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브리서]

[9]

colorprom 2017. 3. 21. 13:45

완전함으로 나아갈지니라 2014년 5월 10일 토요일

 

히브리서 6:1~6:12          

  • 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 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 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 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 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 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 10 하나님이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도의 초보를 버리고(1절): 초보는 시작할 당시의 수준을 말한다. 3장 14절에 시작할 때 확신한 것이 바로 도의 초보이다. 그래서 회개, 신앙, 세례, 안수, 부활, 심판의 교훈을 넘어 완전한 것으로 가야한다. 완전한 것은 고난 가운데서도 마침내 순종하게 되는 것이다. 오래 참는 것이다.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 완전한데로 나아갈지니라(1-2절): 여기서 언급된 신앙, 세례, 안수, 부활, 심판은 모두 기독교의 핵심 요소들이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라’는 것은 이것들을 소홀히 여기라는 말이 아니라 이런 기본진리들을 넘어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는 말이다. 살아있는 생명은 반드시 자라나듯, 살아있는 신앙 역시 성숙해져야 한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6절): 이 말은 한 번 구원을 얻은 자라 하더라도 언제든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택하신 백성은 결코 구원에서 탈락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말씀은 이 편지를 받아보던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서 쓰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6절): 복음의 능력을 맛보고도 복음을 부인하는 자는 회복의 길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복음 자체를 거부하고 불순종에 이르는 경우이다. 이는 마지막 말씀이신(1장 2절) 예수님을 부정하는 경우다.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12절): 출애굽 세대와 같이 초보적인 신앙에 머무르지 않고, 안식의 땅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소망 가운데서 고난을 견디며 오래도록 참고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믿음은 순종으로 드러나야 하는데, 순종은 오랜 인내를 필요로 한다.

 

 

완전함으로 나아갈지니라 2014년 5월 10일 토요일    

 

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복음 자체를 견고히 붙잡음으로써 가능합니다. 약속의 기업을 온전히 받는 자리에 이르기까지, 도의 기초에 굳은 믿음으로 서서 인내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 인내가 온전하게 만듭니다. 완전함이란 말씀의 최종적인 판단 앞에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것은 처음 시작했던 그 기초, 즉 말씀 위에서 선한 열매를 맺어가는 것입니다.

도의 초보를 버리라는 표현은 2절에 다시 닦지 말라는 표현대로, 복음을 흔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견고한 복음의 기초 위에서 복음의 능력을 따라서 살아가도록 요청하는 말씀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었으니, 은혜의 비를 받아서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좋은 열매는 구체적으로 성도들을 서로 격려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끝까지 하는 것입니다. 안식에 들어가기까지 인내하며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할 때 한두 번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기가 어렵습니다. 늘 주고받는 일이나 혹은 나아가 받는 일에만 익숙한 세상에서, 베풀고 나누는 일에 관심이 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세상이 비록 서로 주고받음으로써 유지 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실이지만, 그러나 연약한 사람들에게는 계속 베풀어야만 합니다. 나는 지속적으로 섬기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오래 참으면서 하는 일이 있습니까? 게으르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끝까지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달려가는 삶이 있습니까?

 

성숙한 신앙인이 되려면 2014년 5월 10일 토요일

 

히브리서는 편지입니다. 편지에는 반드시 수신자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편지에도 수신자가 있는데, 그들 중에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기초적인 신앙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끔씩 이전에 믿었던 유대교(예수님을 믿지 않고 구약성경의 하나님만 믿음)로 돌아가려고까지 했습니다. 이에 히브리서 기자는 기초적인 믿음에 머물러 있던 그들의 신앙이 앞으로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게 될 믿음의 위인들처럼 더욱 성숙해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신앙이 자랄 수 있을까요? 성경은 먼저 부지런하라고 합니다. 부지런함의 반대는 게으름입니다. 게으름은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은밀한 대적입니다. 게으름은 다른 죄들처럼 우리의 마음 문을 박차고 들어오면서 우리를 놀라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창문에 서리가 끼듯 우리의 내면에 은밀히 들어와 조금씩 우리의 삶을 마비시켜 버립니다. 한편 게으름이 발전하면 정욕이 됩니다. 그래서 잠언 21:25절은 “게으른 자의 정욕이 그를 죽이나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게으름은 우리의 원대한 꿈과 목표를 잠식시키고 결국 쾌락만을 추구하게 만듭니다. 이런 데서 우리의 믿음은 결코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초보수준을 넘어 온전함으로 성숙하려면 반드시 우리의 삶속에 자리하고 있는 게으름을 몰아내고 부지런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1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와 완전함은 무엇입니까?

5 히브리서의 저자가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1 히브리서 기자가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당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5 나는 부지런한 신앙인으로서 날마다 성숙하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나요?

 

 

마지막까지 달려갈 수 있는 온전한 복음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이 복음을 붙잡고 게으르지 않고 오래 참으며 선한 열매를 맺는 삶, 곧 연약함을 채우는 삶이 되게 해주십시오.

 

내게 거룩한 열정을 허락하셔서 신앙과 삶에 부지런하게 하시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욱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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