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신실함은 하나님의 신실함이 나타나는 자리가 됩니다 2013/7 /17 수요일
룻기 2:1~2:13 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5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6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9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10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3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성경 길라잡이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1절): ‘유력한 자’란 의미는 부와 능력뿐만 아니라, 훌륭한 평판을 소유한 지도자적인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보아스는 자신의 관대함이 시어머니에 대한 룻의 헌신과 신실함에 대한 반응이라고 말하면서, 개종한 이방인인 룻에게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보호하심을 원한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바로 이것을 원한 보아스 자신을 통해 이루어진다. 성도의 신실함은 하나님의 신실함이 나타나는 자리가 됩니다 2013/7 /17 수요일 룻은 자신의 시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의무를 적극적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낯선 땅에서도 이삭을 주워 봉양하겠다는 신실함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드센 운명과 맞서 용기와 의리, 충성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 나님께서는 이 여인을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하셨고, 보아스는 이 여인들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하심을 입고 있음을 통찰했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룻에게 자신의 신실함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 보아스 개인의 신실함의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임하는 자리가 됩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을 위한 헌신과 신실함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통로와 그릇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성도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향한 헌신과 신실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약한 사람들에 대한 한없는 자비와 연민, 동정과 연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돌봄과 나눔, 그리고 함께 거하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회복을 경험하고 누리는 방법인 것입니다. 바로 그 신실함의 자리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김명혁 목사는 복음의 특징을 ‘약함, 착함, 주변성’이라고 요약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얼마든지 수단으로 여기는 이 시대에, 다른 사람들을 향한 ‘착함’은 성도에게 너무도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의 착함이 하나님의 복이 이 땅에 임하는 자리가 됨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불행 위에 우리의 행복을 쌓는 사람이 되지 맙시다. 은혜받을 자 2017년 1월 31일 화요일 룻은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이방인(하나님께 택함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당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택함받은 민족이라는 우월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이방인은 멸시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이방인은 은혜는커녕 멸시와 천대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룻과 함께 식사를 하고, 먹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양의 양식을 허락해주며, 계속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배려해줍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상식으로 볼 때 룻은 은혜받을 자격도 없고, 은혜를 받아서도 안 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 또한 영원히 타는 지옥불 속에 던져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우리들을 지옥불에 던지는 것 대신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들에게 보내셔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우리가 은혜받기에 합당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은혜가 아니라 저주를 받아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들 한 명 한 명을 너무나 사랑해주셔서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효와 순종 (2018년 11월 2일 금요일) 모압 여인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계속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라고 고백하며,(룻1:16,새번역)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에 들어왔습니다. 베들레헴의 삶은 생계가 막연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와 함께 지내며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 남의 밭에 들어가 이삭을 줍는 일은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룻은 이방여인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얼마든지 멸시·천대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밭에 나가겠다고 스스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를 한 글자로 하면 '효(孝)'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효는 부모님께 이러한 행동은 하고 저러한 행동은 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정해진 관습을 '영혼 없이' 따르는 것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부모님을 존경하고, 그분들 앞에서 겸손하며, 그분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다만 '도리'니까, 남들이 불효자라 할까 봐 최소한으로 하는 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 기독교인은 무조건이 아니라 '주 안에서' 부모께 효를 다하여야 합니다. + 주님, 무조건 순종이 아니라 주 안에서 부모님께 순종하게 하소서. 아멘.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11~12절):
룻의 헌신은 보아스를 감동시키고, 그 보아스를 통해 하나님의 복이 룻과 나오미에게로 흐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인 보아스가 이방 여인인 룻에게 은혜를 베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처럼 은혜받지 못할 자임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입은 사람은 다만 룻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있어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것은
어느날 룻은 시어머니인 나오미에게 이삭을 줍기 위해 밭에 나가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청합니다.(룻2:2)
시어머니를 대하는 룻의 태도는 겸손할 뿐 아니라 사랑이 가득합니다.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은혜 (2020년 2월 4일 화요일)
우리 인생의 여정을 돌아보면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였음을 고백하게 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예측할 수 없는 우리와의 만남과 일상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모압 여인 룻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시모인 나오미에게 이삭 줍는 일을 허락받는 장면이 나옵니다.(룻2:2-3)
룻은 이삭을 줍기 위해 엘리멜렉의 친족인 보아스의 밭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이삭 베는 자들을 뒤따르며 떨어진 이삭을 줍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삭을 베는 자들은 하루 품삯을 받고 하는 일이기에 자신의 일을 은혜로 여기지 않지만
떨어진 이삭을 줍는 자들은 그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큰 은혜를 입었다고 말합니다.(2)
은혜는 내가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것입니다. 값없이 받는 사랑입니다. 은혜는 친절함 그 이상입니다.
보아스는 룻이 안전하게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룻2:4)
그것은 그 당시 이방인에게 율법을 넘어서 베푼 자비이고 은혜였습니다.
보아스는 이삭을 베는 자들에게 이방 여인인 룻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였고,
심지어 목이 마르면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풉니다.
그러자 룻은 이방 여인인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는 이유를 보아스에게 묻습니다.(10)
어쩌면 은혜는 의도를 의심할 만큼, 혹은 오해할 만큼 낯설고 당황스러운것인지도 모릅니다.
은혜는 당연히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을 때 아무 조건 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은혜는 늘 우리에게 과분할 뿐입니다.
주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고 구원해주신 그 십자가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갑시다.
+ 나의 삶, 내 삶의 모든 조건과 환경이 하나님의 과분한 은혜임을 기억하며
진심으로 주님께 감사드리게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본문 말씀이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고
마침 그때 보아스가 그 밭에 왔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보아스가 룻에게 감동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도
이웃에 대한 신실함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마음껏 경험하게 도와주소서.
성도로서 신실함을 지킴으로써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복의 통로로 살게 해주소서.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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