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행전]

[28]다비다야 일어나라 (행 9:32~42) (CBS)

colorprom 2017. 2. 3. 13:05

다비다야 일어나라 2017년 2월 3일 금요일


사도행전 9:32~9:42           


32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34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 대

곧 일어나니

35 룻다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36 욥바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38 룻다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42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43 베드로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성경 길라잡이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34절):

베드로는 애니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낫게 하시니 일어나라고 말하며 그를 고친다.

이 병고침은 예수님과 연관되어 있다(행 4장 1~10절).

10장 38절에도 사용된 “일어나라”라는 동사는 이사야 6장 10절에서 언급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고치실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일어나는 것을 보여주는 동사이다.

다비다야 일어나라(40절):

베드로는 다락방에 올라가(왕하 4장 33절) 다비다가 다시 살아날 것을 기도하고 있다.

누가는 여기에서 기도의 능력을 강조한다.

다비다는 눈을 뜨고 일어나 베드로를 주시한다(왕하 4장 35절).

누가의 이 기록은

베드로의 사역이 예수님께서 여전히 살아계셔서 그의 공생애 사역과 같이 역사하심을 보여준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2017년 2월 3일 금요일


오늘 본문에 나타난 베드로의 이 병 고침과 죽은 자를 살리는 사건은

구약의 선지자들(특별히 엘리야 엘리사)과 예수님의 사역과 병행되는 사건입니다.

이것은 다음 장에 이어질 이방인 고넬료에게 세례를 주는 사건과 밀접히 연결됩니다.

이방인 선교에 앞서 능력의 하나님이 베드로를 통해서 일하고 계신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이 능력이 우리의 복음의 사역과 함께 역사하시기를 기도합시다.


산 자와 죽은 자의 하나님 2015년 7월 7일 화요일





베드로는, 룻다에서 애니아를, 그 이웃동네 욥바에서는 도르가를 살려냅니다.


베드로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신다 말하며 중풍병으로 8년이나 누워있던 애니아를 일으킵니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애니아가 곧 일어났습니다.(34절)


그 이웃동네 욥바에 갔을 때 베드로다비다(도르가)를 살려냅니다.

베드로가 갔을 때는 그녀가 이미 죽은 때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베드로는 먼저 무릎을 꿇고 기도한 다음,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고 말했습니다.(40절) 그러자 다비다가 살아났습니다.



사실 초대교회는 약자의 교회요 보잘것없는 작은 신앙공동체였습니다.

때리면 맞고, 핍박하면 핍박당하고, 죽이면 죽어야 했습니다.

그런 초대교회가 두려움을 넘어 부흥하고 또 성장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의 하나님과 복음 때문입니다.

 

생명의 하나님과 복음을 우리가 고백한다면,

우리의 삶의 자리 또한, 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귀한 역사가 이루어지는 곳이 될 수 있습니다.

모인 사람의 숫자나 교회건물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인간적인 조건이나 자격 역시 문제 될 수 없습니다.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고 산 자와 죽은 자의 하나님임을 고백하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생명의 역사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만 높아져야 합니다 (2018년 10월 30일 화요일)

예루살렘 교회가 견고하게 세워지게 되자

베드로는 더 넓은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도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처음 도착한 곳은 예루살렘 북서쪽 40Km 지점에 있는 룻다였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애니아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애니아는 중풍병으로 8년 동안이나 누워서만 지내오던 환자였습니다.

베드로는 그를 보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고쳐줍니다.


이 치유 이적에서 베드로그 병을 고쳐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했습니다.

자신의 능력이나 힘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치유하신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이는 전파되어야 하는 분이 베드로가 아니라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애니아가 낫게 되자

그곳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주님의 이름이 높여졌습니다.


베드로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을 높여야 합니다.

세상이 보기에 훌륭한 일을 해냈을 때 더더욱 예수님의 이름을 높여야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내게 주목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한 사역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게 되었다고 나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을 흐뭇해하며

그것에 취해있어서는 안 됩니다.

바람직한 일을 했을 때, 멋진 일을 성취했을 때일수록 더 예수님의 이름을 높여드려야 합니다.


+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여 주님만을 높이며 살게 하소서. 아멘.



치유 (2019년 5월 14일 화요일) (32~35)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인의 바람은 무엇인가요?


예전에 소위 '웰빙의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웰빙’ 열풍이 분 때가 있었습니다.

다양한 소비방식들은 전파되었지만,

정작 무엇이 존재(being)를 바르게(well) 하는 삶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없었습니다.


다음으로 '힐링(healing)의 시대'가 이어지면서 고달픈 삶을 '힐링'하는 상품들이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온전한 안식과 치유가 이루어지기에는 무언가 부족했습니다.

인간이 무엇으로부터 치유받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물음이 깊지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며 살고 있는가요?


오늘 본문은 성령을 받은 사도들의 역동적인 삶의 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베드로는 8년 동안 중풍으로 누워있던 애니아라는 사람을 고쳐줍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애니아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고쳐주십니다!"

그러자 애니아가 ‘곧장 일어납니다.’(행9:34, 새번역)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질병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강건함아름다움 또한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강건함과 아름다움을 얻기 원하지만,

역설적으로 질병과 고통을 더욱 큰 현실로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웰빙힐링을 갈망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것들로 인해 시달리며 살아가는 이유일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믿음의 질문은 더 깊은 데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치유하고자 하는가?

나의 치유는 어디에서 오는가?


+ 주님, 저의 바람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분별하게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1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시거나 명하시나요?

5 오늘 본문과 함께 열왕기상 17장 말씀을 묵상해봅시다.

3 우리 교회는 오늘 말씀에 어떻게 순종할 수 있을까요?



기도


오늘 묵상한 것에서 기도제목을 찾고, 한 줄 기도문을 작성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생명의 역사 가운데 살기 원합니다.

나도 살고 다른 생명도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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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