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는 교회 2017년 1월 9일 월요일
사도행전 2:37~2:47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 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성경 길라잡이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37절):
복음은 타락한 인간의 진정한 얼굴이 '살인자'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 사실을 믿고 인정하는 자들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있다.
너희가 회개하여(38절): 38절은 21절을 보다 구체적으로 적용한 고백이다.
주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회개와 세례로,
구원은 죄사함과 성령으로 드러난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42절): 42절의 정확한 번역은
'그들이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제, 떡을 떼는 일과 기도에 오로지 힘쓰니라'이다.
초대교회가 무엇에 깊이 머물러 있었는지 보여준다.
사도들의 사르침은 곧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며,
교제와 떡을 떼는 일은 그 나라의 구체적인 실현이다.
기도는 그 나라의 완성을 갈망하는 일이다.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43절):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기사와 표적의 구체적인 모습이 44절부터 46절까지이다.
욕망으로 가득한 세상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다.
이상적인 교회 2015년 6월 19일 금요일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무리들은 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 물었습니다.(37절)
말씀을 제대로 들으면 마음에 찔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찔림이 생긴 것은, 이를테면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 하는 사람들에게 대답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38절)
이에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고,(41절)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 공동체는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는" 공동체였습니다.(42절)
거기에 한 가지 특징이 더 있었지요.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45절)
오늘날 우리는, 제대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고 서로 교제하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함께 떡을 떼지 못하고 자기 떡만 챙기려 하는 사람들 틈에서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재산과 자기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눌 수 있을까 의심스럽습니다.
도무지 불가능한 일 같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환자의 치유기적은 간혹 목격되는 듯한데,
재산과 소유를 저렇게 나누는 기적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는 듯합니다.
우리는 왜 그런 기적을 나타내는 공동체를 만들어나가지 못하는 것일까요?
혹 우리가 성령의 선물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게 아닐까요?
이제 우리가 마음에 깊이 찔릴차례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는 교회 2017년 1월 9일 월요일
자기 욕망을 채우려고 서로 경쟁하고 약탈하는 것이 상식이었던 시대 속에서,
초대교회는 전혀 다른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예수님 안에서 마음을 함께 하며,
소유를 팔아 필요한 이들에게 기쁘게 나누어 주며,
공동식사의 자리에서 기쁘게 음식을 나눕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님께서 임하시자 사람들과 사회에 이러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그 회복된 사회, 곧 교회는 그 기적과도 같은 일상을 세상에 보여줌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증언했습니다.
물론 그 시작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에 깊이 머물러있는 것이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거룩함은 성도들이 가르침을 따라 서로를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2017년 8월 22일 화요일)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을 받은 베드로가 설교할 때에
삼천 명이 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회개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완악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베드로로 하여금 두려움에 가득차서 예수님을 부인하게 했었던 그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다음과 같이 말할 때 그들은 마음에 찔렸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2:36)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그들은 "우리가 어찌할꼬" 하며 제자들에게 질문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치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요.
죄를 지은 인간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회개하고 죄사함받은 후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뿐입니다.
유대인들이 회개하며 가슴을 칠 때 베드로는 저들에게 세례를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회개한 증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증거를 붙들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실 것을 베드로는 소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음에 찔리는 것이 있으면, 얼른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증거로 가질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가 회개하여야만 우리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됩니다.
용서와 선물 (2017년 12월 12일 화요일)
선물은 언제나 은혜입니다.
주고받는 교환가치가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아무런 계산 없이 그냥 나누는 선물은 은혜입니다.
선물에 꼬리표를 붙여 뇌물로 만드는 욕심 많은 사람들도 있지만 원래 선물은 은혜이고, 은혜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들은 외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십시오."
이 외침은 이러한 의미였을 것입니다.
"옛 질서를 끊고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여라.
늘 주고받고 거래하며 살던 삶에서, 그냥 주는 선물을 받으라.
옛 가치관을 넘어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여라."
그때 사람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묻습니다.
베드로는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권합니다.
회개는 패역한 세대와 단절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과거의 죄로부터 자유로움을 얻고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이지요.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새로운 삶을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서로 교제하고 떡을 나누며, 끊임없이 깨어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도 늘 말씀 앞에서 찔려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고 무덤덤하다면,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회개의 삶을 살려면 말씀 앞에서 찔려야 합니다. 예민해야 합니다.
+ 은혜의 선물에 감사하며 우리도 값없이 나누는 은혜의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시거나 명하십니까?
오늘 말씀과 함께 마태복음 5장 1~12절, 마태복음 6장 9~13절 말씀을 묵상해봅시다.
우리 교회는 오늘 말씀에 어떻게 순종할 수 있을까요?
기도
주님! 회개하게 하소서. 성령의 선물을 주소서. 아멘.
사랑의 하나님, 우리를 용서하시고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은혜를 내려주소서. 아멘.
오늘 묵상한 것에서 기도제목을 찾고, 한 줄 기도문을 작성하여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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