에 갇힌 신앙은 어떠한 소망도 줄 수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비상식적인 신앙을 가지라는 말은 아닙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비상식적인’ 신앙이 아니라 ‘초상식적인’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기준 (2019년 10월 2일 수요일)


예수님 주변엔 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대부분은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군중이었습니다.

군중을 제외하면, 사람들은 두 패로 분리됩니다.

하나는 예수님 편에 섰던 제자들, 다른 하나는 종교기득권층이었습니다.


서기관들은 후자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과 끝까지 평행선을 그었던 사람들입니다.

이유를 주목해야 합니다. 바로 '외식' 때문이었습니다.(눅20:47)

서기관들 스스로는 최고의 믿음이라 자부했지만, 주님 기준으로는 외식(Show)에 불과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두 사람이 헌금하는 것을 주님이 목격하셨습니다.

'부자(들)'와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과부의 헌금액수만 '두 렙돈'으로 밝혀져있습니다.(눅21:2)
'렙돈'이란 당시 최소의 화폐단위입니다.

십중팔구 부자는 과부의 헌금액수와 자신의 것을 비교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겁니다.

헌금액수의 크기를 곧 믿음의 크기로 여겼을 겁니다.

부자의 치명적인 착각이었습니다.


주님의 기준은 헌금의 양이 아닌 봉헌자의 진심이었습니다.

과부의 진심에 대하여,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인정하셨고 받으셨습니다.(눅21:4)


'불신(안 믿음)'만큼 위험한 게 '맹신(막 믿는)'입니다.

열심히 믿는다고 다 되는건 아닙니다. 믿되 '제대로' 믿는 게 중요합니다.


기준이 문제입니다. 방향이 문제입니다.

방향이 잘못되면, 속도를 더할수록 위험해집니다.


우리는 서기관과 부자의 과오를 거울삼아야 합니다.

기준, 방향을 잘못 잡으면, 열심히 드려도 많이 드려도 무익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기준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 주님, 우리의 믿음이 외모보다 중심, 열심보다 방향에 집중하게 하소서. 아멘.


1 출애굽기 3장 6절의 말씀을 인용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5 왜 서기관들을 삼가야 합니까?

1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활 이후의 삶이 뜻하는 참 의미는 무엇일까요?

5 나는 부활신앙에서 어떠한 소망을 발견하고 또 힘을 얻고 있나요?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 주님을 찬송합니다.
부활의 소망을 붙잡고 겸손과 섬김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비록 이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지만,

궁극적으로 부활에 대한 신앙과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