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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무리가 아니라 제자입니다 (누가 14:25~35) (CBS)

colorprom 2017. 4. 13. 14:05

무리가 아니라 제자입니다 2014년 7월 26일 토요일


누가복음 14:25~14:35           


25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35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26절):

‘미워하다’는 말은 과장법으로서, ‘덜 사랑하다’의 히브리식 표현이다.

즉, 강한 결단력을 가지고 예수님을 더욱 그리고 우선적으로 사랑해야 함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27절): 사형수는 십자가의 가로대를 지고

십자가 처형을 받을 수직 말뚝이 있는 장소까지 조롱하는 무리 가운데를 지나서 갔다.

유대인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의미를 즉시 깨달을 수 있는 표현이다.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28절):

미리 주의 깊게 계산하지 못함으로 수치를 당한 예로 건축과 전쟁의 사례가 등장한다.

실제 주후 27년, 부실하게 지은 원형 경기장의 붕괴로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건축자가 수치를 당한 일이 있었다.

또한 헤롯 안디바가 섣불리 전쟁을 일으켰다 패전한 일이 있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33절): 당시 십자가는 최고로 잔혹한 형벌이었다. 예수님은 그만큼 죽음을 각오하고 고통과 수치를 당할 준비가 되지 않으면 제자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하신 것이다.


소금이 … 내버리느니라(34-35절): 고대 세계에서 소금은 맛을 내고 식품을 저장하는데 사용되었다.

소금은 대부분 사해 남서쪽 지역에 있는 소금 기둥에서 채취했는데,

불순물이 많이 섞인 이 소금은 상하기가 쉬웠고 짠 맛을 잃어버리면 거름에도 쓸데없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무리가 아니라 제자입니다 2014년 7월 26일 토요일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지만 그들 가운데 다수는 무리이고, 제자는 소수였습니다.

무리는 예수님께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는 사람이며, 제자는 예수님의 뜻을 받드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무리는 고난 앞에서 쉬이 사라지지만, 제자는 어려움 속에서 더욱 강건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라올 사람들에게 무리인지 제자인지 돌아보게 하십니다.

상품을 구매하다가 ‘속았다!’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기업의 상품 홍보의 특징은 장점을 강조하고 단점을 축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품을 구매한 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단점으로 마음이 불편한 일이 종종 있습니다.


문제는 교회가 복음을 이런 상품처럼 판매하려는 것입니다.

분명 복음에는 풍성한 생명과 넘치는 영광이라는 모두에게 매력적인 면이 있습니다.

자연히 복음을 가장 매력적인 상품으로 꾸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복음에 반응해 신앙의 여정을 시작한 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도중에 ‘속았다!’라는 배신감을 경험하며 신앙을 버립니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또한 생명을 요구하는 거친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를 때 받는 영광뿐 아니라,

치러야 할 대가까지 정직하게 전하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복음전도’입니다.


생명까지 요구하는 복음의 깊은 부르심을 경험한 이들은

결코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싸구려 물건 판매하듯이 전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명이 담겼으며 다른 이의 생명을 요구하는 복음이니, 진지하게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참된 제자 2014년 7월 26일 토요일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를 향해 참된 제자가 무엇인지 가르치셨습니다.

곧, 참된 제자가 되기 위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가족을 미워하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는 큰 희생과 결단이 포함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을 좇는 길은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는 것이기에,

이를 감당할 결단이 없으면 결코 자신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이는 매우 힘들고 어렵고 때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고난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귀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예수님을 우리의 삶에 최우선으로 두고, 예수님을 좇겠다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물론 때로는 내게 중요한 것을 포기해야 할 만큼 힘들고 어려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 길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교회의 핵심가치는 복음이다 (2019년 2월 27일 수요일) (34~35)


보관방법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일수록 소금의 가치는 존중되었습니다.

음식을 구하고 만들기도 쉽지 않았지만

애써 마련한 음식이나 재료가 상한다면 그것은 더욱 아쉽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때 소금은 하나님이 주신 은총의 선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오랜 옛날에는 소금이 화폐처럼 사용될 정도로 인간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습니다.


소금을 소금 되게 하는 핵심가치는 짠 맛입니다.

소금은 짠 맛을 낼 뿐 아니라 부패도 방지합니다.


소금의 형태나 색깔은 달라져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짠맛이 없으면 소금은 소금이 아닙니다. 그것이 소금의 본질인 까닭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믿음입니다.

‘예수’라는 갈릴리 나사렛 촌구석의 한 인간에게서 이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야를 보았으며

그분을 믿는다는 고백교회의 바탕입니다.


교회가 사회봉사도 해야 하고 친교도 해야 하지만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가장 근본적 가치는 복음입니다.

정세분석은 신문에서 얻을 수 있고 사회봉사는 시민단체가 행할 수 있고 친교는 친목단체들이 더 잘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복음은 오직 교회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기초이며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핵심요소입니다.


교회가 복음 위에 바로 서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습니다.

그러나 관계가 뒤틀리거나 순서가 뒤바뀌면 교회는 맛 잃은 소금이 됩니다.

본질을 잃어버린 단체가 됩니다. 세상의 조롱거리, 천덕꾸러기로 전락합니다.


한국교회가 복음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한국교회가 복음을 회복하게 하소서. 아멘.


부활하신 예수님이 디베랴 바닷가에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잡았던 물고기의 수는 153마리였습니다 (요21:1-11).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인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풍성한 153의 열매를 얻게될 것입니다.

1 무리와 제자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5 제자로서의 부르심은 어떤 삶으로 이어집니까?(26, 27절)

1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왜 수많은 무리를 향하여 하신 것일까요?

5 내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믿고 있나요? 이를 위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광과 고난의 복음 모두를 깊이 경험하게 해주십시오.
무리가 아닌 제자로 고난 속에서도 힘차게 주님을 따라가게 해주십시오.


저를 예수님의 제자로 불러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설령 힘들고 어려운 길이 될지라도 오직 예수님만 믿고 바라며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