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 9/21(수)
누가복음 13:22~30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의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묵상>
문은 오고가는 통로로 나뉜 공간을 서로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만일 담벼락이나 막힌 것이 없다면 문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가로막힌 벽이 있을 때 문이 없다면 그 나뉜 공간은 서로 왕래할 수 없습니다.
어떤 모양이든 문이 있어야만 이 두 공간은 서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은 만남의 가능성을 제공해줍니다.
우리 앞에는 두 개의 문이 놓여 있습니다. ‘좁은 문’과 ‘넓은 문’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문제는 두 개의 문이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이 아니고 정반대편에 있다는 것입니다.
결코 동시에 두개의 문을 향해 바라볼 수도 걸어갈 수도 없습니다.
두개를 바라보고 가다가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문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정하고 그 문의 방향으로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문 너머에는 인생의 최종상태에서 맞게 될 그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날 그곳에서는 누구도 예외 없이 하나님과 결산을 하게 됩니다.
말씀의 인증 없이 행해진 종교적 성과나 선행이 아무 의미가 없게 되고
주의 이름을 앞세웠던 욕심들이 드러나는 때입니다.
자기 이름으로 하고 있으면서 주님의 이름을 걸었던 것을 하나님은 책임지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시작은 하나님의 뜻이었으나 마무리가 내 뜻이면 하나님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주님. 하나님과의 결산을 위해 매일 매일 ‘좁은 문’을 택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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