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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고난을 과장하는 의식은 버려야 합니다 (롬 8:18~30) (CBS)

colorprom 2016. 12. 15. 15:39

고난을 과장하는 의식은 버려야 합니다 2013년 6월 21일 금요일


로마서 8:18~8:30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느니라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성경 길라잡이


본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중요한 단어나 구절에 대해 설명해 주는 곳입니다.

현재의 고난은(18절):

고난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고난은 다양한 의도와 통로를 통해 올 수 있다.


부정적으로는 죄를 범한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일 수 있다.

그러나 긍정적으로는 세상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따름으로 발생하는 박해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18절): 영광은 하나님의 임재와 장엄, 즉 하나님의 영광스런 통치를 의미한다.

그 영광은 그저 사람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미칠 것이다.

그 영광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몸의 부활을 경험하여,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을 것이다.

또한 피조물은 고통에서 해방된다.

그래서 피조물(22절)과 그리스도인(23절)은 모두 그 영광을 갈망한다.

심지어 성령께서도 탄식하며 그 영광을 고대하신다(26절).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21절):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피조물은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허무한 상태, 즉 혼동과 좌절과 부패의 상태에

이르렀고, 결국 영원한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이 타락 이후의 혼동과 부패 상태로부터 해방되어

원래 상태로 회복되길 원하신다.

 이 일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들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19절).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28절):

여기서 ‘선’은 두 가지 점에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자녀들을 위해 예정하시고 마지막에 이루실 영광을 가리킨다는 것과,

그 영광에 이 세상 가운데(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은혜를 포함한 의미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29절):

바울은 29절부터 30절까지에서

과거의 예정에서 미래의 영화까지 하나님께서 구원의 모든 과정을 주관하신다고 고백하며,

그리스도인을 격려한다.


고난을 과장하는 의식은 버려야 합니다 2013년 6월 21일 금요일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로서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 그리스도의 고난에도 기꺼이 동참합니다.

지금 이곳에서 경험하는 고난은 장래에 주어질 놀라운 영광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합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감으로써 주어지는 지금의 고난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결국 영화롭게 하실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되는 그날을 소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소위 ‘믿음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현실을 경멸하는 태도를 가진 이들을 종종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허무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실 이런 의식과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랑과 평화, 정의와 같은 하나님나라의 가치들이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이 땅 가운데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으로부터 해방되어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고난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 바르게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기질이나 성격, 습관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거나 ‘고난을 당하는 것’이라며 신앙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옳지 않지요.

특히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회경제적 활동을 하다가 당하는 어려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인양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원불멸의 그 무엇을 소망하는 마음으로 지금의 불의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안타깝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나라 가치의 실현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고,

이때 겪게 되는 고난에 용감하게 다가설 줄 아는 믿음의 행동입니다.

성령의 손길이 우리의 삶에 스며들어 있음을 믿고 걷는 삶의 여정이 되십시오.


부르심에 응답하라 2017년 5월 3일 수요일 (롬 8:28~30)


세상 사람들의 선택에는 다소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선택에는 오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선택하시고 부르십니다.
그것은 부르심받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매우 훌륭하거나 성품이 온화해서라거나

그가 완벽한 의인이어서가 아닙니다.

부르심받은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시고, 그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8:26-27)


누가 죄를 두려워하게 합니까? 성령입니다.

누가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를 줄 수 있습니까? 성령입니다.

성령께서 부르심받은 이에게 임재하셔서 사실상 '다 해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힘있게 고백한 바 있지요.

"그렇다면 사람이 자랑할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무슨 법으로 의롭게 됩니까? 행위의 법으로 됩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법으로 됩니다."(롬3:27, 새번역)


그러니, 우리는 다만 부르심에 응답합시다.

선을 이루시고, 우리를 의롭다 칭해주시고, 구원해주시는 성령을 구합시다.


자유혼을 가진 자는 2017년 6월 5일 월요일 (로마 8:18~24)


'종노릇'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것을 연상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신분상으로는 노예였으므로 정치적 자유가 없었고,

경제적으로 강제노동에 시달렸고, 인종적으로는 강제산아제한의 차별을 받았고,

종교적으로는 그들의 하나님에게 제사드리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그 백성들을 종살이하던 집에서 해방시켜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광야로 인도하였습니다.


430년간 노예생활에 길들여져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물이나 식량이 떨어질 때마다,

여기서 목마르고 배고파 죽을 바에야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고 외쳤습니다.

자유인으로 죽기보다는 노예로 살겠다는 것이지요. 노예근성에 젖은 그들에게는 자유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계명을 통해 자유혼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영화 <벤허>에서, 노예선에서 노젓던 벤허의 눈빛이 '살아있음'을 발견한 아리우스 사령관이

배가 침몰하기 직전 부관에게 47번 노예 벤허를 풀어주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유혼을 지닌 자는 노예가 될 수 없다."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8:21)

썩어질 부와 권력과 명예와 그리고 죄악의 노예가 되지 말고

자유혼을 주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자유혼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고 일깨워주십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2017년 6월 6일 화요일 (롬 8:26~27)


사도 바울은 강조합니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이어서 또 권면합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들의 연약함이란 무엇일까요?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모른다는 것,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알아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우리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그러나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시는 주님이 계십니다.(시139:2-3)

나보다 나에 대해서 더 잘 아시고, 나보다 나를 더 잘 도우실 수 있는 주님이 계십니다.


성령을 다른 말로 '보혜사'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보혜사에 도우시는 분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돕는다는 것은 '함께 담당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우리를 감찰하시는 하나님,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아시고, 나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도우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함께 담당하십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때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혀주십니다.


고난을 압도하는 영광 (2017년 9월 29일 금요일)


옛 시대와 새 시대가 공존하는 종말의 시기에 고난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이미 처음부터 이 고난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신자로서 힘 있게 살 수 있는 것은 고난을 덮고도 남을 영광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종말의 시기를 더불어 살아가며 바울이 준 권면을 기억합시다.


첫째,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받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러니 갑작스러운 고난 앞에서 당황하지 마십시오.


둘째, 고난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덮고 남을 만큼의 소망을 누리는 것이 복음입니다.

비극은 고난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소망을 상실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성도를 사랑함으로 구원을 받고 있듯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묵상질문


현재의 고난과 장래의 영광에 대한 바울사도의 관점은 무엇입니까? 

믿음의 사람들을 위해 성령께서 하시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기도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다가 겪는 어려움을 믿음의 행동으로 인한 고난으로 착각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우소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에 조금의 흔들림도 일어나지 않도록

성령의 이끄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게 하소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주님 뜻에 합력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아멘.


우리를 노예가 아닌 자녀로 삼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주님,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