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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롬 8:31~39) (CBS)

colorprom 2016. 12. 15. 15:53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2013년 6월 22일 토요일


로마서 8:31~8:39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성경 길라잡이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31절): 바울은 31절부터 39절까지에서 5장부터 8장까지의 주제를 마무리한다.

그 핵심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재판정을 배경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이다(32~34절).

하나님께서는 이미 가장 소중한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다.


둘째는 그 어떤 문제도 하나님의 구원을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이다(35~39절).

그냥 버티는 정도가 아니라 넉넉히 이긴다(37절).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35절):

하나님의 사랑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이 세상 가운데서 순탄하기만 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순종의 삶을 사는 이들은

세상의 적대적인 세력으로부터 오는 고난을 피할 수 없다.

바울사도는 일상의 현실에서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과 같은 고통을 실제로 겪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그저 수사학적 표현인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35절):

곤고는 좁고 힘든 장소에 꼼짝 못하도록 갇혀 있는 상태이며,

권세자들(38절)은 단순한 정치권력을 넘어 타락한 천사 혹은 마귀까지 포함한다.

능력(38절)은 기적이나 권세 있는 자리에 앉은 사람을 의미한다.

높음이나 깊음(39절)은 맨 위의 공간부터 맨 아래까지의 모든 공간을 의미한다.

다른 어떤 피조물(39절)은 창조주를 제외한 모든 피조물을 망라한다.


바울은 한 사람이 일평생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어려움

시간과 공간, 혹은 관계를 통해 다양하게 기술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2013년 6월 22일 토요일


환난과 괴로움과 박해와 굶주림과 헐벗음과 위험과 칼, 이 모든 고통은

바울사도에게 단순한 수사적 표현을 넘은 일상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확신이 있었기에 이 어려움들을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극한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격적 신뢰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것은 구원에 관한 추상적이거나 교리적인 확신을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종교개혁의 지도자들이 온갖 고난과 위협 속에서 오늘 본문의 내용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격려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일상에서 현실로 겪었던 환난과 괴로움과 박해와 굶주림과 헐벗음과 위험과 칼 앞에서의 삶을

그들도 동일하게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 확신이 개혁의 걸음을 멈추지 않도록 이끌어 주었던 것이지요.


오늘날 교회를 향한 불신자들의 경멸적인 시선은, 복음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인들의 말과 행동 때문인 경우가 더 많아 보입니다.

사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도 뻔뻔하게 종교적 언어와 행동으로 자신을 포장하곤 합니다.

단순한 감정에 치우쳐 종교적 수사를 남발하며 사랑과 정의와 평화와 나눔을 이야기하지만,

구체적인 자기희생의 행위는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진실하게 동참하기 위해서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실천적 삶으로 살아내야 함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현실의 벽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야지요.

누가 우리를 대적하고, 고발하고, 정죄하고, 그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2017년 9월 30일 토요일)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은 관계에서도 달면 삼키고, 쓰면 뱉습니다.

그들은 필요에 따라 관계를 맺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필요에 기초한 관계는 아무리 좋아보여도 그 필요가 다하면 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우리의 관계를 필요가 아닌 사랑 위에 세우셨습니다. 오직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만이 최악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이어갈 수 있으며,

죽을 자리에도 동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삼위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놓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감내하셨습니다.

그 사랑이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시작과 과정이며 끝입니다.


베드로를 향한 그분이 마지막 질문은 ‘사랑하느냐?’였습니다.

그분이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임을 기억합시다.


묵상질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사람을 향해 대적하거나 고발하거나 정죄하거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고자 위협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기도

바울사도처럼, 종교개혁자들처럼 두려움 없이 현실을 살아가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을 그럴듯한 말로만 표현하지 않고, 구체적인 자기희생이 있는 행동으로 드러내며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