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하나님 나라의 새 백성 2017년 1월 4일 수요일
사도행전 1:15~1:26
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120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17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19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20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23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24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성경 길라잡이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15절) :
120명은 유대 전통에 따르면 자체의 '공회'를 구성할 수 있는 최소 단위의 인원이다.
그 안에 최소 열 명 정도의 구성원을 대표하는 각 판관이 있었다.
이는 가룟 유다를 대체할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함을 암시한다.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어(22절) :
베드로는 20절부터 22절까지에서 유다의 빈자리를 채워야 함을 시편 69:25절과 109:8절을 인용해 주장한다. 유다의 빈자리를 채움으로 완성될 열두사도는 새로운 이스라엘로서, 구약의 열두 지파를 연상케 한다.
한편 유다의 빈자리를 채울 후보는 부활의 증인이어야 했다.
예수님의 부활이 복음의 중심이었다.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26절):
성령께서 임하시기 전까지 제비뽑기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선택을 의미했다.
직분은 사람의 노력으로 쟁취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교회, 하나님 나라의 새 백성 2017년 1월 4일 수요일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구원 역사의 결정적인 전환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셨던 하나님 나라가
성령 안에서 새로이 구성되는 교회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에 걸맞은 새로운 백성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들이 바로 열두제자로 대변된 새 이스라엘입니다.
옛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불신과 욕망으로 하나님 나라를 거부했다면,
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과 통치에 자신을 맡긴 이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떠나신 후에도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에서 모였고,
또한 성경 말씀에 순종하여 가룟 유다의 빈자리를 맛디아를 뽑아 채웠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도하여 2016년 12월 1일 목요일 (최순실사건- 촛불집회로 소란스러운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후 약 120 명의 무리가 다락방에 모여 함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 예수님의 남녀 제자들도 거기 있었겠지요.
그들이 바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믿고 따르게 된 최초의 증인들이자
초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지난날 예수님과 동행했던 놀랍고 벅차던 순간을 회상하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이젠 그들 곁에 없는 스승에게 못다한 사랑의 죄책감, 앞날에 대한 불안과 기대 등이 엇갈리고 있었을까요?
어떻든 그들은 간단치 않은 상황 속에서 함께 모여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그들이 먼저 한 것은 가룟 유다를 대신할 새 인물을 뽑는 일이었습니다.
유다는 열두 제자 중 하나였지만 스승을 배신하고 팔아넘겼지요.
그는 목을 매달아 죽었다고도 하고,(마27:5) 거꾸러져 배가 터져 죽었다고도 합니다.(행1:18)
그런데 유다의 배신과 참혹한 최후는 과연 다른 제자들과 관계없는 것이었을까요? 아마도 그들은
사도직을 재정비하면서 각자의 실패와 나약함을 인정하고 그것부터 기도하며 참회했을 것입니다.(행1:24)
올해의 대림절이,
마치 기도로 잠잠했던 그 다락방의 분위기처럼 참회하고 기다리며 소망하는 기도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제자들의 무지와 배신, 실패와 죄책감 속에서도
피어나고 자라고 퍼지는 은혜의 나라임을 깊이 새기는 대림절 되기를 바랍니다.
가룟 유다는 배신자2016년 7월 28일, 목요일
다른 사람의 뇌리에 내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합니까?
'배신자'로 기억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부름받은 가룟 유다는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지며 ‘배신자’ 꼬리표를 달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사도신조를 암송할 때마다 우리 입에 오르내리는
악명높은 본디오 빌라도보다는 처지가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그가 배신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가룟 유다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하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마27:5)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유다의 최후를 조금 다르게 표현하였지만,(행2:18)
가룟 유다가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120 명가량 모인 자리에서 베드로가 일어나서
배신자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람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행1:24-25)
그렇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이 받아 마땅한 최후(제 곳)를 향하여 갔습니다.
유다의 인생은, 배신의 귀결인 불행한 죽음으로 끝난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끝없이 계속될 것입니다.
유다를 대신할 자를 보여달라는 ‘남은 제자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일이 끝없이 계속되리라는 깊은 믿음의 표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자 2015년 6월 16일 화요일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모여서
가룟 유다가 빠진 자리 곧 예수님의 12 사도의 빈 자리를 채우는 회의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격조건으로 요한의 세례부터 예수님이 승천하신 날까지 항상 그들과 함께하며,(21~22절)
그들과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라는 점을 내세웁니다.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21~22절)
그리고 그들은 유스도라 하는 요셉과 맛디아를 후보로 내세우고 기도 후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선정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들을 지도하는 사도를 뽑는 데에 세상적인 기준보다
오직 변함없이 신앙을 지키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지도자를 뽑는 데에 세상적인 기준을 세울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합당한 성도를 뽑기 원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일을 결정하고 진행하는 데에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까?
그리고 무엇을 먼저 합니까?
세상적인 기준을 세우기 전에 먼저 기도하고 하나님께 뜻을 구하는 성도가 됩시다.
묵상질문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시거나 명하심니까?
오늘 말씀과 함께 마가복음 3장 13~19절, 누가복음 22장 30절 말씀을 묵상해봅시다.
우리 교회는 오늘 말씀에 어떻게 순종할 수 있을까요?
기도
주님,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뜻을 구하며 기도하는 성도가 되게 하여주소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감사합니다. 부르심 따라 신실하고 충성된 믿음의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주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기가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크고 작은 실패조차도 주님의 크신 경륜 가운데 있음을 알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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