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룻기]

[6]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룻 4:1~12) (CBS)

colorprom 2016. 12. 25. 14:28

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2013년 7월 20일 토요일


룻기 4:1~4:12           


1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 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2 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하니 그들이 앉으매

3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4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5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6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7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8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9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12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성경 길라잡이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았더니(1절): 당시의 ‘성문’은 대중생활의 중심이었다.

특별히 성문 광장은 백성들의 소송과 재판이 거행되던 곳이었다(창 23장 10절, 신 22장 15절).

그러므로 선지자들은

“성문에서 판단하는 자를 올무로 잡듯” 하는 사람들에 대항하여 맹렬히 비난하거나(사 29장 21절), 혹은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를 미워했다(암 5장 12절).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라고 권면했다.


묵상과 삶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기업 무를 사람인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사람은,

공동체와 언약을 지키는 삶에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재산에 손해가 될 것 때문에 기업 무를 자가 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기업을 무르는 일은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업 무르는 일을 한 보아스

언약을 지키기 위해 재산상의 손해를 자청하는 자기희생의 결단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자본이 절대적 중심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경제적 가치로만 평가되고, 정부는 자본의 힘에 어떤 규제도 가해서는 안 되며,

오직 시장의 기능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 역시도 하나님나라의 가치보다 경제적 가치에 더 마음을 빼앗기며 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공동체와 나눔을 강조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말하면, 정치적으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곤 합니다.


그러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칩니다.

성도시대의 기업 무를 자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업 무르는 자로 살아야 하는 우리는,

세상을 향한 책임감인애를 구비해야 합니다.


성경은 어느 시대에나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는 것이 언약을 지키는 삶임을 가르칩니다.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것은 경제적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시대정신입니다.

형제와 자매들을 위해, 이웃들을 위해 재산상의 손해를 감당하면서 그들을 섬기는 삶이야말로,

이 시대의 성도들이 살아내어야 할 삶입니다.


묵상질문


성경은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기업무를 자의 이름을 왜 기록하지 않은 것일까요?      

기업 무르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기도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재산상의 손해도 감수하는 용기를 가지기를 원합니다.
기도와 사려 깊은 숙고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순적하게 순종하도록 도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