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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영광 중에 나눈 이야기 (누가 9:28~43) (CBS)

colorprom 2017. 4. 11. 18:37

영광 중에 나눈 이야기 2014년 7월 4일 금요일


누가복음 9:28~9:43           


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요한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엘리야

31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34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37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38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39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가나이다

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42 올 때에 귀신이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본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중요한 단어나 구절에 대해 설명해 주는 곳입니다.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 광채가 나더라(29절): 변화산 사건을 기록한 것인데,

누가는 마가복음에 나오는 ‘변형되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변형되다’라는 말이 자칫 이교도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당시 헬라문화권에 있던 사람들은 많은 신화들을 통해

‘다른 형태로 변신하는 신적인 존재’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이로 인해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왜곡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세(31절): 새번역성경은 이 부분을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의 떠나가심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라고 번역한다.

예수님께서 별세하시는 것, 곧 돌아가시는 것은 그가 이루실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고난을 당하시고 돌아가신 일은 하나님나라를 충만하게 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일이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33절): 변화산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제자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세 사람이 함께 있으니 초막 셋을 짓고 살면 좋겠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을 표현한 것뿐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35절): 모세와 엘리야는 ‘들으라 이스라엘’이라고 외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음성이 하늘로부터 들려와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전하고 있다.

이는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증언하는 음성으로서, 제자들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분께서는 하나님나라를 회복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영광 중에 나눈 이야기 2014년 7월 4일 금요일


지금 영광 중에 계신 분께서는 장차 죽으실 분이십니다.

영광과 죽음이 하나가 되어 이루어내는 것이 복음이며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광스러운 분으로서 험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영광과 수치가 하나가 되지 않고서는 복음도 구원도 없습니다.

가장 큰 영광은 가장 수치스러운 십자가 위에서 빛납니다.

아름다움과 추함, 의와 불의, 선과 악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완전히 배치되는 것으로 양립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영광과 치욕은 도무지 함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광과 치욕이 하나로 어우러져 형성되었습니다. 그 둘이 하나가 되어 빛납니다.

영광스러우신 하나님의 아들이 수치스러운 죄인이 짊어져야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는 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는 복음의 이 역설을 상실한 듯 보입니다.

현대교회는 영광스러움만을 한없이 추구합니다.

 화려한 세상을 화려함으로 압도하려 하며, 화려함이 극치를 이루는 순간을 하나님의 영광이라 칭송합니다.

자연히 치욕은 현대교회에서 밀려나 존재할 자리를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교회에서는 영광과 치욕이 어우러진 십자가가 잘 보이지 않고,

덩달아 구원의 복음과 하나님의 임재도 감춰집니다.

영광만으로 가득한 공간 속에는 하나님의 영께서 임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의 누추한 몸 안에 임하셨으며, 그 몸으로 구속의 역사를 이루셨다는 사실을,

누추한 그 몸이 치욕의 십자가 위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진리가 회복될 때 교회도 회복됩니다.


영광의 길은 곧 고난의 길 2014년 7월 4일 금요일


예수님은 3명의 제자만을 데리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용모가 변화되어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이 사건은 앞서 언급된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다”(27절)는 말씀의 성취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곧 모세와 엘리야는 각각 율법과 선지자를 대표하는 자들로서,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은 앞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곧 바로 산을 내려오십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산 아래에서는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곤경에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시면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능력과 권세도 아닌 오직 ‘십자가의 길’만이,

그리고 그러한 예수님의 뒤를 각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되어갈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능력과 기도 (2017년 6월 29일 목요일) (누가 9:37~43)


예수께서 몇몇 제자들과 산에 올라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귀신들린 아들을 고쳐달라고 나머지 제자들에게 왔습니다.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려 밤새 애쓴 것으로 보입니다만, 실패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아이의 아버지가 다가와 마치 고자질이라도 하듯 소리칩니다.

"선생님, 내 아들을 봐주십시오. 하나밖에 없는 아들입니다.

귀신이 그를 붙잡기만 하면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귀신이 그에게 발작을 일으켜 거품을 내게 하고, 몸에 상처를 입히고서야 겨우 떠납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달라고 간청했으나 쫓아내지 못했습니다."(눅9:38-40, 새번역)


자초지종을 들으신 예수님은 책망하십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눅9:41)


예수님은 진작에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할 권세를 주신 바 있습니다.(눅9:1)

그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냈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능력은 있었으나, 그들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막9:27)


기도의 부족, 이것은 제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제오늘 이야기도 아닙니다.
믿음은 예수님께 ‘의존’하며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믿음은 예수님을 ‘신뢰’하며 예수님처럼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과정에서 기도는 필수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 능력이 아무리 있으면 뭐합니까? 그는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말씀도 체험도 2015년 5월 15일 금요일 (누가 9:28~36) (CBS)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체험 위주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체험 위주의 신앙은 자칫 자신의 체험을 절대시하기 쉽습니다.

또 갈수록 더 큰 체험을 추구하다가 결국 영적 신비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말씀읽기를 등한시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개인주의적 체험 위주의 신앙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체험을 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눈앞에서 그 모습이 변하심으로 제자들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큰 체험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일컬어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변모 사건'이라고 합니다.


이 시점에서 예수님은 왜 이런 일을 벌이셨을까요?

바로 제자들에게 확신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라고 한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31절)

지금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체험을 줌으로써 강하고 담대하게 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말씀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체험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자라고, 영적 능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강하고 담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체험 위주의 신앙이 잘못되었다 해서 아예 체험을 부정하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체험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놓치면 결코 안됩니다.


+ 하나님, 저희에게도 체험을 허락하셔서 더 큰 확신 위에 서게 하소서. 아멘.


믿음이 있다면 (2019년 7월 31일 수요일)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40여 년을 목회하신 목사님이

목회말년에 한 교인의 말도 안 되는 트집으로 인해 어려움을 경험하시고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목회말년에 평탄해서 아무 어려움이 없다면

제가 잘나서 목회를 잘했다 자고할까 봐, 생트집을 하는 OOO을 제게 보내셨지요?

목회하는 마지막까지 처음마음으로 겸손하게 목회할게요."

그렇지요. 우리 인생에 어려움이 없다면 우리는 모두 교만해질지 모릅니다.

어려움으로 단련된 겸손한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삶 속에서 어려움을 만납니다.

오늘 본문은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 '믿음'임을 말씀합니다.


귀신들린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해 난감한 제자들에게,

그런 제자들을 보면서 믿음이 약해진 사람들에게

그리고 믿음이 부족한 우리들에게 정신이 번쩍 들도록 책망하시는 예수님의 꾸짖음은

바로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어려움을 만나고 있습니까?

네 아들을 당장 이리로 데려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지금 당장 우리의 어려움을 예수님께 내어놓는 믿음을 지닐 수 있기 바랍니다.

어려움이 있다고 포기하지 말고 다시 한 번 예수님께 내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

소망 중에 기도하는 믿음의 용사들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


+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낙심하지 말고 소망 중에 기도하게 하소서. 아멘.




1 모세와 엘리야가 주님과 나눈 대화는 무엇에 관한 것이었나요?

5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예수님에 대해 증언한 내용은 무엇인가요?

1 예수님이 3명의 제자들과 산에 올랐을 때 어떤 사건이 일어났나요?

5 내가 걸어야 할 십자가의 길은 어떤 것일까요?

지금 당면한 것과 미래 목표로 하는 것을 각각 나누어 생각해보세요.


                   

영광의 순간에 돌아가실 것을 이야기하신 그리스도처럼

이 땅의 교회가 영광의 순간에 십자가를 바라보게 해주십시오.


이 땅의 성도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고난과 치욕의 길을 기꺼이 걸어가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로서 내가 감당해야할 십자가의 길을 깨닫게 하시고,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믿음과 사랑, 그리고 소망을 갖게 해주세요.


주님, 우리를 영적 안일함에서 깨워주소서.

주신 능력을 잘 지켜 그 능력으로 영적 안일함을 이기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