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 가득한 종교에서 벗어나십시오 2014년 6월 16일 월요일
누가복음 4:31~4:44
31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32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33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34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3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36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37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38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44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33절): 안식일과 회당은 유대교의 대표적 형식이다.
안식일에 대한 다양한 규정은 유대인의 삶 전체를 대변했고,
회당은 포로 귀환 이후 유대교 신앙의 중심이었다.
그런 안식일 회당의 모임에서 귀신 들린 사람이 방치되고 있었다.
안식일이지만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회당에서 말씀이 선포되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종교적 형식은 가득하지만, 아무런 권위가 없는 유대교의 현주소를 고발하고 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34절):
귀신이 예수님을 인정하는 말로서, 하나님에 의해 구별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당시 이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선지자를 가리킬 때 쓰는 표현이었는데,
지금 귀신은 예수님께서 이 땅의 메시아이심을 고백하는 말로 이 말을 사용했다.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36절):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꾸짖고, 열병을 꾸짖으심으로써 그분에게 있는 특별한 권위와 능력을 보이셨다.
그 권위와 능력이 허울뿐인 안식일을 참된 안식으로 가득 채웠다.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40절): 유대 세계에서는 해가 질 때 하루가 끝나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안식일이 끝났으므로, 낮 동안 눈치를 보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다.
여러 사람들에게서 귀신이 나가며 … 그리스도인줄 앎이라(41절):
유대교의 전승에 따르면, 귀신의 능력은 메시아 시대에 깨뜨려지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것은 그가 메시아이심을 증거하는 것이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의 궁극적 목적은 치유가 아니라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위선 가득한 종교에서 벗어나십시오 2014년 6월 16일 월요일
유대인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안식일, 가장 중요한 장소인 회당에 귀신 들린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종교적 형식은 넘쳐흐르지만, 허울뿐인 형식은 그 상황에서 무력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상황에 개입해 말씀하심으로써 안식일에 안식이 이루어졌습니다.
참된 권위, 즉 참된 힘이 없는 종교적 형식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은 힘은 보이는 삶의 형식을 만듭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형식은 확대되고 비대해지지만, 형식을 만들었던 힘은 쉽게 잊힙니다.
여기에서 종교적 위선이라는 독버섯이 자랍니다.
주일이라는 시간과 교회라는 모이는 공간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장 잘 대변하는 형식입니다.
주일성수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그 시간과 장소를 오랫동안 지켰습니다.
하지만 그 하루를 주님의 날로 지키며 온종일 그 공간에 머물러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허함을 느끼고 있다면,
웃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웃음으로 가장하며 그 하루를 보냈다면,
수많은 말을 주고받았지만 가슴에 남은 것이 단 하나도 없다면,
우리는 그저 종교적 형식을 소비했을 뿐입니다.
그저 교회를 옮겨 형식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주일과 교회라는 형식을 낳은 근원적 힘을 먼저 회복해야 합니다.
창조의 생명과 구원의 자유가 우리가 누리는 형식의 근원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이제 공허한 종교생활은 그만두고, 예수님 앞에 엎드려 생명과 자유를 누립시다.
그 순간 회복된 주일의 삶으로 주중을 변화시키며, 교회의 삶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근원 없는 위선적인 종교는 세상의 힘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2014년 6월 16일 월요일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세 가지 사건을 행하셨습니다.
첫째는 회당에서 귀신을 쫓아내신 것이고,
둘째는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것이며,
마지막 셋째는 많은 사람들을 고치신 것입니다.
그런데 날이 밝자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적한 곳으로 가십니다.
사람들은 이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자 다른 곳으로 떠나지 못하시도록 만류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자신은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길을 떠나십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그 동네에 계속 머무르셨다면 예수님은 인기도 오르고 좋은 대접도 받지 않으셨을까요?
고향에선 그렇게 푸대접을 받았지만 여기서는 이토록 풍성한 대접을 받는데,
이 동네에 계속 머무르고 싶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다시 다른 동네를 향해 길을 떠나십니다.
예수님께는 해야 할 일이 있고 보내심을 받은 이유, 즉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꿈’이라 하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사명’이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꿈’을 찾아 가는 자들이 아니라 ‘사명’을 찾아 가는 자들입니다.
즉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주어졌을 때,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을 먼저 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권위가 있다 2016년 6월 4일 토요일 (누가 4:31~37)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동네에 오셔서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지니는 권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의 신분에서 나오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신분이 그 말씀에 권위를 부여해줍니다. 흔히 대통령의 말에는 권위가 있는데 그것은 대통령이라는 신분에서 나오는 권위이기 때문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위와 더불어 '능력'이 있었습니다.(눅4:36)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위와 능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없고, 복종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지상적 삶은 출생으로부터 부활까지 철저하게 '성령충만'의 관점에서 해석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성령충만의 삶을 살 때, 성령은 그의 말에 권위와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에서 오는 권위이고, 성령충만에서 비롯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된 우리가 이런 권위와 능력을 가지고 이 땅에서 승리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성령충만으로 승리하기를 기원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러니 똑같은 말이라 할지라도 신분이 미천한 사람이 하게 되면, 그 말에는 권위가 없습니다.
능력(dynamis)은 실제적인 힘입니다. 저항할 수 없는 능력(power)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이런 힘과 권위를 주시는 분은 성령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2019년 2월 2일 토요일) (누가 4:42~44)
교회공동체의 존재이유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한데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나아가 각자 삶의 자리에서 복음전파의 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바로 전도에 있으며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눅4:43)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말씀의 중심주제가 바로 하나님나라입니다.(눅8:1)
제자들을 부르신 후에도 그들을 양육하고 훈련시킨 후 복음을 전하도록 파송했습니다.(마28:20)
파송 받은 제자들은 힘껏 복음을 전파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생명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는 말씀대로
천하의 모든 것을 다 얻어도 목숨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눅9:25)
그런데 육신의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이 바로 영적인 생명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잃어버린 영적인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복음은 살리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복음은 구원을 얻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여야 하겠습니다.
복음을 전하여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살려야 하겠습니다.
아직 우리 가족 중에 그리고 가까운 이웃 안에 예수님을 알지 못하여
영적으로 죽어가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복음이신 예수님입니다.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이십니다.(행4:12)
+ 주님, 복음을 전함으로써,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게 하소서.
아멘.
1 유대인의 안식일과 회당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5 무력한 상황을 변화시킨 힘은 무엇입니까?
1 회당에도 귀신 들린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요?
5 나의 ‘사명’과 ‘꿈’은 무엇인가요? 둘 중에 어느 길을 추구하며 가고 있나요?
우리의 위선을 정직하게 직면하고 돌이키게 해주십시오.
신앙의 근원을 회복함으로 힘 있는 신앙생활을 누리게 해주십시오.
매일 주님 앞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게 하시고 인기가 아닌 사명을 따라 살게 해주세요.
성령께서 주시는 권위와 능력으로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그 권위와 능력으로 이 땅에서 승리하며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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