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브리서]

[12]온전함을 주지 못하는 레위의 제사장 직분 (히 7:11~19) (CBS)

colorprom 2017. 3. 22. 15:50

온전함을 주지 못하는 레위의 제사장 직분 2014년 5월 14일 수요일


히브리서 7:11~7:19           


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4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16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17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18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성경 길라잡이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11절):

‘온전함’은 히브리서의 중심 주제어이다(2: 10, 5장 9절, 6장 2절, 7: 19, 25, 9: 9, 10장 1, 14절, 11: 40 등).

레위 계통의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죄를 온전히 용서하는 제사를 드릴 수 없었다.

이것은 그것이 율법에 근거한 제사이고, 타락한 인간에게서 율법이 효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타락한 인간에게도 온전한 효력을 발휘하는 온전한 대제사장이 필요하다.


반차(11절): 제사장들에 대해 ‘차례, 독특한 계층, 순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다른 한 제사장을(11절): ‘다른’이라는 말은 ‘전혀 다른 종류’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은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과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의미이다.


주께서는 유다로부터(14절):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이 레위 지파를 따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예수님께서 유다 지파의 후손이시라는 것이고, 다르게 말하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이 혈통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어졌음을 말한다.

율법의 길과는 다른 더 좋은 소망을 기대하게 한다.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18절):
율법 자체가 연약하고 무익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연약함으로 인해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음을 의미하며

타락한 인간에게서 효력이 발휘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율법 정죄하는 일에는 효력을 발휘하지만, 구원하는 일에서는 무력하다.


온전함을 주지 못하는 레위의 제사장 직분 2014년 5월 14일 수요일


레위 지파의 제사장 직분의 기초는 율법입니다. 율법은 타락한 인간을 온전하게 하는데 무력합니다.

물론 정죄는 하지만,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나타내는 데는 무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가까이 오게 하는 참된 중보 사역을 위한 제사장 직분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레위가 아닌 멜기세덱의 반열을 따라 제사장으로 오신 것입니다.

불이나 칼과 같은 도구들은 인간의 삶에서 유익하지만, 온전히 유익한 것들은 아닙니다.

산불이나 방화가 일어나기도 하고, 칼에 사람이 죽기도 합니다.

인간의 연약함 앞에서는 어떤 것도 온전한 효력이 없습니다.

이런 연약함까지도 짊어질 수 있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은 인간에게 있는 무엇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온전함입니다.

자기가 만든 백성에게서 버림받으시면서도, 저들을 위해서 생명을 버리심으로써

사랑으로 온전한 길, 즉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잘 열어놓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온전하지 못한 것을 의지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돈이나 명예나, 세상의 보이는 권력과 힘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우리의 죄의 문제, 양심의 문제까지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죄의 능력을 제어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극하여, 결국 영원한 심판에 이르게 할 뿐입니다.

온전하게 우리에게 구원을 주어서 하나님께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복음뿐입니다.

복음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뿐이십니다.


우리가 이 복음에 굳게 서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세상의 다른 것을 붙잡고 있습니까?


더 좋은 소망이신 예수님 2014년 5월 14일 수요일


레위 제사장들이 드리는 제사는 죄악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율법 역시 불완전한 것이기에 바뀌어야 했습니다(12절).


그러면 율법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사실 율법의 기능은 우리의 죄를 보고 깨닫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율법으로는 누구도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사실만 더 깊이 알게 해줄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예수님의 피로 깨끗함을 받은 것에 감사하세요.

그러면 율법은 더 이상 나에게 멍에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18절의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다”는 말은

율법 자체가 연약하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연약하여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소망이 있습니다(19절).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율법을 온전히 이루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의 삯을 대신 지시고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신 예수님께 감사해야합니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이루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은혜입니다.

이제 구원받은 자의 삶도 이러한 은혜 가운데 지속될 수 있습니다.

나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주님을 의지하며 나아갈 때

주께서 이루시고,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묵상질문


1 레위의 제사직분으로 온전함을 얻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5 율법이 아닌 더 좋은 소망이 주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1 예수님께 나아갈 때 나에게 주어지는 은혜는 무엇인가요?

5 예수님만이 나의 죄를 사해주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기도

새로운 더 좋은 길을 여셔서 우리 연약한 인간에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에게 예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고 신뢰하는 믿음을 더해주십시오.


예수님의 피로 깨끗함을 받은 것에 감사하게 하시고, 능력이 되시는 주님만 의지하며 살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