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순종이 하나님을 드러냅니다 2014년 6월 5일 목요일
누가복음 1:57~1:66
57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58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 하더라
59 팔 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
60 그 어머니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
61 그들이 이르되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
62 그의 아버지께 몸짓하여 무엇으로 이름을 지으려 하는가 물으니
63 저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을 요한이라 쓰매 다 놀랍게 여기더라
64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65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골에 두루 퍼지매
66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이르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 하니
이는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심이러라
주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58절):
자녀가 없는 가정에서 아들이 태어난 것은 축하할 일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일이 하나님의 긍휼에서 말미암았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 안에서 모두가 함께 즐거워할 수 있게 되었다.
팔일이 되매 … 할례하러 … 이름을 사가랴라(59절): 할례는 생후 8일된 남자아이에게 행하는 의식으로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임을 증명하는 표시였다.
보통은 할례를 행하며 아이의 이름을 짓게 되는데, 항렬을 따라 이름을 짓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었으므로
부친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로 짓고자 한 것이었다.
팔 일이 되어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59절): 출생 후 팔일에 할례를 시행하는 것은 율법의 명령(레 12: 3)이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아이의 할례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세 가지 독특한 일이 있었다.
첫째, 보통 아이의 이름은 출생 직후에 지으나, 팔일 째가 되도록 아이의 이름을 짓지 않았다.
둘째, 이름을 짓더라도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짓는데, ‘요한’이라는 생소한 이름을 지었다.
셋째, 이 모든 일의 결과로 아이의 아버지인 사가랴가 다시 말을 하 수 있게 되었다.
근처에 사는 모든 자가 이 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두려워했다.
이 아이가 장차 어찌될까 하니(66절):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까 하는 것으로
아버지의 입이 열리는 사건을 경험한 후 하나님의 분명한 인도하심이 있다고
주위 사람들이 인정하는 표현이다.
우리의 순종이 하나님을 드러냅니다 2014년 6월 5일 목요일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이웃들은 무엇인가 범상치 않은 사건이 그들 가운데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자녀가 없는 가정에서 아들이 태어나고,
기존 관습을 어기고 아이의 이름(요한의 뜻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이 지어지며,
벙어리가 되었던 사가랴의 입에서 찬송을 들었습니다.
관행을 거스르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 드러나셨습니다.
세상은 자신을 정직하게 드러내어 사귀는 것을 거부합니다. 세상이 불안과 결핍에 허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세상은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사적인 일’이라는 핑계를 대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당신은 내 살 중의 살이요, 내 뼈 중의 뼈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우리 모두는 보이는 끈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있습니다. 그런 삶 속에서 완전히 ‘사적’인 것은 없습니다. 나의 결정과 판단이 언제나 다른 사람의 결정과 판단에 영향을 미치며,
나의 정서적 상황이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제 우리는 지금 시대가 만들어낸 ‘개인의 문제’라는 거짓 핑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의 삶이 지체들에게 하나님을 드러내는 고백이 됩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경험했던 사건처럼, 우리에게도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일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실패처럼 보이는 슬픈 일이든 성공처럼 보이는 즐거운 일이든 간에,
이 모든 것은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입니다.
나를 넘어 우리를 경험할 때,
지체의 입술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체의 순종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 2014년 6월 5일 목요일
일반적으로 자녀의 이름에는 부모의 소망과 꿈이 담기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의 경우도 제사장의 이름을 따라 전통적으로 제사장을 계승시키기 위한 소망을 가지고
‘사가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생각과 달리 하나님의 계획은 따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짓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에 부모였던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벙어리가 되었던 사가랴의 말문이 열리게 됩니다.
한편 요한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주셨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으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의 삶과 인생은
하나님께서 은혜의 선물로 주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힘든 날도 있고 기쁜 날도 있겠지만,
그 모든 형편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기에 감사도 하나님을 향한 것이 되고,
불평도 하나님을 향한 것이 됩니다.
끝까지 순종함으로 마지막에는 찬송과 감사를 드렸던 믿음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승리합시다.
복의 실체 2015년 12월 24일 목요일
드디어 스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예언된 요한이 탄생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에 대한 예언 또한 확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가랴는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예수그리스도와 세례요한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되었던 하나님의 복,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입니다.
그 언약의 실체는 바로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단과 어둠과 죽음의 세력에게서 우리를 건지시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예언되고 계획되었던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실체가
드디어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가 온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것이고, 이 구원의 실체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입니다.
구원에 대한 지식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사실을 아는
이론적이거나 인지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또한 이러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인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참된 구원의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그 놀라운 사건을 받아들이는 경험입니다.
그 경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게 되는 엄청난 사건입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실체가 이 땅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을 보는 놀라운 체험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을 지금은 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구원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오늘도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준비는 경건한 마음과 자세로,
그리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사역을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자기 백성을 돌보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 (2015년 12월 24일 목요일)
천사가 예언한 대로 엘리사벳은 잉태하였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녀가 아들을 낳을 때에 그녀의 이웃과 친척들이 찾아와
그 가정에 하나님의 긍휼이 임한 것에 대해 함께 즐거워해주었습니다.
엘리사벳은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 지었는데, 사가랴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그러자 사가랴의 입이 열리고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성령이 충만하여 온 세상에 임한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합니다.
아마도 사가랴는 10개월가량 벙어리로 지내는 동안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자기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그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 있다고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그는 전통과 관례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 지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에 나오는 사가랴 찬가(68-79절)와 같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백성을 돌보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믿음으로 반응했던 사가랴와 같이,
우리 또한 지금 여기 우리의 세상을 돌보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믿음과 헌신으로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세상의 즐거움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즐거움의 차이는 무엇입니까(58절)?
5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순종이 어떤 결과를 낳았습니까?
1 친족들이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짓기 꺼려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5 내게 주어진 하루의 삶을 하나님의 선물로 생각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성경에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기사가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가랴의 찬가(68-79절)에서 어떠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나요?
나는 지금 여기 우리의 세상을 돌보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며 그분께 믿음으로 반응하고 있나요?
‘사적인 일’을 핑계로 유익한 교제를 피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나의 문제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은혜가 있게 해주십시오.
어떤 형편에서든 불평보다는 감사를 선택하는 삶을 살게 해주세요.
날마다 주님의 성육신을 체험하며, 그리스도와 삶을 함께하는 신앙이 되게 해주십시오.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서 건져주신 일을 감사하며 살게 해주십시오.
지금 여기 우리의 세상을 돌보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시고
그 구원에 믿음과 헌신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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