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8]진정한 권위는 인격에서 흘러나옵니다 (누가 2:41~52) (CBS)

colorprom 2017. 4. 7. 14:34

진정한 권위는 인격에서 흘러나옵니다 2014년 6월 10일 화요일


누가복음 2:41~2:52           


41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 갔다가

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48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께서 열두 살이 될 때에(42절): 누가는 4복음서 중 유일하게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는 누가가 예수님의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그리는데도 소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한편,

어릴 적부터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메시아임을 자각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47절):

유대 교사들은 어린 예수님 안에 있는 지혜와 직면했을 때 두려워할 정도로 깜짝 놀랐다.

범상치 않은 이 지혜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말미암은 지혜였다.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49절):

일반적인 유대인들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아버지’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열두 살의 예수님께서 이미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불렀다.

예수님께서 인식하신 자기 정체성을 대변한다.


순종하여 받드시더라(51절):

출생부터 삼십 세쯤 공적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까지 예수님의 다른 행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순종하여 받드시더라’라는 선언을 통해 삼십 년에 걸친 예수님의 개인적 생애를 짐작할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또한 육체적 부모의 아들로서 부모에게 순종을 다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말씀하실 모든 것을 먼저 묵묵하게 이행하며 사셨다.

이것을 통해 예수님의 어린 시절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 삶을 사셨음을 알 수 있다.

말씀하시기 위해 사셨고, 말씀하신 대로 사셨다.



진정한 권위는 인격에서 흘러나옵니다 2014년 6월 10일 화요일


예수님의 탄생은 세상을 뒤흔든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장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도리어 예수님께서는 삼십 년간 역사의 그늘 속에 숨어계셨습니다.

도대체 그 삼십 년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 삼십 년은 삼 년에 걸친 공적 생애의 밑거름이었습니다.

말씀하시기 위해 묵묵히 삼십 년을 사셨습니다.

말씀과 삶이 분리되지 않았던 신실함이 예수님의 권위였습니다.

이 시대는 ‘전문가’를 존중하고 동경합니다. 그래서 모두 나름대로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는 말 그대로 어떤 분야에서 큰 권위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진정한 영향을 미치는 진정한 권위는,

외적인 자격이 아닌 내면의 인격에서 흘러나옵니다.


문제는 예수님의 30 년에 걸친 삶과 3 년에 걸친 공적 사역이 보여주듯,

인격에서 흘러나오는 권위가 형성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호흡이 가쁜 세상이 이런 방법을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보다 빠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바로 일정한 외적 자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보다 나은 성적과 다양한 자격증일 것이며,

직장인들에게는 높은 지위와 연봉일 것입니다.


하지만 내면의 신실함을 갖추지 못한 외적 권위는 사람을 섬기기보다 지배하려 듭니다.

또한 내면의 위선이 드러날 때 허물어집니다.


예수님께는 세상에 드러낼 만한 외적인 자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무시당할 조건만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는 사람에게 큰 영향을 주는 놀라운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분의 길을 따라 진정한 권위를 경험하고 싶다면, 부실한 내면을 어설픈 외적 자격으로 덮지 마십시오.

긴 호흡으로 일상을 신실하게 살아갑시다.


예수님처럼 건강하게 2014년 6월 10일 화요일


본문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으로서, 아름다운 인간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셨지만 하나님과 똑같은 대우를 받지 않으시고

오히려 인간의 몸을 입어 자신을 낮추시고 겸손히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특권을 누리기는커녕 오히려 육신의 아들로서 겸손히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더불어 누가는 예수님께서 육체뿐 아니라 정신과 영적으로도 건강하게 자라셨다고 기록합니다.

이러한 모습에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들 또한 기뻐했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우리들도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강해져야 하며,

정신적으로 지혜가 충만하며, 영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늘 내 위에 머물기를 기도하고 힘써야 합니다.


이 가운데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을 받기보다 오히려 걱정을 끼치게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인정받는 것에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이런 욕구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인정 자체가 목적이 될 경우

늘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살게 됩니다.

때문에 우리는 ‘인정’보다 ‘건강’과 ‘건전’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건강한 삶만이

결국 하나님과 주위 사람들의 ‘인정’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잃지 맙시다 (2019년 1월 19일 토요일) (누가 2:39~52)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열두 살 때 일어난 일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아들 예수를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린 원인은 무엇이며, 다시 예수님을 찾기까지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그리고 그 일련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무슨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


먼저 요셉마리아가 왜 아들을 잃어버렸는지 생각해봅시다.

성경에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혹시 유월절 축제로 인한 분주함 때문에 아들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을까요?

또는 신기한 구경거리와 세상재미에 빠져서 아들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가 어딘가 있겠지, 어딘가에서 따라오겠지’하는 방심과 무관심 때문에

어린 아들을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세상적인 분주함과 세상적인 쾌락과 재미에 빠지면 예수님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저 막연히 예수님이 늘 함께해주시겠지 하는 무관심과 나태한 방심이 있다면

역시 예수님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잃어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가던 길을 멈추고 돌이켜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족들이 길을 돌이켰던 것처럼 말입니다.

무조건 빨리 간다고 능사가 아닙니다.

진정 예수님을 찾기 원한다면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방향을 성전으로 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부모에게 "내가 내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을 만나려면 성전으로 향해야 하며, 말씀 안에 거해야 합니다.

오늘 진지하게 자기자신을 돌아봅시다.

혹시 지금 예수님을 잃은 상태는 아닌지 살펴봅시다.


+ 주여,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하소서. 아멘.


믿음의 부모라는 것 (2019년 6월 15일 토요일)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최대명절인 유월절예루살렘에 갔을 때 있었던 일화를 기록한 말씀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이 기록되어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합니다.

본문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가시더라."(눅2:52)


믿음의 부모들은 아마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 언제나 이 말씀을 염두에 두고 소망할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들을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가"는 사람으로 키우려면

우리 기독교가정의 부모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부모 스스로 지혜로운 자가 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며,(잠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복"임을 철저히 믿고,(잠28:14) 여호와 하나님을 가정의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람이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음으로써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할 것입니다.(갈5:22-23)


그런데, 따지고 보면 사람들은 돈 많은 사람, 공부 많이 한 사람, 잘생긴 사람을 좋아하고,

그런 사람들을 더 사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두루 사랑스러워가는 것에 대하여

막연하게 '좋은 게 다 좋은 거다'라는 식으로 간단히 생각하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럽게 양육된 사무엘,(삼상2:26)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구체적으로 깊이 묵상하여야만 하겠습니다.


+ 우리 자녀들을 지혜와 키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는 자녀로 양육하게 해주소서. 아멘.




1 예수님께서 누리신 독특한 자기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5 ‘순종하여 받드시더라’가 대변하는 예수님의 삶은 무엇입니까?


1 잃어버린 줄 알았다가 다시 찾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말을 마리아가 마음에 두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5 최근에 나를 가장 기분 좋게 해준 나에 대한 평가는 무엇인가요?


말하기 위해 살고, 말한 대로 사는 신실함이 있게 해주십시오.
공동체마다 인격에서 흘러나오는 진정한 권위가 회복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더 강해지고 지혜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들 보기에 아름다운 사람으로 성장해 가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