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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예수님께 상처 받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누가 4:14~30) (CBS)

colorprom 2017. 4. 7. 15:42

예수님께 상처 받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2014년 6월 14일 토요일


누가복음 4:14~4:30           


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15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24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30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17절):

하나님나라에 대한 유대인과 예수님의 생각에 큰 차이가 있다.

예수님께서 이사야서 61장 1, 2절을 인용하시면서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이라는 문구를 빼신 이유이기도 하다.

구약에서는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초림과 심판을 위한 재림이라는 구도가 명확하지 않았기에,

종종 두 사건을 동시적인 것으로 묘사한다.

그 결과 유대인들은 하나님나라가 오면 즉각적으로 의인인 자신들은 구원을 받고,

죄인인 이방인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실상은 똑같은 죄인인 유대인들과, 그들이 죄인이라 여기는 이방인들까지

‘주의 은혜의 해’에 모두 포함시키셨다.


주의 성령이 …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18~19절):

여기서 ‘은혜의 해’는 문자적으로 노예가 자유를 얻고 빚진 자의 빚이 탕감되는 구약의 희년을 의미한다.

하지만 의미상 이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시대를, 특히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기간을 의미한다.


의사야 너 자신을 고쳐라하는 …(23절): ‘자신을 먼저 돌아본 후에 타인을 도우라’라는 의미로

예수님께서 다른 곳에서 행하신 이적들을 자기 고향에서 먼저 행하셔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28절):

자신들의 기대와 다른 예수님의 가르침이 유대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끝내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예수님께 상처 받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2014년 6월 14일 토요일


해방과 기쁨의 희년을 바라보았던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양상은 유대인들의 신앙을 뒤집어놓는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충격을 감내하고서라도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상처 받기가 두려워 끝까지 자신들의 생각을 고수했습니다.

그 결과 스스로 희년에서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현대인들은 ‘상처’를 주지 않고, ‘상처’를 받지도 않는 관계를 바른 관계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관계는 예의바르고, 상대방의 사생활을 잘 존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서로에게 아무런 상처를 입히는 않는 관계는, 동시에 아무런 진전도 없는 관계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 자리에 머물러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점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 앞에 정직하게 서면 우리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너무 명백한 것이기에, 우리가 받는 상처와 충격도 그만큼 큽니다.

하지만 그 상처를 받아들이는 이들은 상처의 깊이만큼 생명의 높이를 경험합니다.

반대로 예수님께 아무런 상처를 받지 않는 자는 결국 죽음에 이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상처 받기를 두려워하지 맙시다.


죽이려는 상처가 아닌 살리려는 상처는 지체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아프더라고 정직하게 서로를 드러내는 관계입니다.

상처 받기가 두려워 교제를 피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상처 뒤에 있는 생명을 믿기에, 상처 받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정직한 교제 속에 머물러있읍시다.


편견의 위험성 2014년 6월 14일 토요일


예수님께서는 다른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을 하시기 전에

먼저 자신의 고향이던 나사렛에서 복음을 전하십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이사야의 글을 들어 풀어서 설명하실 때

사람들이 모두 이를 놀랍게 여기며 은혜로운 말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는 못합니다.

그 이유는 어려서부터 예수님을 목수 요셉의 아들로만 생각하는 편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보고 그분을 절벽으로 데려가 떨어뜨리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 고정적인 편견을 갖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든 그리고 언제든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약한 사람이라고 해서 영원히 약하게 살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반대로 지금 강하다고 해서 언제나 강하게 살 것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제까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모습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모습 또한 어제가 아니라 지금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편견의 눈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루어지는 말씀 2015년 4월 20일 월요일


안타깝게도 한국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판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빛과 소금노릇을 하며 이 세상의 디딤돌이 되기는커녕 도리어 걸림돌로 여겨짐은,

교회가 예수님의 길에서 벗어나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구원의 방주를 자처했지만 작년 이맘때 세월호 참사(4·16)에서 무기력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자기정체성을 우선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일부러' 이사야서의 말씀을 찾아, 이 땅에 오신 의도를 밝히십니다.
가난하고 고통당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해방하시려 강림하셨다고 말씀하시고는

"이 성경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셨습니다.(21절, 새번역)
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원약속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는 주님의 선언은,

"너희" 즉 교회가 이 사명을 구현해나가는 길에 서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은 감탄하고 놀라면서도 예수님을 거부합니다.

선입견, 질투심, 불신이 그들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심지어 살인까지 도모합니다.(29절)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처럼 오해받고 배척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과 불의로 인해 고통당하는 이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생명과 평화, 정의를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혹 오해받고 배척당하더라도 열심히 일합시다. 결단합시다.


+ 십자가의 구원과 해방의 말씀이 우리를 통하여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예수님이 오신 이유 (2018년 11월 14일 수요일)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고향인 나사렛 회당에서 하신 첫 설교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이미 사방에 퍼졌고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기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이 자라나신 고향 갈릴리 나사렛에 돌아오신 어느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말씀을 전하게 되셨습니다.

예배 중 예언서를 읽을 차례가 되었을 때에 이사야서를 받아드신 예수님께서는

그중 61장 1-2절 말씀을 찾아 읽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4:18-19)


읽기를 마치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일제히 주목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습니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4:21)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야이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유일하신 구원자라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예수님에 의해 선포된 은혜의 해가 오늘 우리의 것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으로 영적 부흥을 이루는 은혜의 해, 은혜의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 주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은혜를 누리며 살게 하소서. 아멘.





1 이사야 61장 1, 2절과 누가복음 4장 18, 19절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5 유대인들이 왜 화를 내며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까?


1 예수님께서 고향사람들에게 홀대를 받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5 작년의 나와 비교했을 때,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요?

예수님 안에서 성취된 ‘주의 은혜의 해’을 깊이 누리게 해주십시오.
상처 뒤에 있는 생명을 믿으며, 정직한 사귐에 머물러있게 해주십시오.
사람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오직 주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평가할 수 있는 시각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