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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하나님의 역사 속에 우리를 던집시다 (누가 1:67~80) (CBS)

colorprom 2017. 4. 6. 17:22

하나님의 역사 속에 우리를 던집시다 2014년 6월 6일 금요일


누가복음 1:67~1:80           


67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72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73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74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76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78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67절):

성경이 말하는 예언은 우선적으로 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밝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예언에는 과거에 이미 주신 말씀에 대한 기억과 현재 상황에 대한 통찰이 동반된다.

혹 미래를 말하는 경우라도,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구원 역사의 넓은 맥락과 관계된 것이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68절):

사가랴는 요한의 출생과 마리아의 잉태라는 개인적 사건 속에서 위대한 구원 역사를 보았다.

이런 깨달음은 성령님께서 충만하셔서 교제하게 하시는 가운데 얻어졌다.

사가랴의 예언은 하나님의 구원(69, 71, 74, 77절)에 대한 것으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73절)으로부터 시작하여 다윗(69절), 말라기(78절)까지 관통하는

위대한 역사에 대한 고백이다.


그 백성을 돌아보시고 속량하시며(68절):

사가랴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통해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것을 찬양한다. 속량이란 포로나 노예의 값을 치르고 그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돌보사’는 ‘오셨다’, ‘방문하였다’라는 뜻인데,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담판을 짓기 위해 오실 때 사용되었다.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여 오시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속량하다’는 ‘구속을 성취하셨다’는 뜻이며,

‘속량’은 돈을 지불하고 어떤 물건이나 사람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 가운데 오시는 것을 말한다.


구원의 뿔(69절): 뿔은 짐승의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을 의미한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73절):

이 맹세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 세상에 복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이다(창 26장 16~18절).


이 아이여 …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76절):

고대 동방에서는 왕이 행차하기 전에 병사들이 앞서 가서 끊어진 길을 잇고 평탄케 하는 작업을 했다.

사가랴는 자신의 아들이 뒤에 오실 메시아를 위해 그 길을 준비하는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할 것을 내다보며

노래하는 것이다. 실제로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다.


빈 들에 있으니라(80절): 빈 들은 새로운 출애굽의 장소, 곧 메시아가 오시는 곳이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 우리를 던집시다 2014년 6월 6일 금요일


사가랴는 자신의 가정과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을 그저 개인의 문제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령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구약에 대한 통찰 속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원수와 죄로부터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 역사의 물줄기를 보았기에 사가랴는 자신과 아들의 삶을 그 역사 속에 던졌습니다.

지금도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밝게 비추십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교훈처럼 거짓된 것이 득세하니 바른 것이 위축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예언’입니다.


성령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욕망의 신앙이 결합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현재를 밝히는 예언을

고작 개인의 미래를 점치는 무속신앙으로 변질시켰습니다.

욕망으로 변질된 예언은 우리가 정직하게 보아야 하는 것은 숨기고 보고 싶은 망상만을 자극합니다.

그 결과 도도하게 흘러가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이에 반해 참된 예언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밝게 드러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역사에 참여하도록 요청합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을

‘원수와 죄로부터의 구원’과 ‘성결과 의로 주를 섬김’이라는 하나님의 역사 앞에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가 먹거리는 이에 부합합니까? 우리가 입는 옷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거주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전공과 진로를 모색하는 고민의 방향은 또한 무엇입니까?

우리의 일상적 선택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확인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의 시선을 혼란케 함으로 이것들을 가리려 할 것입니다.

말씀 앞에 엎드려 성령의 조명을 구합시다.


아버지의 바람 2014년 6월 6일 금요일


사가랴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의 아들의 삶을 예언하며 노래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노래는 아들을 위한 노래이기보다 그 뒤에 오실 메시아를 위한 노래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이 뒤에 오실 메시아를 위하여 길을 닦고 잘 섬기기를 바란다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아버지들이 아들을 향해 소원을 가질 때면,

늘 다른 이들이 아들을 섬기길 원하지 거꾸로 아들이 다른 사람을 섬기기를 원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가랴는 구약의 예언을 들어 그의 아들이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삶을 살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에도 부모님께서 우리를 향해 바라신 기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부모님은 지혜를, 어떤 부모님은 믿음을, 어떤 부모님은 은혜를 바라시어

리가 태어났을 때 그 바람에 따라 우리의 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우리들 이름의 뜻에는 우리를 향한 부모님의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못지않게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분의 바람은 우리가 이 땅에서 요한과 같이 선지자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지만 그들과 똑같은 삶이 아니라 구별된 삶으로 믿음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1 사가랴가 성령님으로 충만한 가운데 한 예언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5 사가랴의 예언을 통해 발견하는 역사의 흐름이 무엇입니까?


1 사가랴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신 이유를 어떻게 이해했나요?

5 나는 어떤 방법으로 선지자적인 삶을 살며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성령이여!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밝게 비추어 주옵소서.
하나님이 보이신 구원의 역사에 기쁨으로 참여하게 하옵소서.

언제나 성령에 충만한 사람으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선지자적인 삶을 살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