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 2014년 6월 20일 금요일
누가복음 6:1~6:19
1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2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8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10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11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
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12 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은지라
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성경 길라잡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1절):
제자들이 이삭을 자른 이유는 먹기 위함이라기보다는 밀밭을 통과해 지나가기 위함이었고
그 과정에서 이삭을 먹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안식일 규정에는 이삭을 자르는 행위는 물론 그 자른 이삭을 비비는 것도 금지되었기에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수확한 죄’로 보았다.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2절): 당시 유대인들의 삶은 안식일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안식일을 지키는 규칙이 정리되어있었다.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은 일종의 노동으로서, 안식일에는 할 수 없는 일로 규정되어있었다.
어떻게 할까하고 서로 의논하니라(11절):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행한 행동 때문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상당히 당황하였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 2014년 6월 20일 금요일
안식일을 합당하게 지키기 위해 유대인들은 수많은 규례와 법칙을 고안해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것들을 무시하셨습니다.
굶주린 자들이 먹을 것을 구하여 먹게 하셨고, 병든 자들은 치료해주셨으며,
더러운 귀신에 묶여 고난당하는 자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생명을 살림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최초의 안식일은 창조의 완성에 이어 주어졌습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과 평화가 가득한 세상의 회복을 바라본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의 의미는 잊은 채 형식만 붙들고 있었으며,
그 형식으로 말미암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은 형식과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입니다.
신앙의 내용이나 그 내용을 담는 그릇인 형식 모두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신앙의 본질과 그 본질을 담을 수 있는 예배와 삶의 형식이 필요합니다.
내용에 집중한다 하여 형식을 지나치게 가볍게 다루는 경우나,
내용은 잊어버린 채 형식에만 매달리는 것은 모두 위험합니다.
주일을 기억하며 지키는 우리의 신앙 전통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되어야 합니다.
주일의 참 의미와 내용을 밝히 알아 누리는 삶이 필요할 뿐 아니라,
주일성수의 형식 또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주일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예배하는 날이며,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날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회복될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는 날로서 경건하고 겸손하게 지켜야 합니다.
새 시대의 새 일꾼 2014년 6월 20일 금요일
안식일에 일하는 것은 율법에 충실한 유대인들에게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자르고 또 그것을 비벼서 먹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는 안식일에 타작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당연히 바리새인들은 이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을 꾸짖으시며
안식일의 참된 의미에 대해, 곧 안식일에 참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가르쳐주십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생명을 구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안식일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한 안식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그들을 살리는 일(물론 여기에는 복음을 전하는 일도 포함됩니다)에 헌신하는 것이
주일성수의 참 의미이기도 합니다.
12명의 제자가 이와 같이 사람들을 살리는 일(복음을 전함으로써)에 헌신하도록 하기 위해 부름을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를 위해서 먼저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먼저 확인하시기 위함이며,
또한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충만함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새 시대를 위한 새 일꾼은 먼저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 없이는 아무런 역사와 변화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을 낫게 함 (2017년 7월 5일 수요일) (누가 6:12~19)
예수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의 이삭을 잘라 먹고, 회당에서 손마른 병자를 고쳐주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못마땅해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의 논쟁에서 밀리자 분노하여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모의하고 있었습니다.
율법을 목숨처럼 지키는 그들에게 그 법을 넘어 당당한 예수님의 행동은 매우 위험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런 중에 예수님이 은밀히 기도하기 위하여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기도를 드리셨는지 알 수 없지만,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해하려는 사람들이 큰 힘을 가진 사람들임을 예수님은 모르시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대적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은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더욱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불러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도록 파송하신 것입니다.
함께 일할 동역자를 세우고, 더욱 힘을 내어 주의 일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힘이 간절한 기도로부터 왔음을
우리는 확신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찾아온 이들은 유대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사방의 흩어졌던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치유받고자 찾아왔습니다. 남녀노소와 국적을 불문하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6:37)
+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난관에 부딪쳐 힘들고 낙심될 때 다시금 일어서게 하소서.
주님을 붙잡을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아멘.
안식일(주일)에 2016년 8월 27일 토요일 (누가 6:1~5)
오늘 본문은 그 유명한 '안식일논쟁'입니다.
사실 지금도 '주일이냐, 안식일이냐'하면서,
그날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기독교인들이 종종 있음을 봅니다.
안식일은 어떤 날입니까?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만물을 지으시고, 이렛날에 쉬시고 거룩한 날로 정하신 것에 그 기원이 있습니다.
(창2:2-3) 하나님은 안식일을 거룩한 날로 삼으셨습니다.(출20:8-11)
또,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께서는
안식일에 '누구나 반드시 안식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신5:12-15)
그런데 안식일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푹 쉬는 날'이라는 의미만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육체적·심리적으로는 일주일에 하루 '쉰다'는 가치가 상당히 큽니다.
여기에 더하여 신앙적으로 우리는
이스라엘과 우리 인생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기억하는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눅6:5)
초대교회의 여러 문서들을 종합해보면 주후 140년경에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안식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여겼습니다.
오늘 우리는 안식일을 풍부한 의미로 간직해야 하겠습니다.
[1]육체적·심리적 쉼이 있는 날,
[2]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억하며 찬양하는 날,
[3]그리고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신 날이 곧 안식일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1년에 무려 쉰두 번의 부활절을 맞이하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지요.
한 영혼 2016년 8월 31일 수요일 (누가 6~11) (CBS)
예수님의 사역은 '십자가'와 '부활'로 집약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예수님의 생애 끝에 놓이는 그 두 단어만 알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분이 공생애 3년 동안 구체적으로 행하신 일 하나하나가 무엇인지 그 깊은 의미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십자가와 부활로 귀결되는 예수님의 사랑을 더욱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한 영혼에 대한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시간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능력을 베풀기도 하시지만,
직접 당신의 손을 사용하셔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치유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먹은 것과,
손 마른 사람을 치료하신 현장을 목격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안식일을 범했다고 정죄하며, 복된 날인 안식일을 속박의 날로 바꾸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안식일에 사람들을 고치시면서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임을 선언하시며 그들에게 도전하셨습니다.
또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생명을 구하는 일이 사랑임을 가르치십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율법을 완성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삶 가운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 영혼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삶은 2천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분을 만난 사람들의 삶 속에 영향을 끼치고,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을 변함없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삶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주님의 뜻을 바르게 아는 2015년 4월 27일 월요일 (누가 6:1~11) (CBS)
오늘 본문을 보면,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를 지나면서 밀 이삭을 잘라먹은 일과
오른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신 일에 대하여, 사람들이 시비를 거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들의 말입니다.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2절)
이때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의 의미를 너무 기계적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지적하십니다. 다윗이 자기는 물론이거니와 부하들도 배가 고플 때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제사장 외에는 먹을 수 없는 떡을 먹었는데도 그것이 죄가 되지않았음을 그 사례로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고는 또 말씀하십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5절)
그리고,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신 일을 문제삼는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반문하십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9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뜻을 적절하게 새기는 일입니다.
글자와 낱말 뜻을 문법적으로 바르게 이해하기도 해야 하겠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상징적 의미나 은유적 의미를 적절히 새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천 년 전에 기록된 성경의 문자적 의미를
21세기의 상황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같은 신앙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도하신 후 사도들을 택하신 2015년 4월 28일 화요일 (누가 6:12~19) (CBS)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있어,
혼자 하시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선택하셔서 그들과 함께 일하셨습니다.
이는,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인간적 자격이나 사회적 조건을 따지지 않으셨고,
또 가족배경이나 소유의 많고적음도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당시로서는 아주 평범하거나 심지어 별볼일없는 사람들 가운데서 제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와 같이 제자들을 선택하시기 전에 하셨던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12~13절)
예수님은 무슨 일을 하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찾으며 하나님 뜻대로 순종하고자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시작하기 전에 기도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본을 따르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간적인 생각이나 지식이나 경험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구한 다음에는 그 뜻에 순종하고자 노력해야합니다.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참 성도의 삶입니다.
1.5.3 묵상질문
부활하신 예수님이 디베랴 바닷가에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잡았던 물고기의 수는 153마리였습니다 (요21:1-11).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인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풍성한 153의 열매를 얻게될 것입니다
1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5 종교지도자들의 반응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일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1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하셨으며,
또 예수님께서 기도하러 산으로 가신 것은 무엇을 위함이었나요?
5 나의 주일성수는 사람을 살리는 일(복음을 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나요?
기도
우리가 주일의 참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참된 예배를 드리게 해주십시오.
우리의 마음속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이 회복되게 하시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새 시대 새 일꾼으로 세움 받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살아가는 삶의 목적을 갖게 하시고,
이를 위해 늘 기도하는 자가 될 수 있게 해주세요.
+ 주님, 우리도 범사에 주님께 기도하며 시작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아멘.
+ 주님, 말씀의 진의를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이여 인도하소서. 아멘.
+ 인생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오늘 기억하게 하소서. 아멘.
+ 한 영혼을 아낌없이 사랑하신 예수님의 삶을 따라
오늘 여기에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사랑의 실천가로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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