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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이 희망입니다 (롬 9:1~18) (CBS)

colorprom 2016. 12. 15. 16:05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이 희망입니다 2013년 6월 24일 월요일



로마서 9:1~9:18           


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거하노니

2 (앞절에 포함)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하시느니라



성경 길라잡이


양자 됨(4절):

여기에서 사용한 ‘양자 됨’은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이 유대인 각자에게 개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 차원에서 주어진 복으로 이해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13절):

이 구절은 약속의 자녀가 되는 것은 인간적인 선택이나 기회의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도적인 간섭하심에 달려 있음을 예증하는 것이다.

이삭과 이스마엘의 경우는 어머니가 다르기 때문에 육신적 차이에 따른 선택을 주장할 여지가 있는 반면,

야곱과 에서의 경우는 한 부모로부터 동시에 태어난 까닭에 육신적 차원의 차이를 주장하기 어렵다.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18절):

‘완악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나 역사하심에 대해 무디어진 마음이나 무감각한 상태를 의미한다.

사람은 어떠한 경우든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안에 있고,

그들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쓰임을 받는다.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이 희망입니다 2013년 6월 24일 월요일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녀로 사는 복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서,

그분의 부르심에만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인간의 육신적인 조건들, 즉 혈연, 지연, 학연 등과 같은 것들은 결코 구원을 이루는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영적 특권의식 속에서 살아왔던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구원으로부터 멀어졌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를 향하는 것뿐입니다.

바울사도는 극렬한 유대인 우월주의자에서,

이방인들의 영혼을 뒤흔드는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전향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육신적 혈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삽니다.

혈연, 학연, 지연과 같은 연고주의에 집착하는 것에 더해, 요즘은 디지털 인맥까지 강조되는 분위기입니다.

사회라는 것이 원래 관계들의 확장이고, 이것이 성공의 기반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인간적인 여러 관계가 구원을 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의 유일한 조건하나님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부르심만이 그분의 자녀로 사는 복의 근거가 됩니다.

사람의 사회적 관계나 행위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 긍휼을 입는 것,하나님께 약속의 자녀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특권으로 누렸던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 그리고 혈통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것을 기억하는 오늘의 삶이어야 합니다.

약속의 자녀가 되었음을 감사하며, 그 감격으로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십시오.


긍휼히 여기는 자 2016년 8월 11일 목요일 (롬 9:1~9)


사도 바울은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데 앞장섰던 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하고,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후 그는 평생 전도자로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마음에 항상 떠나지 않는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의 동족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치 않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동족을 사랑함이 얼마나 진실하고 간절했던지, 그들이 구원받게 된다면

심지어 자기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짐을 당해도 괜찮다는 표현까지합니다.(롬9:3)


어느 여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남편을 교회로 이끌어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회에 갈 때마다 남편의 구두를 싸가지고 가서 옆자리에 내려놓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 여기에 와있어야 할 영혼이 있습니다. 그의 구두가 먼저 왔습니다.

이 구두의 주인도 오게 하여주소서."


물론 교회출석이 곧 구원은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출석을 통하여 구원의 길에 들어설 수 있으며 성도의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남편의 구두를 싸가지고 교회에 들어서는 그 여집사님의 간절한 심정,

동족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질지라도 감수하겠다는 사도 바울의 간곡한 심정,

가족에 대하여 이웃에 대하여 우리는 그 같은 심정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약속의 자녀 (2019년 9월 12일 목요일) (1~9)


사도 바울은 혈통적으로 완벽한 유대인이었습니다.

베냐민 지파에 소속되어 있었고,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으며,

율법을 잘 학습하여 누구보다 율법준수에 철저했던 바리새파 사람이었습니다.(빌3:5)

혈통적으로나 율법적으로나 완벽한 유대인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택함받은 민족,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의 대열에 확실히 속해있다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한편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택함받은 민족으로 여기며 책임있게 살기보다는 오만에 빠져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했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 대한 박해를 자행했습니다.

사도 바울 자신이 바로 그 일의 선봉에 섰었습니다.


그러했던 그가 회심 이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해서 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다 그의 자녀가 아닙니다 (…)

이것은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가 참 자손으로 여겨지리라는 것을 뜻합니다."(롬9:6-8, 새번역)


육신의 자녀는 혈통으로 구분되지만,

약속의 자녀는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믿는 것으로 자신을 증명합니다.


마침내 바울은 자신의 혈통적 우수함을 오히려 '해로운 것'으로 여겼고,(빌3:8-9)

약속의 자녀로 살고자 복음전파사역에 목숨을 바쳐 충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되는 길은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가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 주님, 우리에게 허락하신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믿게 하셔서, 주님의 참 백성이 되게 하여주소서. 아멘.


묵상질문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해 바울사도는 어떤 심정입니까?

바울사도는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달려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떤 입장입니까?


기도


주님, 긍휼히 여기소서.
사회적 조건과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이 되게 하소서


거룩하신 주님, 가족을 위해 긍휼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