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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의 여리고 (누가 18:31~43) (CBS)

colorprom 2017. 4. 14. 13:48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의 여리고 2014년 8월 6일 수요일


누가복음 18:31~18:43          


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35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36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37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38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39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2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31절): 9장 51절 이후 예수님의 행보는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선지자들이 예고한 고난을 이루시기 위해서였다.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위해서였다.

이런 고난의 길을 제자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부자도 들어갈 수 없는 하나님나라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기 위한 걸음이었다.


제자들이 … 깨닫지 못하였으니(34절):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그들이 대망하였던 날을 보게 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35절): 여리고는 예루살렘의 길목이다.

여호수아는 이 여리고성을 정복하면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얻기 시작했고,

무너지는 여리고 성에서 이방 여자 기생 라합

하나님께서 이 성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고백함으로(수 2장 9절, 6장 22절) 구원을 받았다.

이 시작 장애인도 나사렛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38절): ‘다윗의 자손’은 메시아를 가리키는 칭호이다.

따라서 맹인은 예수님을 단순한 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그 유일한 구원자로 고백하는 것이다.


더욱 크게 소리 질러(39절): 그의 소원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는 너무나 간절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미움을 사는 두려움을 이기고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의 여리고 2014년 8월 6일 수요일


구걸하는 맹인이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이 만들어내는 역사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형성됩니다.

이 복음의 은혜 앞에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요청하는 자에게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선하게 일하시기 시작하십니다.

여호수아여리고를 정복할 때, 성이 칼과 창으로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성을 주셨다는 믿음으로 매일 성 주위를 돌고, 제7일에 함성을 질렀습니다.

성은 하나님의 약속 앞에 무너진 것입니다.


그때 많은 여리고 사람들이 죽었지만, 라합은 정탐꾼들을 살려주면서

하나님께서 이성을 주셨다는 믿음의 고백을 하여(수2:9) 무너지는 여리고 성에서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이방여자인 라합이 살아남은 것과 반대로, 아간은 이스라엘 백성인데도 죽었습니다.

재물을 욕심부리다 여리고와 함께 멸망을 당했습니다.


천년이 더 지나서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납니다.

이때 예수님께 구원을 받은 사람은

기생 라합과 같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자,구걸하는 맹인이었습니다.

세상에서는 가치 없는 자였지만,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향해 불쌍히 여겨달라고 요청했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나를 살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무너질 여리고와 같은 성에서 사는 인생들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를 건질 유일한 소망이 예수님이심을 우리가 믿고 의지합니까?


가르치시고 고치시는 예수님 2014년 8월 6일 수요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가르치셨지만, 제자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각과 예수님의 뜻이 그만큼 달랐기 때문입니다.


반면 맹인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메시아이신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눈을 뜨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고, 또 그를 구원해주셨습니다.


믿음은 우리를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도록 이끕니다.

믿음은 어떠한 생각이나 가치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집중해서 예수님만 바라보게 하고,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게 합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닌 믿음입니다.


우리는 때로 우리의 생각과 전혀 맞지 않는 말씀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에 순종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말씀에 겸손히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그렇게 하도록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순종을 통해 예수님은 그분의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누가 진짜 맹인인가? (2018년 7월 21일 토요일)


여리고의 길가에 앞 못 보는 걸인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그를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로 소개합니다.(막10:46)


'디매오'란 이름 뜻은 '명예 혹은 영예'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는 '명예로운 아들'이란 이름에 걸맞지 못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니까 구걸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날도 바디매오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길가에 앉아 구걸을 합니다.

그때 갑자기 사람들의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왜 그런가 물었더니 '나사렛 예수'가 이 길로 지나가신다는 것입니다.

눈 먼 바디매오의 '귀'가 번쩍 뜨입니다. 가슴이 뛰기 시작합니다.

이전에 예수님에 관해 소문을 들었을 때 그는 마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이미 보았습니다.

그분이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심을 그는 확신하였습니다.(사35:5)

그는 필사적으로 그를 향하여 소리를 지릅니다.


그런 바디매오를 주변 사람들이 꾸짖습니다. "앞서 가는 자들"이었습니다.(눅19:39)
그들은 바디매오와는 달리 두 눈 다 멀쩡히 뜨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쩌면 바디매오보다 훨씬 유능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이 바디매오보다 밝았을까요?


그들은 기적을 보기 위해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해보게 됩니다.

바디매오와 소위 "앞서 가는 자들" 중 어떤 쪽이 진짜 눈 먼 사람이었을까요?


+ 주님, 영적인 눈을 제대로 뜨고 살게 하소서. 아멘.


질문

1 인자가 왜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5 여리고의 맹인이 가진 믿음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1 예수님께서 맹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5 내 있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맹인과 같은 믿음의 고백이 내게 있나요?


+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오늘도 찬송합니다.
구걸하는 자와 같은 인생에게 복음의 기회를 주신 주님을 더욱 의지하고 믿고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라고 믿을 수 있는 믿음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이제 이 믿음을 가지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살 수 있도록 인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