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들의 친구가 되신 예수님 2014년 6월 19일 목요일
누가복음 5:27~5:39
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33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
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성경 길라잡이
레위라 하는 세리(27절):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마태는 레위로 기록되어있다. 당시 사람들은 대부분 이름이 서너 개가 있었다. 즉 유대식 이름과 로마식 이름, 때로 헬라식 이름이 따로 있었다. 레위는 유대식 이름이었고, 마태는 로마식 이름이었다. 레위는 해당 지역의 세리로서 로마를 위해 일한 유대인이었다(LAB인용).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30절):
예수님께서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을
‘비방했다’는 말로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비방’이란 일반적으로 자기들에게 적절한 존중함을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나
자신들이 설정한 기준에서 어긋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그들의 사람됨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보이는 반응을 의미한다.
즉 그 마음의 중심에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이 자라잡고 있을 때 나타나는 반응인 것이다.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30절):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동질성을 표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당시 유대 사회는 세리를 로마를 위해 일하는 자로서, 이방인처럼 취급했다. 이들과 가까이한다는 것은 부정한 일로 여겼으며, 존경받는 랍비들이 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였다.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37절): 포도주를 담는 부대는 작은 짐승의 가죽을 여러 장 꿰매어서 만들었는데, 낡은 부대는 새 포도주가 발효되면서 커지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버릴 수 있었다.
죄인들의 친구가 되신 예수님 2014년 6월 19일 목요일
예수님께서는 레위가 세리, 즉 죄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전혀 의식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가 죄인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인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죄인을 정죄하고 멀리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불러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사랑하셨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기꺼이 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빈부격차가 발생하고 심화되면 부자들은 부자들끼리, 가난한 자들은 자난한 자들끼리 모여 살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현상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부유한 아파트촌에는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어서 생활에 아무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은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자라서 대학에 갈 때까지 가난한 사람들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세상은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충만한 곳일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여전히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해 범죄자가 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높은 바리케이트에 둘러싸여 가난으로부터 격리된 채 부촌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친구로 사귈 기회가 없습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이런 삶을 선물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영광과 존귀의 독생자가 낮고 천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병든 자들과 가난한 자들과 죄인들의 친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선한 분이십니다.
이 땅의 교회가 지향하는 삶은 어떤 것입니까?
성공한 자들의 친구로 남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낮은 자들의 친구가 되기를 원합니까?
인자! 새로운 시대의 키워드 2014년 6월 19일 목요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죄로 가득한 멸망의 세상을 회복하고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늘 죄인과 함께 하셨습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구원이 필요한 죄인들의 곁에 머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 역시 주님의 뜻과 행동을 따랐기 때문에
요한의 제자들과 비교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알 턱이 없는 바리새인들로서는 죄인과 함께 하는 예수님이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을 겁니다. 오직 사단이 주는 질투와 시기심만으로 가득한 그들의 마음으로는
도저히 예수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면
당연히 구원이 필요한 곳을 찾아가야 하고 그들과 함께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길 바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역들을
‘낡은 옷을 붙이지 않는 새로운 옷’으로 ‘낡은 가죽부대에 넣을 수 없는 새 포도주’로 비유하셨던 겁니다.
예수님은 율법에 매여 사단에 종노릇하던 죄인들에게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기 위해 오신 메시아입니다.
따라서 새 옷과 새 포도주처럼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모든 새로운 것을 누리고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믿음으로 누리는 천국의 은혜를 다른 친구들과도 나눌 수 있어야겠습니다.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2015년 4월 25일 토요일 (누가 5:27~38) (CBS)
사람들은 자기자신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관대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필요 이상으로 엄격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과대평가해서 스스로는 의롭다 자부하고,
타인들에 대해서는 엄격한 율법의 잣대로 정죄하며 가혹하게 판단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께서 세관에 앉아있는 레위(마태)를 제자로 부르시고,
그의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셨다는 내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비방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앞잡이이며 백성들을 착취하는 세리들을 죄인으로 판단하여 상종치 않는 데 반하여, 예수께서 그 '세리'를 제자로 부르시고,
함께 식사를 하신 것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눈에 거슬렸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32절)
이 말씀은, 스스로 온전하다고 병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은
의원되시는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죄인이라고 여기며 회개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물리치시고,
자기자신의 무가치함속에서 구원의 필요를 깊이 느끼는 자들을 구원의 자리로 초대하십니다.
자기 '만'을 의롭게 여기면 타인을 죄인취급하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회개해야 할 죄인이며
하나님 앞에 겸허히 그리고 나란히 설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알아야겠습니다.
+ 우리도 연약한 죄인임을 알고 타인을 비방치 않게 하소서. 아멘.
새 부대 (2019년 1월 16일 수요일)
"너희는 혼인잔치의 손님들을, 신랑이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 금식하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날에는 그들이 금식할 것이다."(눅5:34-35, 새번역)
예수님은 지금 주님과 함께하며 살아가는 이날이
바로 하나님나라의 기쁨을 나누고 누리는 복된 잔칫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나서, 새 포도주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묵은 포도주를 마신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눅5:39, 새번역)
예수님과 관계맺음을 통해서 시작된 하나님나라의 기쁨을 깨닫지 못하고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완고한 마음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입으로는 성경말씀을 인용하고
또 그 말씀의 내용과 의미가 무엇인지도 말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 말씀으로 인하여 자기자신에게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안타까워하십니다.
이런 사람들은 새 옷에서 한 조각을 떼어내서 낡은 옷에 덧댄 사람과 같고,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사람과 같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지요?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그 말씀에 힘입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내 생각과 주장을 위해서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는 사람인가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처럼,(눅5:38, 새번역)
오늘 우리의 삶이 제대로 진정으로 새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어제의 낡은 부대로는 오늘의 새 포도주(은총)를 담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새로워지도록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여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주님, 우리를 도우셔서 주님의 말씀을 가득 담을 수 있는 새 부대가 되게 하소서. 아멘.
나를 따르라 (2019년 2월 6일 수요일)
세리는 로마 정부의 세금징수업무를 청부맡은 유대인들로서,
실제로 정부가 부과한 금액 이상을 거두어
차액으로 자기재산을 늘리는 것을 통상적 관례로 삼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산중(山中)에는 사나운 사자가 있고 거리에는 잔인한 세리가 있다"는 유대 격언이 있을 정도로
세리들은 당대의 사람들에게 미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세리들을 ‘인간취급’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랍비들은 지나가다 세리를 만나면 절대로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그냥 피해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나가시다가 일부러 세리를 바라보셨습니다.
사람들은 세리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았지만
예수님은 세리 레위를 보실 때 그 안에 있는 위대한 전도자 레위를 알아보셨습니다.
"그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눅5:27-28)
하나님의 눈과 사람의 눈은 다릅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외모를 보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들은 현재의 모습을 볼 것이나 하나님은 미래의 가능성을 보십니다.
사람들은 단점을 보고 있지만 하나님은 장점을 보고 계십니다.
레위는 예수님의 부름을 받자마자 즉각 순종했습니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런 다음 레위는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눅5:29)
우리는 레위를 통해서 온전한 순종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온전한 순종은 즉각적인 ‘예’이며, 즉각적인 행위입니다.
+ 예수님의 부름에 순종하여 예수님의 제자로 살게 하소서. 아멘.
1.5.3 묵상질문
1 당시 유대 사회에서 세리는 죄인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5 예수님께서 레위의 집에서 벌어진 잔치에 함께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레위와 함께 음식을 드신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1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무엇이며, 새 옷, 새 포도주, 새 부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5 지금 구원이 필요한 사람이나 장소는 어디인가요?
나는 그들 또는 그곳에서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길 원하나요?
기도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감사하며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우리에게 베푸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이 땅의 가난한 자들의 친구로 살아가는 교회가 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제자로 불러주신 것에 감사하며
그 부름에 합당한 제자가 되기 위해 늘 겸손한 자세로 섬기며 헌신하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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